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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성균 수필 연재 - 봄빛을 따라서

Joyfule 2012. 2. 14. 04:20

 

    

 

목성균 수필 연재 - 봄빛을 따라서
1
창문이 환하다. 커튼 열어보니 검은 구름이 수평선을 산맥처럼 둘러 싸고 있다. 이미 해가 수평선 위로 불쑥 솟은 모양이다. 구름의 능선이 진달래 빛 레이스를 단 것처럼 곱게 물들어 있다.
부랴부랴 옷을 주워 입고 죽변항으로 나갔다. 밤에 잡아온 고기를 경매하는 열기를 구경하기 위해서다. 경락을 받으려는 뜨거운 몸짓과 눈 빛과 큰소리로 어우러지는, 그 삶의 역동성은 어느 빅 게임보다도 감동적이다. 나는 그 빅 게임을 관전하는 게 좋다. 내 피도 뜨거워지는 것 같아서다.
그런데 죽변항 어판장에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 경매에 참가하려는 듯이 끼룩거리고 몰려들던 갈매기조차 없다. 어판장이 죽은 듯 고요하다. 어선들이 항구 안에 가득 하게 서로 결박을 한 채 쉬고있다. 그러고 보니 어제 저녁 뉴스 끝에 동해 먼바다에는 물결이 3내지4미터로 비교적 높게 일겠다고 출어에 대한 경고성 일기를 예보하던 생각난다.
그러나 방파제에 밀어닥치는 파도는 그리 높지 않다. ‘철석철석’ 일정한 간격으로 밀려와서 육중한 콘크리트 구조물에 몸을 부딪쳐본다. 꼭 집적거리고 시비를 거는 건달의 수작 같다. 수평선이 어두워서일까. 바다는 더 육중하고 컴컴하다. 음흉한 계략을 숨기고 기다리는 듯 보였다.

여관으로 돌아와서 아내의 중요일과의 하나인 아침 연속극 ‘인생화보’를 시청하고 길을 떠났다. 날은 좋다. 낮에는 덥고 맑은 초여름 날씨가 되리라고 했다.
7번 국도를 따라서 남하하다가 영해에서 축산, 강구로 이어지는 해안 길로 접어들었다. 해는 이미 하늘 높이 솟아올라서 황경15도 의 청명절 찬란한 봄 햇살을 바다에 쏟아 붇는다. 새벽바다처럼 음흉한 기색은 없다. 솔직하고 사실적이다. 사선으로 뿌리는 햇살을 받은 바다는 은빛 편린을 하나 가득 뿌려 놓은 것처럼 찬란하게 빛난다.
축산항 좁은 길 양쪽으로 아낙네들이 늘어앉아서 오징어 배를 따고 있다. 공터란 공터는 온통 오징어 덕장이다. 비린내가 차창으로 파도처럼 밀려들어온다. 심호흡을 하고 그 비리고 짭짤한 냄새를 허기진 듯이 맞아본다. 잘 삭은 젓갈 맛처럼 맛있다. 저 아낙네들의 일상, 봄 햇살아래서 경상도 억양으로 드높이 떠드는 삶의 자잘한 견해들처럼 맛있다. 갈매기들도 맛은 알아서 죽변항 갈매기들까지 다 이곳으로 옮겨왔는지 갈매기 떼가 아낙네들의 머리 위에서 오징어 내장을 물어갈 틈을 엿보며 극성스럽게 저공비행을 한다.

바닷가 산자락마다 진달래가 곱게 피었다. 진달래꽃에 반해서 한눈을 팔다가 해안 길에서 사고를 낼 번했다.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드리우리다’
저리도 애잔한 꽃이기에 할 수 있는 말일까. 진달래의 저 곱고 순하디 순한 꽃 빛 속에도 평양기생 같은 약간의 오기가 깃들어 있는지 모른다. 꽃의 오기, 오기가 없으면 꽃은 꽃이 아닐지 모른다. 해안 갯바위에 하얗게 포말을 일으키며 파도가 돌진해서 자폭하고 있다. 그래, 그게 내가 동해바다를 사랑하는 본래의 네 모습이다. 죽변항 방파제에 ‘철석철석’ 점잖게 몸 부딪치든 새벽의 네 둔중한 모습은 마치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하는 흠흉한 속셈을 감춘 것 같아서 나는 싫었다.
갯바위에 울긋불긋한 낚시꾼들이 줄을 서서 낚시질을 하고있다. 조그만 인간의 무모한 짓을 파도는 귀엽다는 듯 포말을 튀기며 희롱한다. 몇 일전 울릉도 방파제에서 서울서 관광 온 50대의 어리석은 중늙은이 세 사람이 파도에 채어갔다. 가끔 파도는 거대한 전설의 흰 고래처럼 포악하지만 사람들은 파도를 욕하지는 않는다. 파도를 얕보는 인간의 오만한 짓이 얼마나 어리석은가 사후약방문 같은 후회나 할 뿐이다. 저 갯바위에서도 그런 불상사가 일어날 것 같아서 불안한 마음 그지없다.

