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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을 지키는 괴짜들 -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Joyfule 2023. 5. 2. 09:33






   법을 지키는 괴짜들 -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그날 오후 세 시경 나의 사무실로 김이조변호사가 들어섰다. 아버지뻘 되는 나이의 선배 변호사였다. 김이조변호사는 법조계 내부의 CCTV 역할을 수행했다. 수많은 법조인의 삶과 사건을 들여다 보기도 하고 의문이 있으면 직접 찾아가 인터뷰도 했다. 그리고 그 내용들을 수십권의 책으로 냈다. 그 자체가 살아있는 법조의 역사였다. 그와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물어 보았다.

“선배님이 보시기에 특이한 변호사가 있으면 얘기해 주시죠.”

그가 잠시 생각하다가 누군가를 떠올리는 표정이었다.

“장단점이 있지만 용태영변호사를 말해야겠네요. 용변호사는 학력이 공업중학교 중퇴죠. 그분 말이 공업중학교시절 자기가 작문에는 꼭 일등을 했다고 그래요. 그런 글재주 때문에 그런지 자기 수필집만 열 권이 넘을 거예요. 그 양반은 정말 배짱이 두둑했어요. 서슬이 시퍼런 박정희 대통령 시절 청와대 근처에 살았는데 청와대를 넓힌다고 하면서 계고처분장이 날아왔대요. 그 동네 사람들 모두 이사를 하라는 거죠. 용 변호사는 박정희씨가 단순히 자기 집을 넓히려는 데 왜 자기가 이사를 가야 하느냐면서 그 계고처분에 대해 행정소송을 걸었죠. 공공사업도 아니고 법적근거가 없었던 것 같아요. 법원이 어쩔 수 없이 용변호사의 손을 들어줬어요. 독재시절이지만 형식은 법치주의니까요.

용변호사 혼자 서울 시내가 내려다 보이는 청와대 옆에이층집을 짓고 아들과 살았죠. 경비가 철저해서 도둑이 들지 않아서 좋다고 그러더라구요. 내가 가 보니까 그 집 정원에 금칠을 한 불상이 앉아 있더라구요. 조계종단에서 선물로 받은 거라고 하더라구요.”

“조계종단에서 선물로 받다니요?”

내가 되물었다.

“어느해 크리스마스를 지내면서 용변호사가 의문을 가졌대요. 예수가 난 날은 공휴일인데 부처가 난 날은 공휴일이 아닌거죠. 불공정하다는 생각이었죠. 용변호사가 또 행정소송을 걸었어요. 그래서 석탄일이 공휴일이 된 거예요. 용변호사는 그런 특이한 일을 많이 했어요. 서초동에 법원청사를 처음 지었을 때 판사가 사용하는 엘리베이터만 있었고 일반 국민은 법정까지 걸어올라가야 했죠. 용변호사가 문제를 제기한 거예요. 판사가 일반 국민의 위냐고 말이죠. 그래서 법원이 국민용 엘리베이터를 놓게 된 거예요.”

“박정희 대통령이 통치하던 시절 중앙정보부에서 용변호사를 가만 두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그런 시절이었다.

“몇 번 끌려간 모양인데 그래도 기가 죽지 않았어요. 대단해요.”

그런 소수의 변호사에 의해 법치가 지켜지는 것 같다. 판사는 변호사가 문제를 제기해야만 판단할 수 있다. 검사는 형사상의 범죄로 그 업무영역이 한정되어 있다. 법조계의 CCTV였던 김이조 변호사나 배짱이 두둑했던 용태영변호사는 모두 저 세상으로 옮겨갔다. 그리고 이제는 내 또래가 원로 변호사가 된 셈이다. 내 주변에서 배짱 좋은 이석연 변호사를 본 적이 있다. 대통령이 세종시로 수도를 옮기려고 하다가 주저 않은 적이 있다. 이석연 변호사의 헌법소송으로 옮기지 못했었다. 내가 알고 지내는 이석연 변호사가 이런 말을 했었다.

“헌법에 대한 민국의 수도는 서울이라고 적혀 있어요. 수도를 옮기려면 헌법부터 바꾸어야지 대통령이라고 마음대로 하면 안 되죠. 수도를 옮기는 것 보다 더 중요한 게 헌법을 지키는 거예요. 예를 들면 헌법에 자유민주주의가 나와 있는데 대통령이나 의회 마음대로 인민민주주로 가면 되겠어요? 그래서 헌법소송을 걸어본 겁니다. 앞으로는 국민 세금을 마음대로 자기 지역구로 끌어 쓰고 그걸 낭비하는 정치인들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려고 합니다. 법대로 하라고 말이죠.”

법을 지키려고 하는 그런 변호사들을 보면 조선의 유림이 떠오르기도 한다. 궁궐 앞에 가서 도끼를 앞에 놓고 머리를 풀어 헤치고 임금과 맞짱을 떴다. 나는 어떤 변호사 생활을 해 왔나? 삼십대 초반 변호사등록을 하고 평생 독서하고 글을 쓰면서 변호사의 길을 가겠다고 기도했다. 그때 우연히 글 한 편을 읽은 적이 있다. 짜장면을 만들어 파는 사람이 자기는 그냥 최고의 짜장면 기술자가 되겠다고 하는 내용이었다. 보통 가게가 조금 잘되면 업장을 넓히고 여러 종류의 음식을 만들어 팔았다. 그러나 그는 짜장면 하나에 목숨을 걸겠다고 한 것이다. 내게 잔잔한 감동을 준 글이다. 사십여키로를 달리는 마라톤에서 삼십키로 지점을 넘기듯 나는 글쟁이 변호사 생활 삼십육년을 넘겼다. 곳곳에 지뢰가 묻혀있었다. 돌이켜 보면 죽지 않은 것이 하나님의 은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