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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성균 수필 연재 - 쉴동말동 하여라

Joyfule 2012. 4. 9. 08:44

 

    

  

목성균 수필 연재 - 쉴동말동 하여라


아침에 앞산에 올라가서 등산친구 오과장을 만났다.
퍽 후덕하게 생긴 사람이지만 생김과 다르게 논지 정연하게 불끈하는 성미의 사람이다. 젊은 날 도청서문에서 예비군 보초를 같이 설 때 말단 서기로서 도지사의 방침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어서 안다. 이 사람이 나를 보더니 대뜸 한다는 소리가
“아 집에서 쉬라는데 산에는 뭐하러 와-.”
“당신은-?”
“나는 오래 살아서 정동영이 60대되면 쉬는지 안 쉬는지 볼려구 그래-.”
“나두 그래-”
정동영이란 사람이 기자출신이라고 하는 게 그에 대한 나의 지식 전부다. 그렇다면 그가 大記者를 접고 정치인으로 들어선 것은 국가를 생각할 때 오히려 다행한 일인지 모른다. 왜냐하면 정치 판은 어차피 개판이니까. 사이비기자든 전과자든 사기꾼이든 능수능란한 정치술수를 발휘해 볼 자질을 타고난 사람이면 다 모이는 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언론은 국론을 선도하는 애국적 社施 하에 윤전기가 돌아가야 한다. 신문사에 正道를 망각한 오류와 편견의 기사를 쓰는 교만하고 방자한 기자가 있다면 국민의 사회적 가치관과 윤리관에 혼돈을 가져오고 따라서 국론은 흔들리는 물결 위의 가랑잎같이 표류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이 글은 내 졸작 수필 ‘살포’의 일부다.
<살포 들고 들머리에 서 있는 老農(60~70대의 農夫)의 원로적 후광 역시 어느 분야에서 출세한 사람의 후광 못지 않게 빛난다. 인생의 후광은 ‘내실(內實)을 기한 그 사람의 각고(刻苦)의 생애다’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살포를 허리에 가로지르고 허리를 쭉 펴고 들머리에 서 있는 함창양반의 늙은 체신이 어찌 그리 커 보였을까. 백로(白露) 무렵 노란 벼이삭들이 논물 뗀 논둑을 베고 누운 논머리에 꼴막(고의춤)을 훌러덩 까 가지고 둥싯 한 갈색 뱃구레를 드러낸 채 서 있는 그 양반의 모습은 꼭 논산들에 서 있는 은진미륵처럼 들판을 가득 채웠다. 그 크기는 육신의 크기가 아니라 생애의 크기였으리라.
말복 무렵, 말매미 소리가 폭포같이 쏟아지는 둥구나무 아래 농막 앞을 지나가려면 난간에 기치 창검처럼 죽 늘어 세워져 있는 살포 때문에 막부(幕府)의 본영(本營)처럼 지나가기가 어려웠다. 취한 노농들의 기탄 없는 웃음소리가 열국을 평정한 장수들의 기개만큼이나 높게 높게 한 시름을 넘긴 들판으로 퍼져 갔다.
그 시절 농경사회의 질서를 지켜주던 살포, 그 삶의 가치가, 사회적 권위가 어디로 갔을까 되찾아다 바깥사랑 시렁 위에 얹어 놓고 싶다.>

나는 원로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 선다고 생각한다. 원로가 바로 서지 못해서 젊은 당의 당수가 저리 가서 쉬라고 60~70대를 貶毁 하는 소리를 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문명은 長江처럼 흘러서 여기에 이른 것이다. 인간은 강보에 싸여서 고고의 소리를 지르고 태어나서 추풍낙옆처럼 어느 때가 되면 생애를 마감하는 것이고 문명은 老巨樹처럼 우뚝하게 자라는 것 아닌가. 해마다 이파리는 돋고 낙엽은 진다. 노거수의 입장에서 보면 어느 것이 새잎이고 어느 것이 늙은 잎인지 구별할 수 없다. 한낱 바람 같은 것-.

물론 60~70대가 조만간 사라질 사람들임에는 분명하지만 오늘의 이 나라를 만들어 온 세대라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열사의 사막에서 오일달러를 벌어 송금하고, 서독 간호원이 병원에서 염습사와 같은 궂은 일을 해서 마르크를 벌어 송금하고, 남양과 북양의 창파노도에서 고기를 잡아 송금하고, 갑돌이가 국내건설현장에서, 갑순이가 도시공단에서, 고향에서 갑돌이와 갑순이를 도시로 보내고 남은 젊은이들이 새마을 사업으로 고향을 지켜서 오늘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배는 곯지 않을 즈음 다음 세대들은 민주화투쟁에 목숨을 걸고 오늘에 정치가로 변신했다. 그리고 60~70대는 쉬라고 고려장을 한다. 60~70대 배신감 안 느낄 수 없는 정치적 발상이다. ‘화무는 십일 홍이오’ 가요도 못들어보았는가.