바다에 작은 고깃배가 한 척 찬란한 은빛 물결 위에 떠있다. 전적으로 파도에 인생을 건 듯 해 보인다. 보기에 딱하다. 차를 멈추고 고깃배를 지켜보았다. 주변에 부표가 떠있는 것으로 보아서 고깃배는 정치망 작업을 하느라고 멎어 있는 것이 분명한데 앞으로 전진을 하려고 필사의 힘을 다하고 있는 것 같아 보인다. 배가 덜렁 드러나 보였다가 뱃전만 보였다가 한다. 파도가 배를 떠들고 지나가는 것일 터인데 내가 보기에는 배가 파도의 고개를 넘어 곤두박질을 치는 것 같아 보인다. 저 배에 타고 있는 어부는 저렇게 파도의 고개를 얼마나 많이 넘었으며 앞으로 얼마나 더 넘어야 할 것인지-? 배를 바라보고 있으니까 멀미가 나려고 했다. 강구항에는 대게를 먹으려고 전국 방방곡곡 넘버를 단 승용차와 관광버스가 몰려들어서 뒤엉켜있다. 지나갈 수가 없다.
시간은 열두시를 넘었다. 포항까지는 아직도 37킬로미터가 넘을 터인데 큰일났다. 나는 지금 1시에 치를 내 이종사촌 동생의 혼사에 가는 길이다. 조바심이 난다. 시간에 대갈 것 같지 않다. 차를 내버리고 뛰어가고 싶을 지경이다. 겨우 강구항을 빠져 나와서 4차선으로 확장된 7번 국도에 접어들 수 있었다. 과속을 해서 시간에 맞춰 식장에 도착했다.
2
예식이 끝나고 외삼춘이 회를 사준다는 것을 사양하고 2시쯤 포항을 출발했다. 사문진을 가보고 싶어서였다.
경주 인터체인지로 해서 경부고속도로를 탔다. 지난밤 한국도로지도책을 보고 대구 근교의 사문진을 미리 숙지 해 두었다. 88고속도로 화원 인터체인지에서 나리면 낙동강이 있고 낙동강을 건너면 ‘사문’이라고 지명이 적혀 있었다. 사문진은 정연씨의 글과 사진의 소재이기도 하지만, 사문진이라는 지명에 대한 호기심과 이미지가 내 머리에 자리잡고 있어서 꼭 한번 보고싶었다.
연휴인데 정연씨가 집에 있을 리도 없고, 있다해도 가족과 단란한 하루를 보내고 있을 터인데 전화를 하면 부담이 될 것 같아서 혼자 보고 가려고 했으나, 남의 빈집에 들어가서 애장품을 훔쳐보고 가는 것처럼 무례한 짓일뿐더러 정연씨와 같이 보고 싶은 마음 또한 간절해서 건천휴게소에 들려 정연씨에게 전화를 했다. 마침 정연씨는 수목원에 사진을 찍으러 가 있었다.

사문진 다리에 정연씨는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정연씨 글에 나오는 상습침수지역에 발 담그고 있는 화원 유원지 어귀의 영세상인들의 삶이 의외로 활기차고 정결해서 보기가 좋았다.

