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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강해지려면 -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Joyfule 2023. 5. 1. 10:14






     정말 강해지려면 -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이십년 전 전국구 건달 출신과 얘기를 한 적이 있다. 특이한 사람이었다. 성경을 원문 그대로 통째로 암송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성자가 됐거나 믿음을 가진 양 같은 사람은 아닌 것 같았다. 그의 정신 지하층에는 여전히 파충류들이 들끓고 일 층에 그가 암기한 성경 구절이 들어있는 것 같아 보였다. 정신의 이층쯤에는 아직 돈에 대한 갈망이 더 많이 들어차 있는 것 같다고 할까. 그는 왜 성경을 그렇게 암기하고 있을까? 그러니까 십이월 중순 점심무렵이었다. 그와 청담동에 있는 한 일식당에서 만났었다. 사십대 중반인데도 그는 단단한 근육질의 몸을 유지하고 있었다. 어려서부터 여러 운동을 했다고 한다. 굵은 쌍거풀의 눈이 부리부리했다.

“어려서부터 소년수로 감옥을 살아서 그 생활에는 이력이 났습니다. 제 경험을 하나 얘기할께요.”

그는 김태촌의 범서방파에서 서열 두세번째쯤 된다고 했다. 그로부터 들은 대충의 내용은 이랬다. 그가 이십대 말교도소에 있을 때였다. 뒤에서 봐주는 건달 조직도 있고 탱탱한 근육에 힘이 넘쳐날 때라 그는 교도소 내의 목공장을 꽉 잡고 있었다. 모두들 그의 눈빛 하나만 보고도 주눅이 들어 있었다. 어느 날 칠십 가까운 노인이 감옥에 들어와 그가 지배하는 목공장에 배치됐다. 작달막하고 볼품없는 늙은이였다.

“뭐하던 사람이요?”

그가 위압적인 어조로 물었다.

“목사입니다.”

“어떻게 목사란 직업을 달고 이런 데를 들어오쇼? 죄명이 뭐야?”

“긴급조치 위반입니다.”

“ 긴급조치건 뭐건 앞으로 똑똑이 하쇼”

그가 으름장을 놓으며 기를 죽였다.

“예 앞으로 잘하겠습니다.”

늙은 목사가 겸손하게 대답했다. 건달인 그는 긴급조치 위반이 어떤 죄인지 관심이 없었다. 그 후 얼마의 시간이 흘렀다. 교도소내 목공장에서 계획된 생산량이 나오지 않았다. 그가 목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전부 불러 모았다. 그는 길다란 몽둥이를 들고 앞에 있는 작업대를 탕탕 치면서 겁을 주었다.

“앞으로 정해진 양대로 일하지 않으면 알짱 없어.”

그는 그렇게 말하면서 한 명 정도 시범으로 본때를 보여줘야 겠다는 생각으로 소리쳤다.

“작업시간에 일 안하고 죽치는 새끼들이 있던데 양심껏 앞으로 나와 봐.”

그가 으름장을 놓았다. 한 명은 잡아서 손을 봐 줄 생각이 었다. 싸늘한 공포의 분위기가 흘렀다. 그때 였다. 얼마 전에 들어온 늙고 왜소한 목사가 앞으로 나왔다. 그는 갑자기 난감해졌다. 노인을 두들겨 팰 수도 없고 그렇다고 뒤로 물러날 수도 없게 됐다. 그 작은 노인은 앞으로 나와서도 조용했다. 그는 갑자기 무서운 느낌이 들었다. 사자나 호랑이 같은 강한 동물들은 가만히 있고 점잖다. 그러나 약한 개는 으르렁 거린다. 왜소한 노인이지만 어쩐지 강한 짐승같은 느낌이 들었다.

“영감이라 이번 한 번은 봐주지. 그렇지만 앞으로 정량을 못 채우면 알짱없어.”

그때 조용하던 노인목사가 그를 보면서 말했다.

“강해지고 싶소? 정말 강해지려면 성경을 보시오.”

“웃기고 자빠졌네”

그의 대답이었다. 주먹의 세계에서는 힘과 깡이 최고였다. 그러나 작은 노인에게서는 원인 모를 어떤 힘이 느껴졌다. 만지면 부서질 것 같이 약한 노인은 두려움이 없는 것 같았다. 어느 날 밤 그는 감방의 옆자리에서 자는 사람의 머리맡에 있던 성경을 몰래 가져다 보았다. 이런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노하기를 더디하라. 자기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것 보다 낫다’

그 며칠 후 목공장의 화장실에서 나오던 노인목사가 다가와 그의 등을 툭 치면서 말했다.

“정말 강해지려면 성경을 보시오”

어느새 그는 노인 앞에서 고분고분해진 자신을 느꼈다. 그 후 수십년의 세월이 흘렀다. 몇 년전 이었다. 그가 강남의 한 교회 예배에 참석해 달라는 연락이 왔다. 어둠이 내릴 무렵 그 교회를 가보았다. 그가 세운 개척교회라고 했다. 전국의 건달들이 다 모인 것 같았다. 강대상 앞에서 그가 신들린 듯 줄줄이 성경을 외우면서 예배를 인도하고 있었다. 전국에서 온 건달 출신들이 예배당이 떠나갈 듯 “할렐루야 아멘”을 외치고 있었다. 하나님은 양순한 사람은 양순한 대로 건달은 건달대로 그 성질 그대로 받아들이고 쓰시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