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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회가 뭘까 -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Joyfule 2023. 4. 29. 07:21






    윤회가 뭘까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소설가 정을병선생이 살아있던 어느해 겨울 그가 벙거지 털모자에 등산용파커 차림으로 나의 사무실에 찾아와 책을 한 권 건네주면서 말했다.

“이거 절판이 돼서 힘들게 구한 건데 한 번 보세요.”

‘윤회의 비밀’이란 제목의 햇볕에 변색 된 낡은책이었다.

“이 책은 기독교의 입장에서 윤회에 대해 쓴 건데 죽음에 대한 생각이 바뀔 만큼 깊이가 있는 책이예요. 버지니아의 사진사 케이시라는 사람이 어느 날 소파에서 자다가 신비체험을 한 거예요. 그의 영이 우주의 중심부로 간 거죠. 그곳에는 모든 인간에 대한 정보가 집중되어 있었어요. 모든 세계에 대한 중앙 집중 기억장치라고 할까요? 그 후부터 그는 마주 대하는 사람들의 전생을 알게 된 겁니다. 그의 영이 우주의 정보센터로 가서 그 사람에 대해 저장되어 있는 정보를 검색해 보는 거예요. 그는 삼만명의 전생을 탐색했어요. 그 기록들을 기독교 원리와 접목해서 분석한게 이 책이예요. 엄 변호사에게 주려고 절판된 책을 헌책방에서 구해왔어요.”

성경을 읽다 보면 이상한 부분이 있었다. 세례요한이 누구의 환생이냐고 묻는 장면이 있다. 예수는 엘리야의 환생이라고 대답했다. 예수의 제자들은 타고 날 때부터 소경인 사람을 가리키면서 그렇게 된 게 누구의 죄냐고 묻는다. 예수는 또 아브라함 이전에 내가 있었다고 말하는 장면도 나온다. 그냥 평범한 나의 소박한 의문이었다. 쿠스타프 융이라는 스위스의 정신분석학자는 자기는 기독교도이지만 윤회를 믿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정을병 선생은 이따금씩 정신세계에 관한 희귀한 책을 내게 선물하곤 했다. 그가 줄까지 쳐가며 여러번 읽은 죠셉베너의 ‘내안의 나’라는 책을 내게 주었었다. 그걸 여러번 읽어봤다. 심오한 내용들이라 나같이 얕은 차원의 수준에서는 이해하기 힘들었다. 정을병선생은 원래 신학대학을 다니던 사람이었다. 그는 신학 대신 문학을 섬기기로 인생 궤도를 바꾸었다고 했다. 그는 작가가 되어서도 계속 영적 세계에 대한 탐구를 해온 것 같았다. 참선과 명상 그리고 인도 철학에 대해서도 많은 공부와 수련을 하고 여러 권의 책도 썼다. 그는 영적으로 상당한 수준까지 간 것 같았다. 한번은 그가 이런 말을 했다.

“명상을 하면서 정수리 부근이 근질거리는 걸 느낄 때가 있었어요. 제 삼의 눈인 영 안이 열리는 것 같았죠. 그 후 빛과 소리를 들었어요. 눈을 감고 있으면 환한 빛이 보이는 거예요. 흰 빛도 있고 색깔이 있는 경우도 있어요. 천상의 음악같은 소리도 들리구요. 그걸 체험하면서 나는 영혼이 빛과 소리로도 존재하는 걸 알았어요. 이제는 내가 깨달은 세계를 소설로 세상에 알리고 싶어요. 진리를 알리는 방법은 다양해도 무관하겠죠.”

신비체험을 겪는 그는 그 무렵 지독한 환란의 불도가니 속에 있었다. 성경속의 욥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 않았다.

외아들이 여행을 갔다가 아프리카 부근에서 실종이 되어 연락이 끊겼다고 했다. 문인협회장이었던 그는 선을 행하고도 주위의 모략으로 횡령범이 되어 억울한 감옥살이를 했다. 그의 옥바라지를 하던 아내가 갑자기 죽었다. 평생 가족과 살던 집마저 소송에 걸려 뺏길 위기에 처해 있었다. 그 자신에게도 암이란 죽음의 사자가 소리없이 찾아왔고 수중에 돈도 없는 것 같았다. 불행이 삼박자가 아니라 네박자 다섯박자로 그에게 다가와 있었다. 그는 자신의 고통에 대해 내게 이렇게 말했다.

“세상은 고통으로 차 있고 그렇게 만든 전생의 원인이 있다고 믿어요. 그런 것들은 자기 마음대로 피할 수 있는 게 아니고 다 카르마에 따라 정해져 있어요. 벗어날 수 없는 굴레라면 정면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믿어요. 끝없는 순환의 다른 세계가 존재한다고 확신하면 더 이상 죽음이나 고독을 두려워 할 필요가 없겠죠.”

거대한 영의 세계 앞에서 나는 컴퓨터 앞을 기는 개미같은 존재다. 어젯밤 유튜브에서 우연히 죽음학과 윤회를 연구한 교수의 강의를 들었다.

“영에도 여러 등급이 있습니다. 자기만 아는 저급한 영들은 끝 없이 윤회를 합니다. 그러나 사랑이 있는 고급 영들은 그 윤회의 수레바퀴에서 벗어나 돌아오지 않습니다.”

예수는 인간이 죽으면 새로운 몸을 받아 천사 같은 존재가 되어 다른 세계에서 산다고 했다. 이 세상에 다시 돌아올 운명이라면 내 마음은 어떨까. 읽었던 소설을 다시 보는 것 같아 별 재미 없을 것 같다. 그리고 다시 그 여러 고통을 반복하기 싫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