정연씨가 강둑을 드라이브 시켜주었다. 겨울을 넘기고 봄을 맞는 갈대의 의지도 허물어지고 있었다. ‘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이라는 것을 까맣게 몰랐다’ 지난 가을 정연씨의 사진이 시사하는 갈대의 이미지는 신경림의 시 같았었다. 그 갈대가 강변의 혹독한 겨울 바람에 저만큼 허물어지려면 ‘순정’인들 얼마나 아팠을까 하는 유행가 가사 같은 생각이 들었다.
낙동강은 거대도시의 배설물을 받아 안고 해가 넘어가는 쪽을 향해서 유유히 흐른다. 유유히 흐른다기보다 멎어 있는 듯하다. 강안(江岸) 둔치에는 보리밭이 파랗게 펼쳐져 있어서 옛 사문진 나루터의 일면을 연출하고 있다. 천리 장강(長江)의 세월은 거대도시의 발전과 더불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있었다. 보리가 누렇게 읽을 때, 어린 며느리를 안동(眼同)해서 사돈집에 다니러 가든 시아버지는 어디쯤 서서 ‘지지배배’ 우짖는 종달새 소리를 들으며 나룻배를 기다렸을까? 짐작할 길이 없다. 정연씨는 우리 내외를 그 보리밭 머리에 세우 놓고 기념사진을 찍어주었다.

강물이 흘러가는 쪽의 야산과 구릉들은 어느새 저녁 빛에 물드는데 낯익은 산봉우리들이 눈에 들어온다. 정연씨의 사진에서 본 저녁 빛에 잠기는 노년기의 완만한 야산들, 그립던 사람을 만난 것처럼 반갑다. 여북 하면 정연씨의 사진을 보고 제목을 ‘세월’이라고 다는 게 좋겠다고 제언을 했을까. 나는 그 풍경을 바라보면서 大邱라는 지명의 타당성에 설득 당하지 않을 수 없었다.
화원 유원지 어구에 있는 통나무로 지은 운치 있는 카페에서 차를 마셨다. 창문너머로 강물에 막 석양이 드리우는 모습이 보인다. 정연씨에게 집 가까이 장쾌한 일몰을 보면서 삶의 침울을 자정(自淨)할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것은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 장쾌한 일몰 광경까지 보고 저녁밥을 먹고 가라는 정연씨의 만류에 붙들리고 싶은 마음을 겨우 참아내고 사문진을 떠났다. 내일 여정도 여정이지만, 연휴의 저녁 정연씨에게도 어떤 계획이 있을 터인데 내 욕심만 채운다는 것은 도리가 아니다. 정연씨가 88고속도로 진입로까지 바래주어서 후시경으로 정연씨를 보면서 고속도에 진입했다.
지리산 인터체인지에서 내려 깜깜한 소읍의 담배 냄새에 절은 여관방에 피곤한 몸을 뉘고 금방 잠들었다.
3
아침에 일찍 잠이 깼다. 서둘러 여관을 떠났다. 여관 밖으로 나오니까 지리산의 신선한 냉기가 코를 ‘펑크린’처럼 뻥 뚫어놓는다.
정령치에 올랐을 때, 이미 지리산 위로 해가 한발이나 떠올라 있었다. 높이 1172미터의 정령치는 한겨울이었다. 산에 얼어붙은 눈이 희끗희끗하다. 때가 봄이라고 봄옷 차림으로 지리산에 오른 것이 산을 모르는 무뢰한 같아서 부끄러운 마음이 든다. 그러나 등산은 아니니까 산도 양해하리라.
차안에 앉아 있으면 앞 유리창을 투과한 햇살에 이마가 따뜻했는데 차 밖으로 나와서 지리산을 향해 서니까 냉풍에 몸이 오그라든다.

내가 서있는 발 아래서부터 두 줄기의 산등성이가 평행하게 곤두박질하며 저 아래 뱀사골 골짜기에 처박히고, 거기서부터 하늘까지 치솟은 산줄기가 동서로 뻗어 있다. 앞에 산줄기는 날나리봉과 토끼봉으로 웅장한 산세를 자고 일어난 장수처럼 불끈 들어내 보이지만, 그 너머 아득한 지리산의 제일봉인 천왕봉은 아직 곤한 새벽잠을 자는 지존같이 하늘에 두둥실 떠서 아득하다. 모든 지리산의 산봉우리들은 주무시는 그 휘하에서 옹립하듯 솟아있다.

