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글쓰기가 나의 작법 - 임병식
일찍이 프랑스 언어학자 뷔퐁은 ‘文은 곧 人이다’라고 했다. 그런가하면 수필가 김태길 선생은 좋은 수필을 쓰기 위해선 ‘인격이 탁월하고 글 솜씨 또한 탁월해야’ 함을 강조했다. 이를 고찰컨대 두 사람의 언급은 글이 사람과 동떨어져 존재하는 게 아니라 인격의 문제로서 떼려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임을 말해주는 것이라 하겠다.
이를 토대로 생각해 보면 수필을 쓰는 사람은 적어도 먼저 사람이 돼 있어야 하며, 그것도 보통사람 이상의 도덕성과 바른 가치관, 그리고 정의감을 지녀서 일반 사람들로부터 우러러 존경 받지는 못하더라도 ‘괜찮은 사람’ 으로 평가와 인정을 받을 정도의 자리매김은 돼야 한다는 결론도출이 가능하지 않는가 한다.
그런 인품이 요구되는 소이는, 다른 문학 장르는 글을 쓴 작가가 거의 전면에 나서지 않고 작품 뒤에 숨어서 글을 끌어가지만, 수필은 그렇지 않고 글을 쓴 사람의 생각과 느낌이 그대로 노출되는 문학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말이지만, 수필을 쓰는 이라면 적어도 다음 두 가지는 기본적으로 경계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 첫째로, 글 속에서 건방짐을 걷어내는 일이다. 이 건방짐은 속담에도 있는데, ‘병자년 방죽’이라는 게 그것이다. 이 속담의 유래는 조선말 고종 때인 병자년에 극심한 가뭄이 들어 논밭이 다 타들어가고 방죽마저 메말라 ‘건 방죽’이 되었다. 이 건방죽이 ‘건방지다’는 음과 유사한지라 사람들이 그리 말하게 된 것이다. 평소에 얼마나 사람들이 거들먹거리는 걸 아니꼽게 보고 싫어했으면 이런 말이 생겨 났을까 짐작케 하는 말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자랑’인데, 이 문제 또한 얼마나 심각했으면 수필을 언급할 때 빠지지 않고 거론되는지 알 수 있다. 지난번 수필의 날에도 보니 특강에 나선 임헌영 문학평론가가 이런 말을 하는 걸 들었다. ‘자랑하는 책을 보내주려면 읽은 수고비로 돈 만원을 함께 보내라’.
그 말을 듣고 얼마나 뜨끔했는지 모른다. 그 말속에는 다분히 질책이 숨어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하는 말이지만 수필을 쓰는 사람은 항상 마음을 겸손하게 가진 가운데 ‘건방지지 않고’ ‘자랑’을 피하는 글을 써야한다는 생각이다. 자고로 건방짐은 주제넘은 태도에서 나오고 자랑은 과시욕에서 비롯되니 삼가고 삼가야 한다는 생각이다.
나의 글쓰기 자세
나는 중용에 나오는 신독(愼獨)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자기혼자 있을 때 도리에 어긋나는 일을 삼가 한다 ’는 이 말 속에는 당연히 ‘누가 보거나 안보거나’ 조심하라는 뜻이 함의되어 있는데, 이 가르침이 나를 돌아보고 경계해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이지만, 나는 글을 쓸 때 반드시 나중에라도 누군가가 내 작품을 비평하게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글을 다듬는다. 그렇기 때문에 절대로 글을 대충 쓰거나 설익은 글을 내어 놓을 수가 없다. 자연히 쓴 글을 다시 한 번 살펴보게 된다. 처신문제도 마찬가지다. 전술한 대로 수필은 글 따로 사람 따로의 글이 아니기 때문에 누군가는 지켜보고 있다는 생각을 하고 생활한다. 늘 경계를 소홀히 하지 않는다. 대화한마디, 남이 보지 못하는 이메일 하나라도 신중을 기한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 말은 쥐가 들’으며 등잔 밑이 어두울 뿐,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는 평범한 진리를 늘 명심한다.
나의 글쓰기 버릇
현재, 우리나라의 등록된 수필가 수가 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그렇다면 미등단자나 단체에 등록을 하지 않고 활동하는 사람을 합치면 오만 명이 넘지 않을까 한다. 오만 명, 적은 수가 아니다. 이들이 일 년에 열편씩만 작품을 생산한다 해도 한해 얼추 오십만 편이 되니 오죽 많은가.
