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성균 수필 연재 - 억수리에서
월악산 국립공원 동편 골짜기 억수리(億水里), 이름처럼 수량이 풍부한 냇물이 흘러서 피서객이 들끓었다. 이 곳에서 우리 가족은 2박 3일간 여름휴가를 보냈다.
산들이 깎아지른 듯 한 경사를 이루고 치솟아 있었다. 장마철이라서 그런지 늘 산봉우리가 구름에 묻혀 있다가 가끔씩 모습을 들어내면, 꼭 천상의 옥황상제가 거처하시는 대궐의 용마루가 저렇지 싶게 까마득했다.
개천 바닥에는 바위, 돌, 자갈들로 가득 차 있고 물매가 가팔라서 맑은 냇물이 골란 것처럼 하루 종일 소리를 지르면서 흘렀다. 냇물은 모여서 세차게 흐르기도 하고, 퍼져서 천천히 흐르기도 해서 물놀이하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개천 옆에는 소나무 숲이 우거져 있고 숲 속에서 매미가 왼 종일 울었다. 피서객들이 숲 속에 울긋불긋하게 천막을 치고 냇물에서 더위를 씻고 있었다.
숲 뒤에는 민박촌이었다.
휴가를 앞두고 승주 어미가 전화를 했는데 아비 회사에서 휴가 보너스를 한푼도 못 준다고 했다며 "아버님 스트레스 받아서 죽겠어요!" 하는 것이었다. 시부모를 모시고 휴가를 다녀오려고 했던 며느리의 효심을 IMF가 무참하게 무산시킨 모양인데, 그 기분을 기탄 없이 시아버지에게 토로하는 며느리가 예뻤다.
"걱정하지 말고 계획대로 휴가를 가자, 휴가 보너스는 우리가 줄 테니까-."
"죄송해요 아버님 우리 계획은 그게 아니었는데-."
결혼생활 3년 차, 아직 <인턴> 주부다. 맏며느리지만 우리가 힘이 있는 한은 구태여 서로 신경 쓰며 한집에 살 필요가 없다 싶어서 가깝게 있는 <원룸 아파트>를 얻어서 따로 살게 했다. 잘한 것인지 못한 것인지 분명치 않다. 애들의 신혼의 단 꿈을 위해 준다는 명분이었으나 며느리 시집살이에서 자유로워 보겠다는 어른의 얕은 이기심이 더 크게 작용한 것인지도 모른다. 한 지붕 아래서 미운 짓은 나무라고 예쁜 짓은 사랑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가족이라고 생각하면 잘 못한 짓 같다. 여하튼 자식의 도리를 다 하려는 며느리의 성의를 대할 때 나는 어른의 도리가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생각 해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이었다.
억수리에는 며느리의 고등학교 동창 친정 집이 있는데 민박을 친다고 했다. 학생시절 여름에 한 번 와 보았다고 한다. 그 꿈든 처녀시절 친구와 더불어 즐긴 산골짜기의 추억 때문에 며느리가 억수리로 휴가지를 정한 것인지 효율적인 휴가비용에 따라서 정한 것인지 모르지만 잘 정했다는 생각이 든다. 민박집에서 우리 며느리를 친정 온 자기네 딸 대하듯 해주어서 염치없이 큰 폐를 끼치고 왔다.
억수리에서의 2박3일 나는 즐거웠다. 시원했고, 가족의 소중함도 느꼈고, 무엇보다 세살 짜리 승주의 아련한 기억에 할아버지를 확실하게 심어 준 것이 기뻤다.
당연히 어린 승주는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몫이었다. 1세대인 승주와 2세대인 승주의 아비 어미와 3세대인 우리 내외로 이루어진 가족 구성에서 아무래도 여름의 주역은 2세대였다. 그들은 분방하게 여름을 즐겼고, 우리는 그늘에서 승주를 데리고 그들을 바라보는 것이 즐거움이었다. 승주는 내가 독차지했다. 승주는 물에 들어가지 않으려고 했다. 물이 차갑기도 했지만 왁살스럽게 바윗돌과 자갈 바닥을 굴러 넘는 물결이 무서운 모양이었다. 겨우 내 목을 안고 물에 들어갔다가는 기겁을 하고 발을 바짝 오므려 들었다. 그리고는 물에 가는 것을 싫어했다. 주로 승주와 나와 아내는 물 가장이 돌 위에 앉아서 "탐방"하며 돌을 물에 던지는 승주의 단순한 물놀이를 위한 조약돌을 집어 주는 것이 즐거움이었다.