나는 이른바 백두대간이 뻗어 나려와서 치솟은 봉우리들의 일사불란한 높이와 골짜기의 깊이를 보면 경외감을 느낀다. 내가 봄가을로 정령치에 올라서 겨울에 드는 지리산과 겨울에서 깨어나는 지리산을 건너다보는 것은 그 감정을 즐기기 위해서다. 나는 동면(冬眠)하는 지리산의 모습이 보고싶어서 지난 초겨울 새벽 4시에 차로 정령치에 오르다가 빙판 길에 막혀 좌절하고 말았다. 겨울 영산을 감히 밤에 차로 올라 보겠다는 수작이 산에 대한 도리가 아님은 물론이거니와 인간의 교만이라는 깨달음에 못 오른 것을 조금도 섭섭히 여기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 꿈을 버릴 수는 없다. 언젠가는 실현하려는 마음은 변함 없다. 겨울 정령치에 올라서 깊이 잠든 지리산과 그 지리산을 덮은 보석이불 같이 별이 박힌 밤하늘의 명징함을 보지 않고서 어찌 인간의 본능과 이념의 경직 사이에서 갈등하던 아프고 추운 빨치산의 밤을 진정 이해할 수 있을 것인가.

이 시간쯤 빨치산은 잠에서 깨어나 양지쪽에 앉아서 찬피동물처럼 해바라기를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럴 사이가 있었을까. 토벌대가 공격해왔을 것이다. 빨치산은 눈 덮인 응달로 달아나야 한다. 필사의 운동으로 몸을 자연히 데워졌을 터이지만 운동에 필요한 열량을 위해서 자신의 살을 태워야 했으리라.
나는 서서히 죽어 가는 메뚜기를 본적이 있다. 늦가을 양지바른 논둑아래서 아침이면 죽은 듯 꼼짝하지 않던 메뚜기가 한나절 햇살에 몸이 녹으면 꼼지락거리고 움직였다. 메뚜기는 그렇게 가으내 서서히 죽어갔다. 메뚜기는 그렇다 치고, 왜 인간도 그렇게 죽어가야 하느냐가 나의 의문이었다. 조물주는 인간의 생명을 어찌 그리 질기게 만들었을까. 빨치산용으로 쓰라고 그리 만들어 놓으신 것인가. 쇠로 만들어도 사람이 만든 첨단 기계는 혹한 속에서 그리 내구성을 발휘하지 못한다.
저 까마득한 높이와 깊이를 산짐승처럼 넘나들다가 죽은 당신들이 국민에게 남겨준 것인 무엇인지 나는 그걸 몰라서 답답하다. 150마일 휴전선이 현재까지 확고하게 보전되고 있는 것이 당신들이 남긴 업적인가.

4
어는 여류 수필가가 ‘섬진강을 따라가며 울다’ 라고 썼듯이 섬진강의 유장한 흐름을 따라가는 강변 길은 내가 좋아하는 여행 코스다. 가을 물빛과 흐름도 좋지만, 봄 물빛과 흐름은 환한 꽃 빛에 물들어서 더욱 좋다. 강 건너 전라도 쪽 매화마을에는 매실 꽃이 곱고 경상도 쪽 쌍계사 길에는 벚꽃이 구름처럼 피어오른다.
그 구경을 하면서 남해대교를 건너서 창선나루를 건너 삼천포에서 회를 먹고 대진고속도로를 타고 귀가하려는 것이 아침에 시동을 걸면서 생각한 오늘의 여정이었다. 그러나 정령치를 넘어서 구례외각에 이르러 내 여정은 착오였음이 즉시 들어 났다.
화엄사 입구 4거리에는 신호등도 끄고 구례경찰서 직원이 총동원 한 듯이 몰려나와서 수신호로 길을 틔워 주고 있었으나 속수무책이었다. 자동차가 홍수를 이루고 있었다. 세상의 모든 자동차는 다 여기 몰린 듯해 보였다. 서다가다 하면서 어디쯤 가니까 섬진강 건너 전라도로 가는 다리가 놓여 있었다. 나는 그 길로 접어들어서 섬진강 서편 강변 길을 따라서 남하했다. 그 쪽 길은 비교적 한가했다.

라디오에서 교통상황을 보도하는데 오후에는 연휴나들이 나간 차들이 돌아가느라고 고속도로 상행선은 주차장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겁을 준다. 납득이 가는 소리다. 빨리 집에 가서 ‘’하부지-“ 하고 반겨줄 주영이 안을 생각 밖에 나지 않는다.
하동 인터체인지에서 남해고속도로를 타고, 진주 분기점에서 대진고속도로를 타고 거침없이 달려서 5시경 집에 도착했다.
주영이가 “하부지-” 하고 반색을 한다. 덥석 품에 안고 볼에 뽀뽀를 받는다. 항상 행복은 가까이 있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