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성균 수필 연재 - 꽃이 핀 자리
아파트의 녹지공간에 심어져 있는 꽃나무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다투어 꽃을 피웠다. 너 나 없이 개성적인 아름다움을 뽐낸다. 매화는 고결하고, 진달래는 애잔하고, 목련은 풍만하다.
아파트 녹지 공간을 차지하고 사는 꽃나무들은 당연히 아름다운 꽃을 피울 의무가 있다. 입주자들의 관리비로 가꾸어진 정결한 녹지에 뿌리를 내린 꽃나무가 아름다운 꽃을 피우지 못한다면 부득이 퇴출시킬 수밖에 없다. 나는 얼마간의 관리비를 지불했다는 이유로 아주 거만하게 그 꽃들을 완상(玩賞)할 뿐 달리 더 고마움 같은 것을 느끼지는 않는다. 그래서인지 꽃도 내게 감히 교만을 떨지 않고 그저 화사한 미소만 보여준다.
아파트 베란다에 서서 보면 모충동 뒷산이다. 산과 아파트 부지 경계에는 옹벽을 처서 절개지를 처리했다. 그 옹벽 위에 누가 일군 따비밭 한 끝이 보이고 따비밭 경계에는 가시철망을 둘러쳐 놓았는데 비닐, 헝겊 쪼가리 같은 허접 쓰레기가 바람에 불려 와서 지저분하게 걸려 있다. 그 가시철망 주변, 훼손 된 환경에서 요즈음 생각지도 않은 철쭉이 한 그루 화사하게 꽃을 피웠다.
필 자리에 핀 꽃이야 무슨 대수랴, 생각지 않은 곳에 핀 꽃이기 때문에 더없이 곱다. 시인이 ‘아픈 데서 피지 않는 꽃이 어디 있으랴’고 한 아픈 데란 사람들이 삶의 꽃을 피우지 못한 아픈 마음을 이른 말일 것이다. 항상 꽃을 피울 자만의 자리를 꿈꾸는 사람들의 이루지 못한 마음에 꽃은 피어서 아프다.
나는 하찮은 내 자리에서 꽃을 피우려 하지 않고 꽃을 피운 남의 자리만 선망한다. 사회 구성 밀도만 차지한 응집력 없는 사람에게 꽃이 필 자리가 아닌 자리에서 화사하게 핀 꽃이 시사하는 바가 가혹하다.
비단 그 철쭉꽃뿐이 아니다. 길섶에 피어서 무심히 지나가는 사람을 잠시 기쁘게 하는 꽃다지, 제비꽃, 민들레 같은 풀꽃들-.
꽃은 어느 자리에 처하든 간에 그 자리를 분복으로 알고 저만한 꽃을 성의껏 피운다. 사람들은 삶의 의미를 풀꽃만치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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