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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성균 수필 연재 - 새벽 등산

Joyfule 2011. 12. 29. 02:27

 

 

 

   

 

 

목성균 수필 연재 - 새벽 등산


새벽 산을 올라가서 자고 난 맑은 눈으로 날 새는 건너 산을 보면 먼 길 떠나는 나무들의 행렬이 보인다. 나무들은 곁에서 보면 항상 그 자리에 서 있지만 멀리 떨어져서 보면 먼 길을 와서 먼 길을 빙하처럼 아주 천천히 산을 통째로 밀고 간다. 그건 욕계(欲界)가 깨어나기 전, 신새벽에나 볼 수 있다. 밝아 오는 산등성이의 나무를 보면 비로소 그것을 확실히 알 수 있다. 그 길은 단숨에 달려가려는 자발적인 출발의 가까운 길이 아니다. 묵묵히 댓돌에 앉아서 한참동안 마음을 모아 신들메를 매고 비로소 천천히 무겁게 일어나서 사립을 나서는 남자의 굽힘 없는 의지 같은 아주 먼 길이다. 서두르지도 않고 망설이지도 않고 평생 동안 가야 할 먼 길. 날 새는 건너편 산등성일 건너다보면 나무의 가는 길이 보인다.

 

미명에 명암을 드러낸 산줄기에 늘어선 나무들이 행렬, 멀어서 나무의 행동거지와 모습이 작긴 하지만 그래도 나무의 의중은 분명하고 크게 보인다. 앞선 나무와 뒤따르는 나무와의 똑같은 간격. 그것은 이미 오랜 날을 함께 걸어왔고 앞으로도 함께 걸어갈 일행의 일관된 제자리의 지킴이다. 그 엄정한 질서가 움직여 가는 산등성이의 새벽을 더욱 뚜렷하게 부각시킨다.

그 나무들은 건너다보고 있으면 아득히 목어(木魚) 소리가 들려온다. 아주 멀리서 아득히 살아오는 소리. 맑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둔탁하지도 않은 잘 마른 목질부의 울림을 들을 수 있다. 용화사 아침 예불을 알리는 소리인지 아니면 환청인지 모르지만 꼭 먼 길 떠나는 나무들의 행렬 맨 앞에서 울리는 나무북 소리 같다.

 

그 시간에 먼 길을 떠나는 게 어디 나무뿐이랴. 신발끈을 졸라매고 일터로 나가는 남자들도 나무만치나 많다. 아직 곤하게 잠든 자식들이 어여쁜 가능성을 위해서 저 산등성이의 묵묵한 나무들처럼 무모하게 사립을 나서서 어둠을 밀어내며 걸어가는 남자들이 길은 흡사 나무의 길과 같다.


새벽에 산에 오르는 사람도 많다. 산에 오른 사람들은 두 가지 부류다. 전생의 인과응보인 나무를 등에 진 물고기처럼, 수륙재를 지내서 제 과보를 풀어 줄 전생의 스승을 찾아 나선 중생들처럼 참을성 없이 발작을 하는 부류, 소릴 지르면서 나무를 등허리로 퉁퉁 치기도 하고, 숨가쁘게 서지를 휘두르기도 한다.

다른 한 부류는 나무를 등에 지고 조용히 서서 동트는 건너편 산을 바라보는 참을 수 있는 한 참아보자는 중생들이다. 나는 거기 속하는 중생이다. 새벽 산에 올라 건너편 산등성이의 먼 길 떠나는 나무들의 행렬을 잘 보면 나무들은 모두 사람이다. 사람들이 등허리에 나무를 지고 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