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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인의 보석 - 손상희

Joyfule 2012. 12. 29. 11:15

 

 

 만인의 보석 - 손상희

 

 여자들 대부분은 보석상의 진열장 앞을 지날 때 안으로부터 뻔쩍이는 보석의 현람함을 외면하고 지나치는 이는 별로 없는 것 같다. 개성에 따라 다르지만 대부분의 사림들은 보석을 좋아하며 사파이어나 루비 다이아몬드 같은 귀한 보석이 인기가 있고 그 중에서도 단단한 탄소덩이에 불과한 다이아몬드를 아주 좋아한다.

 

보석은 크기나 질에 따라 가치가 결정되며 부가가치가 높아 부의 축척수단으로 이용되고 있으나, 보통 사람들은 결혼 예물로 이용한다. 60년대에는 다이아3부가 결혼 예물로 보통 이용 되었는데 나는 결혼 때 그것을 받지 못했다. 위 동서들이 금반지 예물로 결혼을 하였기 때문에 형제간의 형평을 위해 우리도 다이아를 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나 그 후 아래 동서들 결혼 때는 이런 형평의 원칙이 무너지고 상대에 따라 수준이 달라져 불만스러웠지만 그렇다고 속 좁게 불평을 들어 낼수도 없어 참았다.

 

결혼5년 만에 남편이 해외 연수를 마치고 돌아오면서 결혼 때 못해준 것이 못내 미안 했던지 조그마한 다이아반지를 사들고 왔다. 빠듯한 생활비를 절약하여 이 선물을 마련하느라 얼마나 고생을 했을까? 가슴이 아릿한 떨림으로 벅차 오르며 반지의 진가보다도 남편의 따뜻한 마음의 동기가 손가락을 통해 전이되는 순간, 모든 지난날의 섭함과 불쾌했던 소외감들이 섬광처럼 사라져 버렸다. 그 후 그 반지는 나의 분신이 되어 남편의 사랑으로 소중하게 늘 지니고 다녔다.

 

그런데 어느 민방위 훈련과 소방훈련을 하던 날, 3층 교실과 운동장을 오르내리며 훈련을 지도하던 중에 알이 빠져나간 것도 모르다가 종례시간에야 발견하고 운동장으로 교실로 계단으로 샅샅이 찾아보았지만 허사였다. 분신이 찢겨나간 듯한 아픔으로 병이 나 누웠는데 늦게 귀가한 남편이 이를 알고 다음에 더 큰 캐렅짜리를 사 줄 테니 잊어버리라고 호기 있게 위로하는 바람에 남편의 깊은 사랑과 너그러운 이해심에 고마움을 느끼며 손재의 상심을 털어 버렸다. 그러나 호기 있던 남편의 약속도 수 십년이 지난 지금까지 지켜지지 않았고 기다리는 희망도 버리지 않고 있다.

 

어느새 며느리를 볼 날이 되었다. 그러나 나는 변변한 보석 하나가 없다. 며느리에게 대물림을 할 패물하나 없는 게 부끄럽다가도, 사는 동안 보석의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않았고 오히려 도둑이 들까봐 걱정하지 않았으며 남들이 도둑에게 몽땅 패물을 잃었다고 울 때에도 홀가분 했다. 두 딸들의 결혼식을 치르면서도 사돈댁 어른들의 배려로 허례허식을 버리고 합리적으로 검소하게 치르었다. 아들의 결혼식도 검소하게 치르고 싶음엔 변함이 없어 보석에 대한 탐심은 앞으로도 없을 것 같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뉴욕의 보석거리를 거닐면서 양쪽 진열대에서 뻔쩍이는 휘황찬란한 보석의 유혹을 떨치지 못하고 문을 열고 들어가 구경이라도 실컷 하고 싶다는 일행들의 제안이 있었지만 상점 대부분이 유대인 상가라서 선뜻 문을 열고 설 수가 없었다. 다행히 한국인의 가게가 눈에 띄어 뉴욕의 보석을 구경 할수 있었는데 휘황 찬란한 보석의 아름다움에 매료되기도 전에 엄청난 가격표를 읽고 위축이 되었고 번쩍이는 보석의 아름다움으로 더욱 초라함을 느꼈다. 마음을 열고 욕망을 자극시켜 주머니를 풀어내기보다 우리의 이성은 여행자로써 아까운 달러를 여비로 풀고 다니는 것조차 불황의 국가경제 속에 죄송한 일인데 보석을 사겠다는 욕망은 안 된다고 가로막는다.

 

전날 워싱턴 D.C의 스미스 소니언 자연사 박물관에서 본 세계 제일의 가장 큰 다이아몬드를 감상한 것으로 보석에 대한 허영심을 채우며 만족하라고 소곤대는 것 같았다.

45.52캐렅의 푸른 다이아의 아름다움과 가치에 앞서 세계적인 보석이란 호기심에 우리는 박물관에 들어서자마자 가장 큰 코끼리의 박제 앞을 지나 2m가 더 되는 오징어 표본을 구경하고 2층으로 급히 뛰어 올라갔다. 벌써 인파가 100m도 넘게 뻗어 있었는데 1분 이상 보면 재앙이 따른다는 경고 덕인지 인파의 줄이 빠르게 전진하여 금방 그 앞에 서게 되었다. 유리 진열장에 목걸이로 셋팅된 그 금강석은 푸른 광이 으스스 할 만큼 차가웠고, 마치 양기를 몰아내고 음기를 손짓하여 부르는 달밤의 요정처럼 빛나고 있었다.

 

45.52캐렅의 크기는 1캐렅만 보아온 눈에 45배의 양감을 주지 못했지만 상당히 크다고 생각했다. 1분의 짧은 순간에 생각은 매우 착찹하였다. 저 보석이 무엇이기에 수세기에 걸쳐 수많은 탐욕자들을 재앙으로 몰고 갔을까? 저 보석의 주인이던 루이14세는 천연두에 걸렸었고 루이16세와 마리 앙뜨와네뜨는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다. 그리고 나폴레옹도 패망했다.

 

그 후 그의 어머니에게서 나온 저 보석이 탐욕의 인간을 수없이 거치다가 미국 신문왕의 부인에게까지 왔는데 그 또한 딸이 교통사고로 죽었다고 한다. 마의 그 보석을 궁리 끝에 이 박물관에 기증하기로 결심하고 우편으로 송달했는데 그 보석을 운반한 우체부까지 재앙을 당했다고 한다. 달밤에 개가 짖다가 2층에서 뛰어내려 죽었고 자신도 교통사고를 당했다고 하나 그는 이러한 일들이 결코 보석에 의한 재앙으로 보지는 안는다고 했다니 의지가 강한 사람인가보다.

 

스미스 소니언에 온 이 다이아몬드는 이제 탐욕 없는 수많은 사람들의 눈길을 받으며 즐거움을 나누어주며 더 이상 재앙을 일으키는 요물의 보석이 아니라고 한다. 조용한 자태로 푸른빛을 아름답게 발산하면서 어느 특정인의 것도 아니고 금고 속에서 숨도 쉬지 못하는 죽은 보석도 아닌 만인의 보석으로 사랑받는데 만족하고 있는 것 같았다.

 

번쩍이는 다이아 앞에서 단 일분의 소유로 만족하고 보석을 향한 한 점의 소유욕까지도 모두 떨쳐버리며, 누구나 공유 할 수 있는 푸른 하늘과 시원한 바람이 있는 거리로 나오니 햇빛은 다이아보다 더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수필가. 한국수필등단. 한국수필문학상 . 수필집 '수채화같은 만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