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성균 수필 연재 - 어떤 職務遺棄
윗'강릉 영림서 진부 관리소'에 근무할 때, 조건부 서기보 시절 이야기다.
섣달 그믐날이었다. 하루종일 눈이 내렸다. 저녁때가 되자 서울서 내려온 강릉행 귀성버스들이 모두 진부 차부 앞 대로변에 꼬리를 물고 멈춰 서서 불야성을 이루었다. 언제 대관령 눈길이 열릴지 모르는 마당에 승객들은 설국(雪國)의 낭만에 신명이 나서 진부 장터를 들개처럼 쏘다녔다.
처음으로 객지에서 맞이하는 섣달 그믐인데다 눈까지 하염없이 내려서, 나는 온종일 일이 손에 잡히지 않고 고향 생각만 났다. 고향에 아내와 세 살짜리 딸이 있다. 고향으로 머리 둔 짐승은 모두 귀성(歸省)을 하는 세밑이다. 객지에 나간 남편이 오나 싶어서 수시로 토담을 넘겨다볼 아내의 얼굴과 방싯방싯 웃는 세 살백이의 얼굴이 눈에 밟혀서 온종일 안절부절 못 했다.
퇴근 무렵 소장님이 나와 선배 직원 권주사를 소장실로 불러 들였다.
"밤이 깊거든 둘이 노동리에 가서 기소중지 중인 도벌꾼을 잡아오시오."
소장님 말씀인즉슨 섣달 그믐에다 눈까지 이렇게 쌓이는데, 제 놈이 계집 새끼 생각나서 삼수갑산을 가는 한이 있어도 집에 안 돌아고는 못 배길 거라고 했다. 나는 섣달 그믐날 밤, 눈에 묻히는 산골 동네에 가서 기소중지자를 잡아오라고 시키는 소장님의 명령이 아무리 직무지만 비정한 짓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장님-. 눈을 피해서 동네로 내려온 산짐승은 안 잡는 법인데요."
권주사도 나와 동감이었던지 소장님 명령에 이의를 제기 했다.
"그는 산짐승이 아니고 범법자야, 당신은 범법자를 잡을 의무가 있는 사법경찰관이고-. 그 점을 명심하란 말이야. 눈을 피해 들어왔던, 눈에 숨어들어 왔던, 놓치지 말고 반드시 잡아와요."
소장님의 얼굴에 한 길에서 늙은 직업인의 단호함이 깃들어 있었다. 생각하면 당연히 존경해야할 태도였다.
자정이 넘어도 눈은 하염없이 내렸다. 우리는 소장님이 수배해 주는 제재소의 산판차(G.M.C)를 타고 노동리에 갔다. 라이트도 켜지 않고 눈빛(雪光)에 길을 더듬어 설백(雪白)의 골짜기로 깊이 빠져들어 갔다. 산골 마을은 눈에 묻혀 사라져 가고 있었다. 도벌꾼의 오두막집도 방심한 채 눈 속에 깊이 파묻혀 있었다.
고향 건너방 방문에 밝혀진 발간 불빛이 눈에 선했다. 어린것은 눈처럼 소록소록 깊이 잠들고 아내는 혹시나 하고 밤을 지새우며 나를 기다릴 것이다. 눈은 소복소복 댓돌아래 까지 쌓이는데 책을 들고 깜박깜박 조는 아내의 모습이 보이는 듯했다.
우리는 먹이 감을 덮치려는 포식동물처럼 웅크리고 오두막집으로 숨어들었다. 댓돌 위에 하얀 여자고무신 한 켤레와 남자 농구화 한 켤레, 그리고 조약돌 같이 작은 까막고무신 한 켤레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분수 적게 큰 남자 농구화는 다 헐고 흠뻑 젖어 있었다. 신발의 모습에서 방안에 잠들어 있는 도망자의 핍박(逼迫)한 날들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지금도 가끔 박목월님의 시집에서 '가정'을 읽게 되면 그 때 그 도망자의 신발이 선연하게 눈에 떠오른다.
내 신발은
十九文半.
눈과 얼음의 길을 걸어,
그들 옆에 벗으면
六文三의 코가 납작한
귀염둥아 귀염둥아
우리 막내둥아
권주사는 뒷문을 지키려고 뒤꼍으로 돌아가고, 나는 봉당에 올라가서 방에다 대고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는 소릴 낮고 무겁게 던졌다.
"계십니까? 영림서에서 왔습니다."
방안에서 당황한 인기척이 났다. 불이 켜지고 어린애가 깨서 울었다. 잠시 후 도벌꾼이 방문을 열고 나왔다. 뒷문으로 달아나지 않고 앞문으로 당당히 나왔다. 거기까지는 참 잘한 짓이었다. 그가 만약 뒷문으로 달아나려고 했다면 우린 그의 비열성(卑劣性)에 동정의 여지도 없이 수갑을 채웠을 것이다.
도벌꾼이 댓돌에 걸터앉아서 묵묵히 농구화를 신고 신발 끈을 졸라맬 때, 우리는 말없이 지켜보고만 있었다. 그게 문제였다. 농구화 끈을 졸라매는 도벌꾼의 의지를 몰랐다면 사법경찰관의 직무능력이 모자라는 것이고, 알고도 모르는 체했으면 직무유기가 되는 것인데 우리는 감상에 잠겨 도망자를 앞에 놓고 방심하고 있었다. 방심이라면 직무의 미숙을 말하는 것이다. 사실은 농구화 끈을 졸라매는 도벌꾼의 의중을 짐작하면서도 소리내서 우는 어린것을 안고 소리 없이 우는 젊은 산골 아낙의 애련한 모습에 연민을 느낀 나머지 의당 취할 필요한 조치를 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니 변명의 여지가 없는 직무유기랄 수 있다.
