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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성균 수필 연재 - 당목수건

Joyfule 2012. 3. 29. 04:00

 

    

 

 

목성균 수필 연재 - 당목수건



공군사관학교에 여자생도가 입교했다. 여생도 들이 정식 사관생도가 되기 전에 반드시 거치는 가입교(假入校) 훈련 모습이 K.B.S에 방영되었다. 가입교 훈련은 공군 사관생도가 될 수 있는지 자질과 체력을 시험하는 과정이라고 한다. 여기서 낙오하면 입교가 되지 않는다. 여자의 몸으로 얼룩무늬 군복을 입고 제식훈련과 사격은 물론, 완전 군장을 하고 15킬로미터를 구보하는 등 남학생과 똑같이 혹독한 훈련을 받는다. 체력의 한계를 넘는 여자의 인내심이 눈물겨웠다. 여성을 초월하는 그 상식 밖의 힘이 어디서 생기는 것일까. 모성(母性)인지도 모른다.
마침내 훈련과정을 이겨내고 감격의 눈물을 펑펑 쏟으며 부모님께 입교 신고를 하는 여생도들-. 다감다정한 곡선미를 그 대로 드러내 보이는 여자 사관생도들의 제복 모습이 참 아름다웠다.

흔히 ‘여자 팔자는 뒤웅박 팔자’ 라고 했다. 어느 사람의 허리춤에 채워지느냐에 따라 운명이 정해지는 뒤웅박 신세. 남자에게 매이는 여자의 일생을 뒤웅박에 비유한 말일 것이다. 그 가부장적 봉건사회의 통념을 제복의 여자 공사생도들이 분명하게 허물어 버렸다.
남자가 보기에도 통쾌하지 않을 수 없다. ‘빨간마후라는 하늘에 사나이---.’ 이제 남자들은 전후의 한 시대를 풍미하던 그 유행가를 부르기가 좀 계면쩍게 되었다. 아직 여드름이 빨긋빨긋한 뺨에 여성의 꿈이 깃든 앳된 소녀들이 빨간마후라를 목에 두르고 적진 깊숙이 출격하는 전투기 파일럿을 택한 것을 남자들은 건방진 수작이라고 질시(嫉視)해서는 안 될 것이다. 존재를 확립하려는 성(性)을 초월한 용기에 남자들은 마땅히 박수를 보낼 일이다.

나는 그 공군 여생도 들을 보면서 할머니를 생각하고 격세지감을 느꼈다. 내 할머니는 열일곱에 시집오셔서 열아홉에 아버지를 낳으시고 스물한 살에 혼자 되셨다. 그리고 아흔 일곱까지 농부(農婦)로 사시다가 돌아가셨다. 당신이 원해서 그렇게 사신 게 아니다. 운명일 뿐이었다. 저 여자 공사생도 만한 나이 때 할머니는 가마 타고 시집오셔서 아들 낳고 지아비를 여의고 골방에서 소복을 하고 소리를 죽이고 울었을 것이다. 그것은 정식 사관생도가 되고 엉엉 소리를 내서 우는 저 여자공군사관 생도와는 전혀 다른 처지의 울음이었다. 할머니의 울음이 운명에 매이는 여자의 일생에 대한 통한의 울음이라면 저 여생도들의 울음은 운명을 깨뜨리고 나서는 감격의 눈물이다.

내 기억에 의하면 안방 횃대에는 할머니의 당목수건이 걸려 있었다. 당목수건은 할머니가 집안에 있을 때만 횃대에 걸려 있었고 할머니가 삽짝 밖으로 나가면 반드시 할머니 머리에 얹혀서 따라갔다. 당목수건은 할머니의 살붙이 같은 것이었다.
나는 문득 저 여자 예비 공사생도가 파일럿이 되었을 때 목에 두를 빨간마후라와 할머니가 머리에 쓰시던 당목수건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생각해 보았다. 공통점은 여자가 사용한 물건이고 차이점은 빨간마후라가 장렬한 의지를 나타내기 위한 것이라면 당목수건은 햇볕을 가리고 땀을 닦는데 쓰였다는 점이다.

당목수건을 보면 할머니의 한 생애가 보인다.
갈걷이가 끝난 상달, 동네 앞 빈 들길로 키가 자그만 한 안 노인네가 머리에 당목수건을 쓰고 걸어가신다. 뉘 잔칫집에 가시는 것이다. 노을이 골 안에 벌겋게 퍼지는 저녁때, 나는 동네 앞 언덕에 앉아서 할머니를 기다렸다. 할머니는 그 들길로 흥얼흥얼 노랫가락을 읊조리며 취하신 걸음으로 돌아오셨다. 나는 반색을 하고 할머니한테로 마주 달려갔다. 할머니는 술 냄새나는 입으로 손자의 볼에 입을 맞추고 들길에 무얼 싸가지고 오신 당목수건을 펼쳐 놓으셨다. 편육, 떡, 전, 약과 같은 잔칫집의 차림새가 당목수건에 일목요연하게 진설 되었다.

