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성균 수필 연재 - 논란의 여지(論難의 餘地)
대호방조제 서편에 있는 삼길포에 가서 회를 먹고 오는 길이었다.
내륙인 청주에서 서해까지 가서 회를 먹고 온다면 언뜻 호사스러운 짓 같아 보이지만 사실은 서민의 영양 보충을 위한 궁여지책에 불과할 뿐이다. 호사를 하려면 그렇게 멀리 갈 필요가 없다. 청주에도 정갈한 일식집이 얼마나 많은가. 거기 가서 솜씨 좋은 요리사가 고급 회고기의 살점을 예쁘게 저며서 널찍한 일본식 회 접시에 치장해 내는 것을 음미하듯 먹는 게 호사다. 뼈심 들이지 않은 돈이 생겼을 때 그렇게 낭비하는 것이 지역경제를 활성화시키는데 도움이 되어서 좋지만 아무나 해 볼 수 있는 짓은 아니다.
그 포구에 가면 어선들이 죽 뱃전을 붙이고 활어를 팔고 있다. 수상시장(水上市場)인 셈이다. 우럭, 놀래미, 간재미, 도다리 등 앞 바다에서 잡아오는 잡어(雜魚)들인데 대개 1kg에 만오천 원씩이다. 흥정이 끝나면 아주머니들이 배 바닥에 설치 된 어창(魚艙)에서 고기를 건져 올려 저울에 달아서 양을 확인시키고 회를 뜬다. 회를 뜨는 아주머니 앞에 쭈그리고 앉아서 바다 바람에 머리칼을 날리며 실례를 범하지 않을 정도로 농담을 실실거리는 재미도 즐길 만 하다. 아주 순박한 포구의 아낙들이다. 관광객들에게 시달려서 장사치가 되었음 직한데 순박한 천성은 쉬 바꾸지 못하는 듯하다. 그 게 충청도 기질 아닐까 싶다. 햇볕과 바다바람에 절어서 얼굴이 검붉은 아낙네들이 ‘이랬어유-. 저랬어유-.’ 하고 늘어지는 말투로 농담을 받아주면 참 기분 좋다. 오래 입은 옷처럼 편한 사람들-.
이 아주머니들이 회를 뜨는 칼은 물론 회칼이 아니다. 그냥 보통 창칼로 활어의 살점을 나박김치 담글 무 썰 듯해서 1인분만큼 씩 담기는 플라스틱 용기에 담아 준다. 그리고 어느 식당으로 가라고 먹을 장소를 알선을 해준다. 그러면 그 집에 가서 채소 값, 초장 값, 매운탕 값으로 1인당 5천 원과 술을 사서 생선회를 허기진 농부 보리밥 상추쌈 싸 먹듯 꾸역꾸역 먹는 것이다. 그 건 호사와 거리가 먼일이다. 그 것도 삶의 기쁨이다. 밭머리 고염나무 그늘아래서 새신랑 농부 내외가 그렇게 쌈을 싸서 볼이 메어지게 먹는 행복한 모습을 본 기억이 난다. 보고 나서 기분 좋았다. 삼길포에 가서 회를 먹는 것은 그런 마음이다. 비브리오패혈증도 까맣게 잊게 하는 포만과 대취-.
그러나 문제는 항상 술이다. 돌아오는 길에 김형이 단란주점에 들려서 색시하고 딱 술 한잔씩만 하고 가자는 걸맞지 않은 제의에 말 쌈이 벌어졌다.
“우리가 무슨 386세대 국회의원 망월동 묘지 다녀오는 길이여, 단란주점엘 가게-.”
성미가 솔직해서 불쾌감을 삭이지 못하고 톡 뱄어내는 정과장이 한 마디에 공연히 이해상관도 없는 386세대를 가지고 논란이 벌어졌다.
386세대란 컴퓨터 용량이 386일 때 그 기종을 사용한 세대란 박형의 해석과 삼 팔 따라지에 여섯 끗을 받아서 끗발이 일곱 끗이 된 세대를 말하는 거라는 김형의 해석이 충돌을 한 것이다.
“일곱 끗이면 ‘꾸빙이’ 끗발로는 먹을 확률이 70%인겨, 밤새도록 내리 일곱 끗 만 잡으면 ‘꾸빙이’ 판 쓰는 겨-. 그래서 끗발이 센 세대를 386세대라고 하는 겨-. 쥐뿔도 모르면 입 다물고 있어, 그럼 반 똑똑은 되는 겨-.”
“그래, 너 잘났어. 더러워서 잘난 놈하고 같이 안가. 나 내릴 겨-.”
박형이 달리는 차 문을 열어서 나는 기겁을 하고 차를 노견(路肩)에 세웠다.
밤이 깊었다. 칠갑산 줄기의 깜깜한 산 속이다. 별빛 아래서 남은 술로 안주도 없이 화해의 술판을 벌린다.
어는 물 논에서 개구리가 왁자하게 운다. 개구리가 우는 어두운 도랑 가에서 별을 보며 상록수(常綠樹)처럼 가난한 농촌살이의 개선책을 논하면서 밤을 지새던 젊은이들이 생각난다. 초가지붕을 걷어 내고 스레이트지붕으로 바꾸고, 울타리를 뜯어내고 담을 쳤다. 소득과 상관없는 짓을 온 마을 사람들의 앞장에 서서 ‘잘살아 보세-. 잘살아 보세-.’ 하며 공연히 신명이 나서 열심히 일하던 젊은 그들---.
그들을 630세대라고 부르면 될까? 나이 60대에 학번도 없이 무식한 30년대 생들이다. 그들은 참 많은 일을 했다. 합당한 노임도 못 받으면서 밤낮이 따로 없이 공단에서, 건설 현장에서, 월남의 정글에서, 열사(熱砂)의 중동에서 잘살아 보겠다는 일념으로 일 했다. 그래서 386세대를 길렀다. 그런데 386세대는 공연히 망월동 묘지에나 다녀올 것이지 무엇 하러 룸싸롱엔 가서 색시들을 끼고 술판을 벌려 가지고 논란의 여지를 만드는 것인가. 왜 630세대의 가긍(可矜)한 나들이 길을 더디게 하는 것인가 말이다. 신경질 나게 시리---.
칠갑산 위로 달이 뜬다. 콩밭 매는 아낙네가 생각난다. 고마운 세대의 어머니, 그 세대를 이끌어온 독재자의 열정적인 국가관이 칠갑산 위의 달처럼 맑다. 아주 맑은 달이 혼돈의 시대를 밝히고 있다. 개구리 우는소리도 맑다. 제발 세상이 혼돈할 때 우리라도 맑아 보자는 정과장의 우국충정에 모두 동감을 하고 깊은 밤길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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