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성을 위한 ━━/이한규목사

먼저 ‘된 사람’이 되라

Joyfule 2008. 7. 8. 00:16

 
먼저 ‘된 사람’이 되라   
성령이 임하면 성품이 부드러워진다. 
그때 문제 해결과 상처 치유가 시작된다. 
성령 충만을 오해하지 말라. 한때 전투적이 되고, 표정이 근엄해지고, 눈빛이 날카롭고, 
쉰 목소리가 된 것을 성령 충만의 표시로 오해했다. 
쉰 목소리가 더 성령 충만하게 들린다고 해서 목소리를 일부러 망가뜨리는 것은
 ‘성령 충만’이 아니라 ‘허영 충만’이다. 
성령 충만은 정상이 비정상이 되는 것이 아니라 비정상이 정상이 되는 것이다. 
성령 충만의 가장 큰 특징 중의 하나는 ‘아름다운 인간관계’이다. 
“능력이 있는가?”보다 “관계가 좋은가?”가 더 중요하다. 
자동차에는 2만개의 부속품이 있다. 대부분 쇠로 만들어졌지만 
아무 마찰 없이 굴러가는 이유는 윤활유 때문이다. 
개성이 강한 사람들이 모여도 성령의 기름이 부어지면 아름다운 관계가 얼마든지 가능하다.
성령 충만하고 능력이 있다고 자처하는 어떤 아내는 
남편의 태도가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사단아! 물러가라!”고 한다. 
그 모습을 보면 사단은 물러가지 않고 비웃는다. 
반면에 남편을 위해 더 기도하고 사랑하지 못한 것을 회개하며 온유하게 남편을 대할 때 
오히려 남편을 붙잡고 있는 사단이 물러간다. 
성령이 임하면 말도 부드러워진다. 
심한 말로 남의 마음에 큰 상처를 입혀놓고 “나는 뒤끝이 없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자기야 상처를 입혔기에 뒤끝이 없지만 상처 입은 사람은 
뒤끝에 남은 상처로 큰 고통을 당한다. 
그래서 대개 뒤끝이 없다는 사람들이 무섭다. 
그런 사람들 때문에 공동체에 눈물이 마를 날이 없게 된다.
심한 말을 하고 나중에 “내가 그때 참을 걸!”하고 후회할 때가 얼마나 많은가? 
남의 마음을 뒤집는 데는 1분도 걸리지 않지만 
그가 마음의 상처를 추스르는 데는 1년 이상 걸릴 수도 있다. 
내가 1분만 참으면 되는데 그것을 참지 못해 
남에게 오랜 고통의 시간을 부여하는 것은 큰 죄악이다.
온유한 것이 진짜 강한 것이다. 
자연계를 보면 호랑이나 사자처럼 강하다는 것들은 점차 멸종하지만 힘없는 곤충들은 번성한다. 
사람도 강하다는 사람은 축복의 흐름이 끊기지만 온유한 사람은 자손만대로 번성한다. 
적극적인 삶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떠나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자기 항복이다. 
‘무엇을 하는 것’보다 ‘무엇이 되는 것’이 먼저이다. ‘된 사람’이 일도 되게 만든다.
‘된 사람’이 되기는 쉽지 않다. 모세는 되는 데 40년 걸렸다. 
그처럼 되기가 어렵지만 먼저 되어야 한다. 
성령의 불도 이웃을 모르는 ‘난 사람’보다 이웃을 아는 ‘된 사람’에게 임한다. 
성령님은 나의 축복이 남의 축복이 되게 한다. 
남에게 복의 의미를 전해주지 못하는 성령 충만은 진짜 성령 충만이 아니다. 
ⓒ 이한규목사(분당 샛별교회) http://www.john316.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