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성균 수필 연재 - Spring has come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영어라고는 ‘Spring has come' 이 한마디뿐이다. 기억이 분명치는 않으나 중학 2학년을 막 시작한 때 배운 거 같다.
Spring has come을 가르쳐주신 영어선생님은 여선생님이셨다. 영어 선생님은 마치 워즈워드의 시를 읊듯이 Spring has come 하고 창 밖을 내다보며 혼자 소리처럼 ‘바야흐로 봄이다’ 하셨다. 지금 생각하면 그 때 선생님은 누구를 짝사랑했던지, 사랑할 사람이 없던지, 아무튼 퍽 가난한 봄을 맞이하고 계셨던 게 틀림없다. 그게 내 잘못처럼 선생님께 죄송했다.
다음 과목으로 넘어가도 될 ‘Spring has come’을 벌써 몇 일 째 배우는 중이었다. 우리는 그 어귀를 숙지하고도 남았다. 교과 진척에 차질이 생긴 것이다. 그 차질은 학생에게 있는 것이 아니고 선생님에게 있었다.
창 너머로 아지랑이가 가물거리는 시커먼 석회암 산이 건너다 보였다. 가파른 석회암 비탈면에 관목인 도장나무(회陽木) 군락이 새파랗게 살아나고 있었다. 겨우내 다갈색으로 죽은 듯 암벽에 붙어 있던 도장나무들이 시커먼 바위 빛깔과 대비를 이루며 새파랗게 살아나서 중학 2년 생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다.
훗날 내가 문학소년을 자처할 때 워즈워드의 시 ‘초원의 빛’을 참 좋아했다. 이 시를 정식으로 배우고 탐닉한 것은 아니고, 나타리 우드와 미남배우가 출연한 영화 ‘초원의 빛’을 보고 난 후유증이었다. 그러니까 ‘Spring has come’을 배우고 2년 쯤 후, 교과서 팔아서 영화를 보던 고 2나 3 쯤일 것이다.
그 영화의 스토리를 다는 기억할 수 없지만 소재와 주제는 워즈워드의 시 ‘초원의 빛’이다. 주니어인 아름다운 두 남녀가 사랑을 했다. 그런데 지금은 기억할 수 없는 어떤 이유로 사랑은 성사되지 못하고 헤어진다. 훗날 나타리 우드가 옛 애인의 신접살림 집을 방문한다. 옛 애인 커플은 가난한 신접살림을 하고 있었다. 귀여운 아기를 하나 두었던가 만삭의 몸이었던가 했다. 나타리 우드가 한 때 아름다웠던 사랑의 추억이 덧없음에 비감해져서 그 집을 떠난다.
이제는 속절없이 사라져 가는
돌이킬 길 없는
초원의 빛이여, 꽃의 영광이여
우리는 서러워하지 않으며
뒤에 남아서 굳세리라.
Spring has come. ‘바야흐로 봄이다!’ 그 영어선생님은 그렇게 해석을 해주셨다. 생각하면 다분히 자기 도취적인 어려운 의역이었는데 나는 잘 알아들었다. 바야흐로 봄이면 어떻다는 것인지를---. 대학을 갓 졸업하고 부임한 여선생님이 창 너머 산비탈의 도장나무 소생을 건너다보는 아직 세속적이지 못한 옆얼굴에 잘 나타나있었다.
한 때 워즈워드의 ‘초원의 빛’은 젊은이들간에 애송되는 시였다. 이발소에도 거울 위쯤 초원의 그림과 더불어 쓰여진 이 시가 액자에 담겨서 걸려있을 정도였다. 특히 무심천에 벚꽃이 필 때, 이 시구 중에서 ‘초원의 빛이여, 꽃의 영광이여---.’를 비 맞은 중처럼 중얼거리고 다니지 안으면 남학생 구실 하는데 지장이 많았다. 시적 감각이 없는 내 크라스메이트인 레슬링 선수 정건이도 문둥이처럼 짓이겨 놓은 귀때기와 들창코를 해 가지고 게슴츠레한 실눈으로 그 시를 내게 읊어 보였다. ‘임마, 어때? 나, 시인 같어-?’ 하고 물어왔다. 그 녀석도 무심천 벚꽃나무 아래서 여학생이라도 만나기로 되어 있었던 모양이다.
몇 해 뒤 겨울방학을 해서 집에 와있을 때다. 장날이었는데 길거리에서 영어 선생님을 보았다. 같이 길을 가던 중학 동창인 친구가 ‘저기 Spring has come 간다’고 해서 보니까 영어선생님이 동산 만한 배의 무게에 허리가 뒤로 젖혀진 채 장바구니를 들고 어기적어기적 걸어가고 있었다. 아-! 누가 우리 영어선생님을 저 지경으로 만들어 놓았을까.
바야흐로 봄이다. 나타리 우드 같았던 그 영어선생님 지금쯤 파파 할머니가 되셨겠지-. 어디서 워즈 워드처럼 Spring has come 하고 봄을 읊으실까.
이제는 속절없이 사라져 가는
돌이킬 길 없는
초원의 빛이여, 꽃의 영광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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