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성균 수필 연재 - 현암리에서
아침에 진왕씨 댁에 전화를 했더니 형수님이 전화를 받으셨다. 올해 아흔 셋인지 넷인지 그러시다. 그래도 사리가 분명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으셨다.
“진왕이, 산성 넴에 고추에 병났다고 약 치러 갔시유”
진왕씨는 촌수가 못치는 먼 일가 조카 항렬이지만 나이는 나보다 두 살 위고, 청주상고 2년 선배 된다. 그러나 그는 나를 일가 아저씨로 깍듯하게 예우를 해준다. 학교 다닐 때부터 그랬다. 그가 3학년 때 나는 1학년이었는데 그는 문예부장이었고, 나는 문예부원이었다. 학생시절 진왕씨는 ‘문학의 밤’ 같은 학생 문학서클 모임에 나를 데리고 갔다. 여학생들이 득세를 하는 모임에 촌놈인 나는 주눅이 들어서 가기 싫었으나 진왕씨는,
“아저씨 가셔야 해요. 좋은 시 낭송도 듣고, 또 자작시를 낭송도 해보고 그래야 시인이 되지요.”
그러면서 아저씨를 동생처럼 억지로 끌고 갔다. 물론 깍듯이 아저씨 예우는 했다.
나는 지금도 진왕씨를 선망한다. 당시 청주의 멋쟁이 문학소녀들의 우상이던 그였다. 시를 잘 지어서보다 여학생들에게 깍듯한 신사도를 다하는 태도와 귀공자 같이 투명하고 잘생긴 얼굴 때문이었다. 그런 그가 나는 자랑스러웠다.
그의 하숙집에 가면 항상 그의 아내처럼 방을 지키던 달덩이 같이 복스러운 淸女高 學生이 있었다. 나는 그녀가 싫었었다. 진왕씨의 하숙집에 자주 들리는 내게 눈총을 주는 것 같아서였다. 그분이 지금의 姪婦다.
현암리는 상당산성 아래 있는 산골 동네다. 이 동네는 한 50여 호가 사는데 泗川 睦氏 집성촌이다. 진왕씨 고향 동네다. 학생 때 나는 토요일이면 진왕씨를 따라서 몇 번 가보았다. 어느 가을날 나는 진왕씨 할머니 환갑잔치에 간 적 있었다. 그 날 수업을 마치고 하숙집에 오니까 진왕씨 하숙방을 지키던 그 여학생이 내 하숙집 마루에 앉아 있다가 반색을 하는 것이었다.
“진왕씨가 아저씨하고 같이 오라고 했어요.”
내가 자기 아저씨인 것처럼 그러는 것이었다. 종단에는 아저씨가 되기는 했지만-.
지금은 차로 20여분이면 가는 곳이지만 그 당시에는 상당산성 고개에 올라서 산등성이를 타고 걸어 가야하는데 두시간은 실이 걸렸다. 산성에 올라섰을 때 해가 지고 있었다. 우리는 산등성이를 오누이처럼 걸어갔다. 말은 별로 하지 않았다. 산등성이에서는 청주 서북쪽 미호평야 일각이 한눈에 나려다 보이는데 막 해가 지면서 노을이 벌겋게 물들고 있었다. 그녀가 쉬어가자면서 산등성이에 주저앉았다. 할 수 없이 나도 그녀에게서 좀 떨어져 앉았다.
그런데 그녀가 훌쩍거리고 우는 것이었다.
“실은 진왕씨가 나를 오라고 하지 않았어요. 나 어떡해요. 나 진왕씨 사랑해요.”
왜 그렇게 그녀가 가엽던지-. 맘속으로 ‘걱정 말아요’ 그랬던 것 같다. 진왕씨 하숙방에 앉아 있던 그녀는 늘 암소같이 커 보였는데 그 날 놀빛 속에 앉아서 훌쩍거리는 그녀는 퍽 작아 보였다.
내가 ‘명태에 관한 추억’을 출간했을 때 그 姪婦께서 애들처럼 기뻐하며 조카님과 같이 우리 집으로 와서 우리 내외를 끌고 나가서 저녁밥을 사주었다. 그 답례를 못해서 가끔 전화를 하면 산성너머에 가고 없었다.
“산성너머 가고 없다는데---”
“어이그 답답하긴 산성너머 음식점이 천진데 뭔 걱정이어요.”
“참 그렇지-.”
그래서 현암리를 갔다. 동네 들어가서 둥구나무 아래 앉아있는 노인들에게 진왕씨가 어디서 일을 하는지 물으니까 산밑에 있는 밭을 가르쳐 준다. 밭으로 갔다. 진왕씨와 그 분의 아내가 밭가 나무 그늘에 앉아서 휴대용 가스레인지에 냄비를 올려 놓고 물을 끓이고 있었다.
봉두난발을 한 두 분이 하숙방에서 함께 있다가 내게 들켰을 때처럼 당황해한다.
“아니 아저씨 내외분이 웬일이세요.”
“위문 차 들렸어요.”
“잘 오셨어요. 우리 별식 좀 해 먹으려고요.”
보니까, 패트 병 하나에는 얼음을, 하나에는 콩국을 담아왔다. 반찬은 열무 겉절이-. 냉 콩국수를 만들어 먹을 준비를 해 가지고 온 것이다. 아무리 점심을 먹으러 가자고 간청을 해도 막무가내다. 콩국이 변하면 버려야하기 때문에 안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매미소리를 들으면서 냉 콩국수를 먹었다.
풀밭에 털썩 주저 앉아있는 안 노인네한테서 노을 빛 속에 앉아서 울던 여학생 모습을 찾아보려고 애를 썼으나 찾을 길이 없었다. 나는 공연히 우스웠다.
姪婦가 웃는 나를 보고 옛날 생각이 나는지 소녀처럼 부끄러워한다.
“아저씨는 뭐가 그리 우스우세요?”
“조카님 내외분 행복한 노년을 보니까 행복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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