승주는 나중에 자라서 세살 적 억수리 냇물의 여름을 기억할까. 승주의 기억력의 총명성을 나는 믿는다. 승주는 억수리 냇물을 엄청 큰물로 기억할 것이다. 그리고 '탐방'하고 물에 떨어지던 조약돌의 청량한 소리도 기억할 것이다. 그렇다면 담배 냄새나는 할아버지의 품도 안락하고 큰 행복의 세계로 기억해 줄지 모른다. 나는 승주가 청년이 되어서 연어처럼 기억을 더듬어 이 골짜기의 여름을 찾아오도록 많은 것을 기억시켜 주려고 애를 썼다.
항상 승주를 안고 다니는 나를 보고 민박집 옆방 인천서 왔다는 나와 연배쯤 된 피서객 내외는, 불편하게 무엇 하러 애들을 따라 와 가지고 어린애 보느라고 진땀을 빼느냐 면서 동정했다. 내 기쁨이 그 사람의 눈에는 구차스러워 보였던 모양이다. 그러나 어린 손자를 독점한 내 기쁨을 모르는 그 사람의 가족정서가 나는 오히려 가엾어 보였다. 사람 사는 기쁨에 대해서 구태여 그 사람과 논쟁을 벌릴 만큼 호사가가 못되는 나는 그 사람을 무시해 버렸다.
승주는 밤에도 개울에 가자고 졸랐다.
"안고, 하부지 탐방-."
그러면 나는 두말 않고 승주를 안고 개울로 나갔다. 어두워서 물소리만 크게 들릴 뿐이므로 무섭기만 한지 물가에 앉아서 조약돌을 집어 주어도 한 번 던져 보고는 목을 꼭 끌어 앉고 "가자. 집에-." 했다. 그러면 나는 승주를 안고 민박집으로 돌아 왔는데, 컴컴한 소나무 숲이 무서운지 내 목을 꼭 끌어안았다. 그 작은 힘의 무게에 감격해서 나도 승주를 마주 꼭 끌어안았다.
숲길에서 보는 별은 크고 예뻤다. 내 품에 꼭 안겨서 바라보는 찬란한 승주의 성좌, 어린 승주는 처음으로 우주를 보는 것이다. 내가 별을 가리키며 "별 많지, 가리켜 봐-." 하면 "조-오-기-."하고 아기 고사리 같은 손으로 별을 가리켰다. 냇가의 어두운 숲 속에서 본 별을 승주는 평생 간직하고 서정으로 키워 갈 것이다. 그리고 할아버지를 사랑하는 마음이 싹터서 나무처럼 자라리라. 얼마나 행복한 확신인가. 나도 승주만 해서 작은댁에 제사를 지내고 고모 등에 업혀서 등 넘어 오며 본 별 떨기와 고모 등허리의 동백기름 냄새의 아늑함이 이 나이까지 선명하게 기억나는 것으로 보아서 그 건 분명하다.
나는 한참동안 어두운 숲길에 서서 승주에게 별을 보여 주었다. 승주는 밤하늘을 쳐다보면서 "별, 마니네-." 했다. 승주가 어른이 되었을 때도 별이 저렇게 많을까? 그때는 지구가 얼마쯤이나 오염될지 알 수 없다. 이 깊고 맑은 억수리에 와서도 별 보기가 어려울지도 모른다. 승주의 시대는 문명이 더 발달해서 삶이 더 삭막하고 가혹할 것이다. 불쌍한 승주-!
어린애들은 사물을 오래 관찰하지는 못한다. 금방 좋아하고 금방 실증을 느낀다. 승주에게 더 보여줄 것이 없었다. 흐르는 냇물도 보여 주었고, 어두운 숲에서 하늘에 빛나는 별 떨기도 보여 주었다. 다시 마땅하게 보여 줄 것이 없었다. 민박집 주인들의 소박한 인심 같은 건 어려워서 보여 줄 수도 없다. 그런데 마침 보여줄 게 있었다. 억수리 구판장집 고양이였다. 흰털에 갈색반점이 있는 암코양이로 젖을 뗄 때쯤 된 새끼가 다섯 마리나 딸려 있었다.
