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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순교자 -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Joyfule 2023. 4. 30. 06:02






    문학의 순교자 -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십오년 전 우연히 만났던 소설가 강민자씨의 삶이 기억 저쪽에서 떠오른다. 돈이 나오는 것도 밥이 나오는 것도 아닌데 그녀는 문학에 목숨을 건 것 같았다. 그날은 소설가 정을병 선생과 광화문 뒷골목에 있는 식당에서 만나 점심을 먹고 있었다. 낡은 반코트를 입고 묵직한 가방을 든 여성이 나타났다. 정을병 선생이 자신이 추천해서 등단한 제자라고 했다. 그녀가 자신을 이렇게 소개했다.

“저는 작년에 환갑을 지났어요. 소설가가 되고 싶어서 이 나이까지 독신으로 살았어요. 삼십대까지는 명동의 유명한 다방 코스모폴리탄에 내 자리가 있을 정도로 자유분방하게 살았죠. 삼십년 동안 세일즈를 해서 번 돈으로 아파트를 사서 지냈죠. 몇 년 전부터 더 이상 미루지 말고 본격적으로 소설을 쓰겠다고 마음먹었어요. 그래서 살던 아파트를 팔아서 작은 원룸으로 집을 옮기고 남은 돈으로 생활을 하면서 글을 썼죠. 그때부터 소설을 써서 문학지에 원고들을 보냈어요. 그런데 이 문학세계가 참 권위주의적이고 더럽더군요. 연줄이 없으면 추천을 안해주는 거예요. 그래서 소설가협회장을 하던 정을병선생을 무조건 찾아가 막무가내로 작품을 봐달라고 떼를 썼죠. 그렇게 추천을 받아 소설가가 됐어요.”

그녀를 보면서 문학이라는 게 자신을 버리고 가난과 자유를 화두 삼아 나아가는 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혼불’이라는 소설을 쓴 여류작가도 평생을 혼자 살면서 글을 쓰다 죽은 문학의 순교자였다. 그들을 끌어들이는 문학이라는 것이 어떤 존재인지 나는 모른다.

“하루를 어떻게 보내세요?”

그녀의 삶이 궁금해서 물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향을 피우고 한참 동안 명상을 해요. 그리고 가방을 싸들고 서초동에 있는 국립도서관을 찾아갑니다. 거기서 독서를 많이 해요. 버지니아 울프부터 시작해서 고금소총까지 읽었어요. 그리고 글도 쓰죠. 점심은 도서관 구내식당에서 이삼천원이면 해결해요. 그리고 잠시 근처의 공원을 산책해요. 노년의 하루하루가 정말 즐겁죠.”

그녀의 말 중에 ‘버지니아 울프’라는 단어에서 기억나는 게 있었다. 버지니아 울프는 당대에 자신의 문학을 인정받지 못했다. 그녀는 어느날 강가에서 돌멩이들을 주워서 코트 주머니에 넣고 강물 속으로 들어갔다. 독학으로 쌓은 지식과 뛰어난 지성이 담긴 그녀의 작품들은 훗날에야 빛을 발했다. 가만히 듣고 있던 정을병 선생이 입을 열었다.

“일본 작가들을 보면 정말 문학 하나에 자신의 인생을 걸고 목숨을 걸어요. 그리고 연애소설이건 추리소설이건 환타지건 한 번 정하면 정말 깊숙이 그 속에 침잠을 하죠. 그런데 한국의 이름이 좀 났다는 작가들을 보면 작품보다는 교수직이나 사회에 더 정력을 뺏겨요. 그리고 소설도 이 분야 저 분야 막 건드려 보는 겁니다. 그러니까 개인의 특색이 없어져 버리고 작품들이 비슷해져 버리는 겁니다. 그리고 소설이라는 건 자기가 직접 체험해 보고 거기서 우러나오는 걸 써야 합니다. 소설을 쓰기 위해 잠시 경험해 보는 정도로는 부족하죠. 그건 일시적으로 담 넘어 보는 정도인데 본질을 전혀 파악하지 못할 수 있어요. 방구석에서 머리만 굴려서 쓰려고 하니까 작품이 없는거죠.”

그 말에 강민자씨가 화답했다.

“선생님 말이 맞아요. 일본 작가의 문장을 보면 그걸 위해서 평생 목숨을 바쳐요. ‘실낙원’같은 작품을 보면 스토리는 단순한 연애에 불과한데도 회화성의 문장묘사가 독자들을 빨아들이는 거예요. 그러면서도 그 안에 철학이나 정신적 깊이가 자연스럽게 배어 있어요. 저는 세일즈를 몇십년 해 왔어요. 그 마케팅 경험을 소재로 글을 쓰려고 해요.”

그들의 대화를 들으면서 순간 여러 생각이 들었다. 나는 빵을 위해 법학을 했다. 잘먹고 잘살고 싶었다. 정을병 선생은 젊은 시절 문학을 하기 위해 결혼하지 않고 평생 평생 하루에 한 끼만 먹겠다고 결심했다고 한다. 하루에 쌀 한두줌과 연탄 몇장, 그리고 김치 몇조각이면 생존에 필요한 돈이 거의 필요 없을 것이라는 계산을 했다는 것이다.

늦깍이 소설가 강민자씨의 삶도 같은 흐름이었다.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지 또 다른 깨달음을 얻은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