도벌꾼이 앞장을 서서 사립을 나서고 우린 그의 뒤를 따랐다. 그런데 사립을 나선 도벌꾼이 'G.M.C'가 대기하고 있는 동구 쪽으로 가지 않고 반대편 방향인 운두령 쪽으로 적설을 온몸으로 헤치며 노루 모둠발 질 하듯이 껑충 껑충 뛰어갔다. 생각지 않은 돌발 사태에 우린 망연했다. 설원에 필사적인 흔적을 남기며 도벌꾼은 도망을 치고 있었다. 우리는 어처구니가 없어서 서로 얼굴만 쳐다보았다. 나는 도벌꾼의 도주에 인간적 배신을 느끼고 빨끈해서 그의 뒤를 쫓아가려고 했다. 권주사가 내 소매를 잡으며 어리석은 짓이라는 눈짓을 했다. 죽기로 작정하고 눈밭으로 도망치는 자를 따라잡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절박한 마음을 절박하지 못한 마음이 따라갈 수는 없다.
아내와 아기가 눈발 속으로 사라지는 가장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나는 대여섯 살쯤 된 어린것에게 비열을 기억시켜 주는 아비답지 못한 도벌꾼의 처신에 비애를 느꼈다. 이 눈 속에 어디로 갈 것인가. '아빠 까까 사 가지고 올께-.' 아기에게 그렇게 말하고 의연하게 연행되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그 때 권주사가 울고 있는 도벌꾼 아내와 어린것에게 다가가서 말했다.
"아가야, 아빠 까까 사러 갔다."
나는 지금도 가끔, 문득 그 말이 생각나서 목젖이 뜨끔하다. 그 때 그 말 한 마디, 인간의 가혹한 비애를 녹여주는 최선의 한 마디였다. 그 상황에 그 보다 더 적절하고 필요한 말은 있을 수 없다. 권주사는 어떻게 그 말을 할 줄 알았을까. 그 한 마디는 도벌꾼 아내의 눈 위에 주저앉으려는 마음을 부축해 주었음은 물론이고 어린것에게는 아빠가 과자를 사 가지고 돌아올 기다림을 심어 준 씨앗으로 볼 수 있다. 나는 말할 것도 없고 권주사도 자기가 한 그 말에 스스로 감동하는 눈치였다. 한 길 위에서 선배는 괜히 선배가 아니라는 생각을 했었다. 참담한 순간을 모면하는 인간의 슬기를 발휘할 수 있는 사람이 그렇지 못한 사람의 앞장을 서는 것은 당연하고 고마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관리소에 돌아와서 우리는 소장님의 가차없는 질책을 받았다.
"당신들은 분명히 직무를 유기 했어, 눈길이 열리거든 원주지청에 가서 담당 검사에게 사실대로 수사보고를 하고 응분의 문책을 받도록 하시오."
소장님의 명령은 단호했다. 우리는 소장님의 명령대로 원주지청에 가서 담당 검사에게 솔직하게 수사보고를 했다. 다행이 젊은 검사는 직무가 태만했다고 우리에게 시말서를 받는 것으로 일을 종결해 주었다. 젊은 검사가 어떻게 그런 아량을 베풀 줄을 알았을까. 깊은 적설의 골짜기에서 나온 하급직원의 딱한 처지에 대한 일종의 직업적인 우월감이었든지, 젊은 낭만이 저지른 실수에 대한 젊은이의 공감이었든지, 둘 중의 하나였을 것이다.
공무원의 직무유기는 구속수사 할 사안이다. 우리는 공무원으로 참 위험한 짓을 했다. 만약 검사가 우리를 금품을 수수하고 피의자를 놓아주었다고 오해를 했으면 시말서로 끝날 일은 아니었다. 지금도 눈이 소담스럽게 내리는 밤이면 그때가 생각나는데, 어린것의 별 같은 눈망울과 소리 죽여 울던 새댁의 애처로운 모습을 생각하면 도벌꾼을 노친 게 아니고 놓아준 거라고 생각하고 싶다. 함박눈이 내리는 밤의 직무유기, 내 인생의 공덕(功德)인양 흐뭇하고 직무유기를 할 수 있었던 내 존재가 오히려 자랑스럽기까지 했다.
반면 소장님의 지시를 충실하게 수행하지 못한 것은 평생을 바친 소장님의 소신에 대한 배반 같아서 죄송하다.
* 어느 날 박목월님의 시 '가족'을 읽고 문득 강원도 산골짜기에서 영림서직원 노릇할 때 검거하러 간 도벌꾼의 젖은 신발이 생각났습니다. 한 편의 수필을 제작할 모티브가 떠오른 것이지요. 내버려두었던, 희미한 기억에 상상을 덧씌우니까 그럭저럭 수필이 되었습니다. 일종의 추억담이지요. 내 지나간 삶의 이야기이니까 신변잡기인데 내 딴에는 신변잡기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삶의 보편적인 가치와 의미를 생각해서 쓴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독자가 판단할 문제지 글 쓴 사람이 말하는 것은 주제넘은 짓이지요.
그러나 수필을 쓰게 되는 동기는 삶의 의미를 발견했을 때 유발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작품이 내 의도를 다 표현해서 독자에게 전달되었는지 안 되었는지 독자가 판단 해주시기 바랍니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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