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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가락으로 사신 분 - 유동림

Joyfule 2013. 4. 11. 22:56

 

맑은 가락으로 사신 분

 

 

                                                                                      유동림

 

 

제가 선생님을 처음 뵌 것은 86년도였습니다. 《수필공원》에서 주최한 세미나에 참석하려고 지방에 가는 버스 안에서였어요. 맨 앞자리에 앉은 분이 김태길 선생님이라고 옆에 있는 문우가 말하더군요. 대석학이신 우송友松 선생님의 함자는 귀에 익은 터여서 관심이 쏠렸습니다. 학자다운 지성이 엿보이며 선비의 기상이 넘쳐 범접치 못할 위엄도 느꼈습니다.

 

돌아올 때 선생께서 재치 있는 유머를 구사하여 차 안의 사람들에게 통쾌한 웃음을 웃게 하셨지요. 땅에 발을 딛지 않는 사람 같다는 선생님의 첫인상과는 달리 인간미가 느껴지고 친근감마저 들었습니다. 선생님. 그때부터 제 가슴에는 인격이 깃든 푸른 산 하나가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선생님께서 가신 지 하루가 지나서야 부음을 접하였습니다. 도저히 믿기지 않았어요. 그렇게 쉽게 떠나실 분으로는 한번도 생각하지 않았으니까요. 영정 앞에서도 꼭 꿈만 같았습니다.

 

지난 2월 <성숙한 사회 가꾸기> 모임 총회가 있던 날이 생각나네요. 차가운 날씨임에도 분당에서 행사장인 <사랑의 열매> 사무실이 있는 광화문까지 오셔서 <성숙한 사회 가꾸기>의 역할에 대해 말씀하셨지요. 제 손을 잡으실 때 손이 몹시 차고 손의 힘이 전 같진 않았습니다. 하지만 행사가 끝났을 때 부축도 받지 않고 계단을 오르고 휴대폰으로 택시를 호출하는 등의 모습에 몇 달 내에 돌아가실 분으로는 아무도 짐작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길눈이 어두운 저는 어두워지면 불안해서, 선생님이 타실 택시가 오기도 전에 선생님을 뒤로 한 채 저 먼저 집으로 향했죠. 집에 도착하고 나니, 배웅도 못해드린 게 마음에 걸렸습니다. 그 때 제 손을 품안에 데워 선생님의 찬 손을 감싸 잡아드릴 생각도 못 했는지 후회가 됩니다.

 

선생님! 선생님께 그동안 발표한 글이 쌓여 있는데 언제 낼지는 모르지만, 단행본으로 낼 책에 서문을 써주실 수 있으신지 여쭈었던 적이 있었지요. 찬사를 바라지 않는다면 틈나는 대로 써 주겠다는 답변을 하셨죠. 선생님 같으신 어른이 내놓을 것 없는 사람의 서문을 써주신다니,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무더운 여름날 방배동 사무실에서 보잘것없는 제 글 20여 편을 며칠 걸려 읽으시느라고 애쓰신다는 소식을 사무국장으로부터 들었습니다. 선생님의 금쪽같은 시간을 할애하시면서 고생을 하시니 너무 송구해 몸둘 바를 몰랐습니다.

미루기를 잘하고 느긋하여 뜸을 들이는 제가 몇 달 후에 서문을 찾으러 사무실에 들렀을 때입니다. 맛좋고 분위기도 좋으며 고급스러운 음식점으로 모실 셈으로, 사무실 직원에게 그런 집으로 안내를 부탁했었죠. 하지만 선생님의 권유로 결국 따라간 곳은 선생님께서 자주 가신다는 소박한 순두부 집이었어요. 마음에 차지 않았지만, 선생님께서 좋아하신다니 별 수 없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식사가 끝나고 계산대 앞에 갔을 때는 이미 선생님께서 지불하셨더군요. 들어가시면서 카드를 미리 내놓으셨다고요. 어쩜 그렇게 눈치도 채지 못하게 민첩하신지 놀랄 정도였습니다.

 

그런 것에 서툰 제가 모처럼 사례를 할 셈으로 댁으로 갔었죠. 그러나 선생님의 완강한 거부에 사모님까지 합세하여 거절하시는 바람에 마음의 빚만 안고 돌아왔답니다.

 

전 원래 촌스러워 백화점에서 선물을 산 적이 없었지요. 기껏해야 제 손으로 심고 가꾼 푸성귀나 잘 익은 호박 한 덩이, 짚 한 묶음 정도였죠. 이것들을 차에 싣고 가면 짚단을 보시는 눈빛에 반가운 빛이 보였습니다. 여기서는 짚을 구하기 쉽지 않다고 하셨지요. 선생님 댁에서는 초겨울부터 ‘빰장’이라고 하는 간장을 우려내지 않은 전통 된장을 만드는데 선생님께서 이 음식을 좋아하신다지요. 선생님의 자당慈堂님으로부터 사모님이 전수 받아 지금까지 이어오는 그 빰장을 만들려면 볏짚이 필수라고 듣고, 저는 가을이면 어떻게든 짚단을 구해서 챙겼던 것입니다.

 

시골에선 가장 흔하고 값 싼 것이 지푸라기가 아닐까요. 오죽하면 쓸모없는 사람을 이르러 지푸라기만도 못한 인간이라고 하겠습니까. 하지만 그러한 것을 반기시는 선생님. 선생님께서는 어떤 것의 가격과는 상관없이, 실제 소용에 따라 가치를 두시는 분이었습니다.

 

우송 선생님. 참으로 죄송합니다. 그리고 면목 없습니다. 봄에 뵈었을 때, 제가 올 여름 안에 책이 나올 것 같다고 했지요. 혹시 궁금해 하실까봐 당시의 계획을 말씀드렸어요. 하지만 문우 한 사람이 자녀 혼사 때 하객들에게 책을 주었더니, 호응이 좋았다면서 저에게도 그렇게 하길 권해서, 몇 달 또 미루게 되었습니다.

가을쯤 아들의 혼사가 있을 예정이어서 그때 상재할 계획이었는데, 선생님께서는 그 새를 기다리지 않고 가시는 길이 무엇이 그리 바쁘다고 훌훌 떠나셨나요.

선생님께서는 수하신데다 병석에서 오래 신고辛苦하시지 않아서 참 복이 많으신 어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것은 할 일이 많지 않은 사람에게 해당되는 말인 것 같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앞으로 하실 일이 많고 사회에 영향을 끼칠 일들이 많아 백수도 부족하다고 생각되어 아쉽습니다.

선생님! 제 안에 모셨던 푸른 산은 5월 27일에 무너졌습니다. 마음이 빈 듯 허전합니다. 하지만 선생님의 향기만은 오래오래 간직할 것입니다.

 

 

수필가. 전북부안출생. 한국수필등단. 세계일보신춘문예 당선. 《한국수필》 등단.수필집 '유리병속의 씨앗'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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