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성균 수필 연재 - 그리운 새우젓 맛
새우젓 맛은 눈물겹다. 윗버들미 아낙네들은 밥상 한가운데다 굳이 새우젓종지를 장물종지와 고추장종지와 겨루어 놓았다. 새우젓이 감히 밥상 위에서 장물과 고추장에 버금가는 위치를 차지한 것은 사실 파격이다.
된장과 고추장을 담그는 일은 여자의 자존심이 좌우되는 농사다. 장맛은 그 집안의 가통을 맛보여 주는 것으로 여자들은 정절만치나 소중하게 지키고, 전수하여 오는 것이다. 새우젓 담그는 일이 장 담그는 일 만치 까다로울 수는 없다. 그래도 여자의 배타적 구역 안에다 새우젓을 들여놓아 주는 것은 먼바다에서 이 산골까지 와서 가난한 입맛을 돋궈 주는 귀물(貴物)이기 때문이다. 새우젓이 손님 대접을 받는 것이다.
나는 새우젓을 한 젓갈 씹으면 된장국물을 한 숟갈 떠먹는다. 된장의 구수한 맛이 비린 맛에 익숙하지 않은 내 촌스러운 구미를 중화시켜 주기 때문이다.
내가 어릴 때, 우리 집 살강 구석에는 사기단지가 하나 놓여 있었다. 거기에는 항상 새우젓이 담겨 있었다. 그 시절 두메 사람들의 고단한 구미를 돋궈 주는데 새우젓은 없어서 안될 식품이었다. 장처럼 음식의 맛을 내는데 꼭 필요했다. 김장에는 물론, 애호박찌개, 계란지짐에 꼭 새우젓이 들어갔다. 그 뿐이랴, 돼지고기를 먹고 체한 데는 없어서 안 되는 상비약이기도 했다.
건강 하나로 가난한 삶의 무게를 소처럼 꾸준하게 끌고 가던 시절, 윗버들미 아낙네들은 남정네의 식욕이 떨어질까 봐 늘 맘 졸이며 살았다. 남정네의 식욕이 떨어 졌다는 것은 건강을 잃었다는 것으로 그 건 곧 가세의 영락으로 이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집집마다 살강 구석에 새우젓단지가 준비되어 있었고, 아낙네들은 새우젓단지의 바닥을 들어내는 일이 없도록 유념했다.
그 시절, 우수 경칩이 지나면 새우젓장수가 겨울잠을 들 깨우듯 ‘새우저-엇, 사-려.’ 소릴 고래고래 지르면서 봄 햇살이 아물아물한 동네 앞 곳집거리 논둑 길로 해서 동네에 들어왔다.
그 되통 맞은 새우젓장수도 지게에 동그마니 나무로 만든 통자 두 개를 얹어 가지고 그 길로 왔다고 한다. 윗버들미 사람들은 새우젓 통자 두 개를 달랑 짊어진 그 새우젓장수를 일러 세상을 불알 두 쪽만 달고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했다.
해동 무렵의 윗버들미의 곳집거리 길은 몹시 미끄러웠다. 시커먼 질흙이 밤에는 얼었다가 햇살이 퍼지면 녹아서 길바닥이 참기름 바른 절편같이 반질반질 했다. 윗버들미 사람들은 해동 무렵 한 번쯤은 이 길에서 엉덩방아를 찧어보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다.
곳집거리는 동네 앞 언덕에서 빤히 바라보인다. 사람들은 동네 앞에 모여 서서 그 길로 옷 갓을 갖춰 입고 출타하는 어르신네를 보면 숨을 죽이고 귀추를 주목했다. 진심으로 어르신네가 불상사를 당하지 않고 곳집거리를 지나가 주기를 빌어 마지않았다. 어르신네가 무사히 그 길을 지나가면 바라보던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휴-’하고 한숨을 몰아 쉬었다. 그러나 젊은 사람이 출입할 때는 경우가 다르다. 은근히 불상사가 발생하기를 바랬다. 젊은 사람이 그 길에서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찧으면 사람들은 기탄 없이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내가 그럴 줄 알았어, 잠방이에 똥 싼 놈처럼 엉거주춤해 가지고 걷는 꼴이 일 치를 것 같더라니-.”