나는 원래 고양이를 싫어했다. 우리 시골집 이웃에 고양이가 있었는데, 이 고양이가 우리 집에서 비린내만 풍기면 부엌 뒷문에 와서 야옹거리며 보챘다. 고기를 한 점 주면 반색을 하고 받아먹었다. 그런데 맨 손으로 애무를 하려면 뒷걸음질을 쳤다. 고기 첨을 들고 부르면 다가와서는 발톱을 세우고 사냥하듯 고기 첨 만 채 갔다. 그래서 고마움을 모르는 고양이의 야성을 얄미워했다. 구판장 집 고양이는 그렇지 않았다. "나비야-." 하고 부르면 다가 와서 제가 먼저 내 손에 몸을 비비면서 아양을 떨었다. 승주가 손을 내밀면 귀엽다는 듯이 혓바닥으로 핥아 주었다. 우리 시골집 이웃 고양이와 이 고양의 품성은 어째서 이렇게 다를까. 그것은 사랑을 받아 본 고양이와 못 받아 본 고양이의 차이 일까. 억수리 구판장 집의 고양이는 사랑을 많이 받아 본 고양이고 우리 시골집 이웃 고양이는 쥐나 잡으라고 갔다 놓고 무심하게 대해 준 고양이 임에 틀림이 없다. 사랑이 무엇인지는 사랑을 주고받아 보아야 안다. 구판장집 고양이는 사랑을 받아 보아서 사랑을 할 줄도 아는 것이다. 그 고양이는 승주가 저를 좋아하는 만큼 승주를 사랑하는 게 틀림 없었다.
억수리에서 나와 승주는 주로 구판장집 고양이와 놀았다. 고양이한테 오징어도 사주고 햄도 사주고 같이 노는데 돈이 들긴 했지만 승주에게 즐거움을 사준 것인 만큼 아깝지 않았다. 승주는 자고 나면 "고얀이, 고얀이-." 하며 고양이한테 놀러 가자고 보챘다. 3일째 되는 날은 승주가 고양이 새끼를 안아 보았다. 어미 고양이가 제 새끼 귀여워하는 짓인 줄 아는지 싫어하는 기색이 없이 바라만 보는 것이었다.
억수리를 떠나야 하는 날, 민박집으로 돌아오려는데도 승주가 한사코 고양이 새끼를 놓지 않았다. 억지로 고양이를 뺐어서 떼어놓고 오려니까 발버둥을 치고 울었다. 여북하면 구판장 집 아낙네가 "아가, 잘기를 수 있겠으면 가져가거라." 했을 정도다.
민박집에 돌아와서 점심을 먹고 떠나려고 하는데 구판장 고양이가 민박집에 새끼를 다 데리고 왔다. 고양이가 피서지를 떠나는 승주를 배웅하러 온 것 같았다. 승주가 아장거리고 고양이한테 달려갔다. 고양이들이 승주한테 모여서 애무를 하듯 몸을 비비는 것이었다. 그들의 한바탕 어울린 이별 장면이 천진난만한 한 폭의 동화(童畵)처럼 나를 감동시켰다.
억수리에서의 여름 휴가는 세 살 짜리 승주에게 사랑을 가르쳐 준 고양이를 만나서 다행이었다.
며느리의 얼굴이 처녀 때 억수리에서의 꿈 많은 여름을 보낸 얼굴이 저랬지 싶게 밝아 보였다. 제 남편이 여름 휴가비를 못 받아서 쌓인 스트레스는 다 해소 된 것인지---.
'━━ 감성을 위한 ━━ > 에세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목성균 수필 연재 - 어떤 職務遺棄 (0) | 2012.01.12 |
---|---|
목성균 수필 연재 - 액자에 대한 유감 (0) | 2012.01.11 |
목성균 수필 연재 - 의사선생님께 (0) | 2012.01.09 |
목성균 수필 연재 - 본개나루에서 (0) | 2012.01.07 |
목성균 수필 연재 - 휴게소에서 (0) | 2012.01.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