여기서 우선 문제가 되는 건 엇비슷하게 쓰여 진 작품의 중첩 우려와 모작의 개연성이다. 아니 실제로 그런 작품을 적지 않게 만나게 된다. 누가 채소에 벌레가 묻어왔다고 하니 여러 사람이 그런 글을 쓰고, 누가 겨울나무 이야기를 써놓으니 너도나도 그런 글을 쓰는 걸 보았기에 하는 말이다. 그래서 말이지만, 나는 작품을 쓰면서 그런 유행과 경향에 따르지 않고 어떻게 하면 남과 다른 시각으로, 소재의 중복을 피하여 글을 쓸까 하고 고민하며 쓴다.
나는 무엇보다도 글쓰기의 제일 조건을 ‘나만의 독특한 글쓰기’에 두고 독특한 소재발굴과 표현기법에 역점을 둔다. 즉, 이름을 가리고도 누구의 작품인지 알 수 있도록 쓰는데 신경을 쓴다. 그것만이 쏟아져 나온 수필들과 차별화하고 모작을 피하는 방안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발표된 엇비슷한 작품을 대하면서 나는 일요일이면 방영되는 TV진품명품프로에서 교훈을 얻는다. 거기에 보면 가품은 아예 가격책정도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남이 쓴 작품을 모작하는 것은 나중에 받을 형사책임은 별론으로 하더라도 작품으로서 존재가치도 없음은 명심해야 한다고 본다.
나의 글쓰기 작법은 대략 이렇다. 내가 택하는 소재의 선택은 주로 60년대의 고향정서와 인연의 소중함, 삶에서의 의미 찾기이다. 그 이유는 다른 게 아니고 이게 내 성향에 가장 잘 들어맞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소화하기 어려운 글감은 아예 접어둔다. 다룰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한편의 글을 쓰기 위하여 부지런히 자료를 수집한다고 하는데, 나는 그렇게 자료를 모아 작품을 만들어낼 자신이 없다. 그래서 그렇게 하지를 않고, 메모도 하지 않고서 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글감이 떠오르면 가제목만 간단히 적어두고 대신 머릿속에서 굴리는 일을 계속한다. 그래서 그 안에서 머리가 생기고 몸통이 생기고 꼬리가 생겨나서 마침내 윤곽이 드러나면 그때서야 컴퓨터 앞에 앉는다. 이때는 이미 어느 정도 머릿속에 구도가 잡혀있는 터라 글을 쓰는데 시간은 얼마 걸리지 않는다. 그런 글쓰기를 하는 탓에 비교적 다른 사람보다 빨리 완성하는 편이다. 자료수집에 매달리지 않고, 자료라 해도 어느 연대나 이름을 확인하는 정도에 그치는 까닭이다.
그러해서인지 내 글을 읽는 사람들의 평을 들어보면 한결같이 ‘단숨에 읽었다’고 하는데, 그만큼 글이 심오한 깊이는 없을지라도 억지스럽거나 채가 지지 않는다고 믿고 있다.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평소에 꾸준한 독서와 함께 오감을 열어놓고 생활해야하며, 물 덤벙 술 덤벙 식으로 아무것이나 다루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과학이야기라면 과학자가 더 잘 알 것이요, 어느 분야의 학문 이야기라면 그 분야의 전공자를 넘어서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많이 느끼는 일이지만, 하룻밤 간병을 하면서 온갖 고생을 다하고, 환자의 아픔을 아는 양 써놓은 글을 보면 그런 생활을 한 10년쯤 하고 있는 나 같은 사람이 볼 때는 알량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는 게 사실이다.
끝으로 한마디 더 붙이자면, 수필은 뽐내면 천박해지고 엄살을 부리면 내숭스러워지는 글이 되므로 자기를 거울에 비추듯이 그대로 드러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수필은 실상 내용의 전달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글을 쓴 이의 인품을 대하고, 그 맛을 보는 글인 것이다. 그러므로 정직하게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쓰여 진 글일 때라야 꽃들이 제각기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듯이 자연히 개성 있는 글이 되지 않을까 한다. 가수 이미자는 이미자 한사람으로 족하다는 생각이다. (2007)
'━━ 감성을 위한 ━━ > 에세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비오는 날의 수채화 - 양순태 (0) | 2013.01.01 |
---|---|
설 - 전숙희 (0) | 2012.12.31 |
만인의 보석 - 손상희 (0) | 2012.12.29 |
충청도 장모 vs 서울 사위 (0) | 2012.12.28 |
황소개구리들의 울음 - 김달성 (0) | 2012.12.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