아득한 보리고개를 목전에 둔 가난한 시절 윗버들미 사람들은 곳집 위로 아른거리는 아지랑이에 심난해서 서있는데 바람직한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서로 얼굴을 쳐다보고 박장대소를 할 수 있는 일을 만들어 준 그 사람, 침울한 절기의 두메사람들에게 <엔돌핀>을 분비시켜 준 고마운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 길에서 새우젓장수가 미끄러졌다. 아-! 그 건 있어서는 안 될 일이 저질러 진 것이다. 그는 넘어지면서 식솔을 건사할 생업 밑천인 두 통자의 새우젓을 길바닥에 내동댕이쳤다. 새우젓이 질펀하게 미끄러운 질흙바닥을 절였다. 새우젓장수의 처지로 보아서 그 건 자기 불알 두 쪽을 진창길에 떨어뜨린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너무 많이 늙으셔서 새우젓처럼 등이 굽은 조그만 우리 어머니, 잘 숙성된 한 마리의 젓갈 새우처럼 안쓰럽다.
새우는 낙월도(落月島) 근해에서 많이 잡힌다고 한다. 달이 몰락하는 섬은 얼마나 외롭고, 슬프고, 아름다울까. 우리 어머니는 새댁시절에 된서리 내린 새벽 우물길에서 서산에 지는 달을 참 많이 보았다고 하셨다.
“서산에 지는 달 보면 눈물나지요?”
“눈물 날 일도 많다.”
달의 몰락을 보면 눈물 날 것 같은 내 생각은 어머니의 한 평생에 대하면 죄송한 감정의 사치다.
왜 새우젓을 담는 새우는 낙월도 근해에서 많이 잡힐까. 움직일 수 없는 멍텅구리 새우잡이 배의 어부들은 외로운 섬 기슭으로 지는 달을 수도 없이 많이 보았을 것이다. 새우잡이 그물을 건져 올리는 일은 슬픔을 건져 올리는 일이라고 생각 든다. 낙월도는 그 어부들이 지은 이름일지 모른다.
나는 낙월도에 가보지 않았지만 그 조그맣고 속살이 투명한 절인 갑각류를 보면 서해의 외로운 섬 낙월도가 보인다. 그 새우가 잡혀서 새우젓이 되어 이 산 속 윗버들미까지 오는데는 얼마나 많은 고단한 생업이 줄을 서있었을까. 잡아서 절여서 숙성해서 새우젓이 된 후, 황포돛배에 시려서 마포나루에 부려지고, 다시 작은 돛배로 한강을 거슬러 올라와서 목계나루에 부려진다. 거기서부터 소나 나귀의 질마에 얹혀서 장터 어물전으로 온다. 그리고 새우젓장수의 등에 짊어지워저서 이 산골 윗버들미까지 온 것이다. 생각하면 고맙고, 눈물겹고, 경이롭기까지 하다.
그 새우젓을 겨우 동구 밖 진창길에다 메쳐서 쏟아 버린 되통 맞은 새우젓장수는 뭐한 놈이 성낸다는 격으로 언덕에 올라서서 동네에다 대고 고래고래 소릴 질렀다.
“윗버들미놈 입에 새우저-엇.”
“윗버들미놈 입에 새우저-엇.”
윗버들미놈이 무슨 새우젓 먹을 팔자가 되겠느냐는 멸시의 뜻으로 한 말일 것이다. 윗버들미 사람들이 저더러 그 길바닥에 새우젓 통자를 지고 넘어지라고 빌기라도 한 것처럼 누굴 붙들고 뒤잡이를 치려는 듯이 시비를 걸어왔으나, 기실은 새우젓장수 자신의 삶을 동댕이치고 싶은 절규였을지 모른다.
순박한 두메 사람들은 불알 두 쪽을 잃은 사람의 암담한 심사도 모를 만치 우매하지는 않았다. 동네 장정들은 모두 집안으로 피해버렸다.
발 없는 말이 천리 간다는 격으로 연풍 장터까지 ‘윗버들미놈 입에 새우젓’ 소리가 퍼져서 윗버들미 사람들의 삶에 대한 대명사처럼 되어 버렸다. 장터에서 윗버들미 사람들이 옹기를 흥정하다가 금이 비싼 듯해서 안 사거나, 낫을 흥정하다가 쇠가 무르다고 안 사면 옹기장수나 대장장이는 언필칭 “아나, 윗버들미놈 입에 새우젓-.” 하고 상도(商道)에 어긋나는 감정을 내비쳤고, 오랜만에 만난 친한 친구가 반갑다고 하는 소리도 ‘새우젓 오랫만일세’였다. 되퉁 맞은 새우젓장수가 공연히 윗버들미 사람에게 궁색한 별명을 달아준 것이다.
윗버들미의 한 세대가 바뀌고 있다. 이제 짭짤하고, 비릿하고, 퀴퀴한 새우젓 맛 같은 그 별명을 패각류의 등딱지처럼 짊어지고 살던 그리운 사람들은 그 별명을 짊어진 채 세월 저 쪽으로 사라져 가고 있다.
‘윗버들미 놈 입에 새우젓-.’ 그 그리운 별명도 조만간 들을 수 없이 되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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