아-. 기쁨에 단 내 얼굴을 감싸주던 만추의 저녁바람을 잊을 수가 없다. 조손(祖孫)이 동구 밖 들길에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나는 둥지에서 먹이를 물어다 주기를 기다리고 있던 새끼 새처럼 할머니가 싸 오신 잔칫집 음식을 게걸스럽게 먹고, 그런 나를 쳐다보는 할머니의 얼굴은 노을 빛 때문인지 술기운 때문인지 벌겋게 물이 들었는데 눈을 조그맣게 뜨시고 나를 그윽하게 바라보셨다. 나는 할머니의 그 행복한 얼굴을 생각하면 지금도 행복하다.
싸락눈 내리는 고추같이 매운 동지섣달, 당목수건 한 장으로 추위를 막으시고 할머니가 이강들 강바람을 안고 장터 송약국에 건너가서 손자의 고뿔 약을 지어 오셨다. 그 할머니의 인동(忍冬)만치나 쓴 첩약을 지어 가지고 오신 언 손으로 이마를 짚으시면 불같은 내 신열이 내렸다. 그 때 싸락눈 내리는 고추같이 매운 동지섣달 추위를 할머니는 당목수건 하나로 견디며 다녀오셨을 것이다.
잔칫상에 둘러앉은 좌중(座中)의 따가운 눈총을 받으며 음식을 한 점씩 골라 당목수건에 싸셨을 할머니의 치사(恥事)가, 할퀴듯 아린 강바람을 안고 가서 지어 오신 탕제(湯劑)가 새삼 목구멍을 뜨겁게 달구며 넘어간다.

나는 당목수건 냄새를 잊지 못한다. 어느 여름날 나는 할머니를 따라서 밭고랑에 엎드려서 무슨 일인지를 했다. 그 때 할머니는 ‘이 땀 좀 봐’ 하시며 당목 수건을 벗어서 내 얼굴을 닦아 주셨다. 시큼한 땀 냄새, 동백기름에 짠 머리 냄새, 그 불결한 냄새가 세월 따라 향수(香水) 냄새처럼 은은하게 코끝에 스며든다. 할머니의 당목수건 냄새는 할머니의 숙명과 여자 본성이 섞인 냄새다. 당목수건으로 영위한 할머니의 생애는 얼마나 고달팠을까. 내 기억에 의하면 당목수건을 쓰신 할머니가 삶을 섭섭하게 여기시는 기색을 보지 못했다. 할머니는 당목수건을 머리에 쓰시고 한 필의 스무 새 고운 무명길쌈을 하듯 공들여서 한평생을 사셨다.

저 여자 공사생도들이 스스로 선택한 빨간마후라가 긍지라면 할머니의 꽃다운 나이에 졸지에 주어진 당목수건은 그저 운명일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여자 파일럿의 빨간마후라에 비행기 기름 냄새와 화약 냄새만 나서야 어디 훗날 손자의 기쁨으로 남겨질 수 있겠느냐 하는 것이다. 나는 장렬한 여자의 일생에 대해서는 부득이 국민적 경의는 표할지언정 사랑하지는 않을 것이다. 국가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여자의 일생에서는 여성의 채취를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자는 파일럿이 되지 말라는 말은 아니다. 빨간마후라를 우리 할머니처럼 당목수건의 용도로 쓰는 여자 파일럿이 되어 주길 바란다. 빨간마후라에서 편육, 떡, 전, 약과 냄새도 나고, 향수 냄새도 나고, 탕제 냄새도 나고, 전진(戰震) 냄새도 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파일럿의 회식자리에서 남자 파일럿들의 눈치를 보며 빨간마후라에 사랑하는 뉘 입에 넣어 줄 맛있는 먹거리를 싸가지고 올 수 있는 치사(恥事)도 할 줄 알아야 한다.

나는 빨간마후라에 싼 봉송 꾸러미를 안고 오는 여자 파일럿의 모성적 본색을 상상하며 제복의 섹시함을 신선한 충격으로 바라보았다. 여자 파일럿의 빨간마후라는 이태리제 실크 머플러가 아니다. 우리 할머니의 당목수건 같은 것이다. 부모님께 ‘충성’하고 거수경례를 하는 여자 공사생도의 상기한 예쁜 얼굴에서 나는 그럴 기미를 보았다. 예비 여생도들이 예쁘게 보이는 것은 그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