과연 늙은이는 쓸모가 없을까.
늙는 것은 풀한 포기도 그냥 늙는 것은 없다. 최소의 인생에 대한 목표를 향해서 칠전팔기해 온 과정의 결과다. 거기에는 과오와 성공과 그를 위해 최선을 다한 노력과 술수와 분발과 후회와 반성들로 점철된 나머지다.
자문을 구하면 성의껏 답해 줄 자료들을 충분히 간직한 늙음이다. 쉬게 할게 아니라 잘 활용하는 편이 노령화사회를 오히려 풍요롭게 하는 시책이다.
축구팀의 사령탑은 사실은 늙은 축구선수 출신이다. 그가 론그라운드에서 후회와 기쁨을 맛본 경위를 현역선수들에게 알려주는 것이고 그 경험으로 이끌어 나가는 것이다. 차두리가 골잡이라고 차범근을 쉬게 하고 차두리를 팀의 지도자를 시킬 수는 없다. 그는 아직 논그라운드의 기쁨과 눈물의 경위가 나변에 있는지 차범근 만치 모르기 때문이다. 그 것이 선배고 원로다. 당연히 존중되어야 그 팀이 강팀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론조사에서 혁신세대의 정치 지지도가 높다고 보수세대를 헌짚신 버리듯 하는 발언을 한 대서야. 그 사람이 이끄는 당의 傲慢放恣가 차후 국정을 잡았을 때 어떠할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 것이다. 볼을 잡으면 모두가 센터포드로 돌진할 것은 자명한 일이다. 가관일 것이다.

차제에 60~70대에게 충고하지만 우리의 다음 세대에게 좀더 분명하게 우리세대의 잘못이 무엇인지 반성해야 하고 잘한 점은 당당하고 떳떳하게 주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농막에 살포를 세워 놓고 긴 여름날을 울리던 호쾌한 웃음소리 그 권위는 받들어 줄 때 존재할 수 있는 것이지 오만방자하게 농막 위로 밀고 올라와서 저리 가서 쉬라고 젊은 힘으로 밀어내면 지켜질 수 없는 것으로 일종의 전통사회의 혁명에 다름없는 짓이다.
정동영당수의 발언은 전통사회의 마지막 남은 덕목조차 배척하는 혁명적 언행이다.

물론 정동영 당수가 지적한 것은 한나라당의 수구세력을 지칭해서 한 말일 것이다. 한나라당의 수구세력이 상상외로 많이 걷히는 정치자금에 鼓舞되어 정치자금 삥땅치는 재미에 이회창 후보가 낙동강 오리알이 되는 것도 미처 몰랐든지 알고도 모르는 척 했는지 모를 일이다. 그리고 그 대목장을 또 노리고 치사스러운 속내를 드러낸 것이 탄핵인지 모른다. 그렇다면 당연히 고려장 감이다. 그러나 정동영당수의 발언은 그들의 그 행태를 지적해서 말한 것이 아니고 60~70대 일반에 대한 지적이다.
그래서 탄핵 사태가 오고 정치가 혼란하고 시국은 혼돈한 것 아니겠는가. 여소야대의 폐해 이회창 후보가 당선되었으면 그런 일은 없었을걸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내가 그의 아드님이 군대를 안 다녀온 데 불만을 품고 안 찍었더니 이런 폐단이 발생한 것 같아 국민적 탄식이 나온다. 잘살고 권력이 충천하는 우리나라 사류사회 집안에서 아드님 섭생을 잘해서 군입대에 불합격 안 되게 하는 것이 대통령 되실 분의 의무였다는 내 생각이 오류였을까!

“그런데 문제란 말이야-.”
산을 내려오며 오 과장이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뭐가?”
“우리 지역구에서 집안 조카뻘 되는 오씨가 국회의원에 입후보했단 말이야-!”
“잘 됐네 마침 나도 한 표를 버리나 했더니, 오 과장 집안 조카 줘야겠네”
“문제는 그 놈이 60~70대는 쉬라는 당이란 말야”
“그럼 어떡하지?”
“내가 ‘자네도 자네 당수하고 생각이 같으냐’고 물어 보고 알려 줄게”
그러면서 산을 내려와서 헤어졌다.
오과장의 뒷모습이 흡사 저리 가서 쉴 사람은 저렇지 싶은 측은한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내 뒷모습도 그러리라.

내일 사초에 쓸 물건을 사러 E마트에 갔다.
물건을 사가지고 1층 자동계단 앞에 다가섰더니 줄무늬 와이셔츠차림의 젊은이가 스티커를 한 장 내민다.
“어르신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공손히 내 손을 잡는다. 나는 자장면집 사장님이 자장면 선전하는 줄 알고 쳐다보니까 우리지역구 국회의원 윤경식이다. 혼자 그러고 서 있다.
그의 소탈한 모습에 농담이 하고 싶어졌다.
“누가 쉬라고 해서 이번에는 쉴까 생각중입니다.”
“원 어르신네도, 그쪽 사람 찍을 때는 쉬어도 좋다는 말이지요. 저를 찍을 때는 쉬지 마십시오.”
말만 들어도 고마워서 그 사람 찍을까 생각중이다.
하긴 쉬는 게 더 좋은데---.
정동영씨 집권당당수 되면 쉬는 수당도 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