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성균 수필 연재 - 한들 산모퉁이 길
산읍 연풍에서 바깥세상으로 나가려면 이화령(梨花領)을 넘어 가든지, 작은새재(小鳥嶺) 를 넘어가든지, 한들 산모퉁이를 돌아가야 한다. 이 세 길의 저 쪽은 각기 다른 세상이고, 그쪽 길로 가야하는 경위 또한 각기 다를 수밖에 없다.
대개 연풍 사람들이 한들 산모퉁이 길 저쪽에 볼일이 있어서 간다면 십중팔구는 도벌이나 밀주하다 적발 당하고 송아지 팔아서 벌금 내러 간다거나, 이웃 간에 쌈질하고 송사(訟事)가 벌어져서 경찰서에 불려 가는 따위, 또는 땅을 팔고 사고 등기이전 하러 가는 따위의 관청볼일 보러 가는 것이다. 그 쪽 길로 오 십리쯤 가면 군청소재지 괴산(槐山)이고, 거기서 백 리쯤 더 가면 도청소재지 청주(淸州)다.
연풍 사람들은 가급적 그 쪽에는 별 볼일 없이 살려고 애를 썼다. 그러기 위해서는 착하고 정직하게 사는 수밖에는 달리 방법이 없다. 소위 말하는 법 없이 살 사람으로 살아야 한다. 천성이 순박한 산골 사람들은 대개 다들 그렇게 살았지만, 그래도 삶의 불가피한 경우가 사람들로 하여금 간간이 한들 산모퉁이를 돌아가게 했다.
그 쪽에 가서 볼일을 보고 온 사람들은 어찌 된 일인지 기고만장했다. 관청사람들의 권위적인 태도에 조금도 굴하지 않은 기개를 은연중 엿보였다. 아침에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죽상으로 그 쪽 행(行) 버스를 타고 갔던 사람이 저녁 버스로 돌아 왔을 때는 백중 판에서 소를 몰아오는 씨름꾼처럼 씩씩했다.
“산림주사가 조서를 꾸미고 나서 내게 또 산에 가서 함부로 나무를 베어올 거냐고 호통을 치는 거야, 글쎄-.. 내가 뭐라고 했겠어?”
“다시는 안 그럴 터이니 한 번만 용서 해달라고 손바닥에 불이 나도록 빌었을 테지-.”
“천만에-. 당신 같으면 엄동설한에 어린 새끼를 얼음장 같은 냉골에 눕히겠소? 입장 바꿔 생각해 보슈. 나무 한 그루 베어다 새끼 등 따시게 한 게 벌 받을 짓이오.”
“그러니까 뭐래?”
“대꾸 못하지-.”
이런 식이다. 사실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행정법 위반은 파렴치한 범죄는 아니다. 관리들도 그 점은 인정하는 터라 굳이 고압적인 관리 티를 낼 필요는 없다. 순박한 사람과 혐의 져봐야 내세(來世)에 이로울 것도 없다
관청에 벌 받고 온 사람이 기고만장한 것은 받을 벌을 받고 난 홀가분한 마음 때문일 것이다. ‘매도 먼저 맞는 놈이 낫다’는 이치다. 행정 벌은 대개 벌금형이다. 벌 받았다는 마음보다는 손재수를 당했다는 마음이다. 그러니 울화 터지는 마음에 객기라도 부려야 스트레스가 해소되기 때문이다. 취중 호기가 사람들을 어리둥절케 했는데 그게 법 없이 살 사람이 벌 받고 화를 푸는 방법이었다.
그런데 희한(稀罕)한 일은 그쪽 길 출입 꽤나 하는 사람이라야 행세하며 잘살았다는 사실이다. 면장, 지서장, 교장, 조합장 등 기관장은 직업상 그 쪽 출입이 잦을 수밖에 없다 치더라도, 양조장 사장, 영단방아간 주인, 제재소 사장, 버스정류소 소장, 건영화물 영업소장, 주유소 소장, 대서방 안 주사 같은 분들이 잘사는 까닭은 사람들의 우주왈 공론에 의하면 다 그 쪽 길 출입 잘한 때문이라고 했다.
그 쪽 길은 처세술과 통하는 길이다. 즉 법대로 산다고 잘사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적당히 비리와 부정에 타협을 할 줄 알아야 한다. 그게 처세술인데 처세술에 능한 사람들을 행세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순박한 사람들의 질시 대상이지만, 감히 누가 그 앞에 대놓고 불온한 언동을 하지는 못했다. 행세하는 사람 앞에서는 조용한 처신이 이롭다는 것이 옛날부터 몸에 밴 순박한 산골 사람들이다. 그게 천성일 뿐, 비굴은 아니다. 그런데 가끔 의협심을 못 참고 객기를 부리는 사람이 있긴 하다.
예를 들어서 해병대 출신인 수렵씨는 술만 취하면 양조장에 가서 제발 빌거니와 싱거워 못 먹겠으니 막걸리에 물 좀 타지 말라고 양조장 주인 턱밑에다 삿대질을 했다. 그래서 인지는 모르지만 연풍 사람들은 그가 삼청교육대에 갔다 온 이유로 그걸 꼽았다. 한들 산모퉁이 길에 대한 보편적인 인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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