만만치 않을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 후폭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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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17년 강릉에서 열린 세계선수권 디비전Ⅱ 그룹 A 대회에서 남북한 아이스하키 선수들이 기념촬영을 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
[아시아타임즈=박민규 기자] "기회는 균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대선 과정에서 내세운 새 정부의 가치다. 박근혜 정부에서 드러난 비선실세들의 추악한 국정논단에 실망한 유권자들은 문 대통령의 목소리에 크게 공감하고 지지했다. 그러나 최근 평창 동계올림픽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을 구성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정부의 리더십은 이와 너무나도 어긋나고 있다.
지난 9일 남북 고위급 회담에서 처음 등장한 단일팀안은 불과 11일 만에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서 확정됐다. 한국 선수 23명에 북한 선수 12명을 합쳐 35명의 엔트리를 구성하고, 대신 경기에 출전하는 22명의 엔트리 중 3명은 반드시 북한 선수가 출전토록 했다. 북한에서 코치가 한명 내려와 우리 코치진과 선수 기용에 대해 합의할 예정이라고 하니 올림픽 무대를 위해 손발을 맞춰온 우리 선수 중 3명은 벤치를 지켜야 할 판이다. 이 과정에 선수단과의 대화는 물론 설득이나 양해를 구하는 정부의 노력은 없었다. 오히려 당초 우리 선수에게 피해는 없을 것이라던 장담은 너무나 쉽게 흩어졌다.
10년 전인 2007년 창춘 동계아시안게임에서 일본에 0-29로 참패했던 여자 대표팀은 지난해 2월 일본 삿포로에서 열린 동계아시안게임에서 태국을 상대로 아시안게임 첫 승을 거두고 중국까지 이기는 등 빠르게 성장해왔다. 그 뒤에는 대표팀의 엄청난 노력이 있었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여자 아이스하키팀은 내달 4일 열리는 스웨덴전부터 단일팀으로 나서게 된다. 그러나 북한 선수들이 언제 합류하는지는 아직도 미정이다. 단일팀으로서의 훈련은 채 10일도 하지 못하고 첫 경기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4년간 함께 훈련한 선수 대신 10여일 남짓 손발을 맞춘 새로운 선수와 올림픽 전 마지막 평가전을 치뤄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번갯불에 콩 볶아먹듯 진행된 단일팀 구성에 여론은 차갑게 식어갔다. 특히 아이스하키를 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고, 대학원을 휴학하고, 귀화까지 한 선수단의 사연이 언론을 통해 전해지면서 2030세대의 분노가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올림픽 '첫승'만을 바라보고 달려온 선수들에게 '정치적 희생'을 강요한 정부의 행태에 비판하는 목소리가 커진 것이다. 이들은 북한 선수단의 합류가 균등한 기회도 아니고 우리 선수단에게는 공정한 과정도 정의로운 결과도 아니라고 말한다. SBS가 지난 11일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72.9%가 '무리해서 단일팀을 구성할 필요가 없다'고 답했고,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에서도 여자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을 반대하는 청원이 줄지어 올라왔다. 그러나 정부는 끝까지 밀어붙였다.
이는 결국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 하락으로 이어졌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지난 15∼19일 전국 성인 2509명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2.0%포인트)에서 문 대통령의 지지율은 전주보다 4.6%포인트 하락한 66%를 기록했다. 특히 문 대통령의 핵심 지지세대인 30대에서의 지지율은 9.9%나 떨어졌다.
결국 청와대는 뒤늦게 실수를 인정했다. 중앙일보 등에 따르면 23일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북한 참가가 막판에 결정되면서 우리 선수들과 먼저 논의할 수 없었다. 조급성이 있었다"며 "올림픽 성공을 위한 과정에서 남북관계 개선이 다급하고 필요한 일이라 생각해 과거처럼 이견이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취업절벽 등 청년실업이 절박한 상황에서 공정하지 못하다는 여론에 2030세대가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고 반성해야 할 문제라고 인정했다.
정부는 평창 동계올림픽을 남북 공동입장과 단일팀 구성 등을 통해 평화 올림픽으로 치루겠다는 포부다. 이를 계기로 화해모드를 조성하고 산적한 남북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도도 읽힌다. 그러나 북한이 예측불가능한 국가라는 점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지난해 말까지 극한으로 치달았던 남북관계의 원인은 미사일을 쏘아 올리고, 해킹 테러를 자행한 북한의 소행 때문이다. 만약 평창 동계올림픽 이후 북한이 또다시 어깃장을 부리기 시작한다면, 여자 아이스하키팀의 희생은 정말로 무의미해질 수도 있다.
정부는 오는 8월에 열리는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도 남북 공동입장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물론 단일팀 구성도 언급했다. 스포츠는 순수해야 한다. 그리고 선수들의 피땀이 정치적 결단에 의해 희생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
박민규 기자 atmedia@asiatimes.co.kr
http://www.asiatime.co.kr/news/articleView.html?idxno=164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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