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혹의 영과 싸우는 특단의 대책
미혹의 영은 속이는 영이라는 뜻으로 성경에 소개되어있다. 그러나 우리네 교회는 귀신이야기조차 꺼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므로, 미혹의 영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들조차 희귀하다. 그러나 필자는 미혹의 영과 싸워 이기지 않으면 안 되는 기로에 서 있다. 그동안 이놈들과 수도 없이 맞붙어보았다. 처음에는 이놈들의 정체를 파악하는 것조차 힘들었다. 그러나 영성학교라는 공동체에서 오랫동안 지켜보면서 기도훈련을 하다보니까 서서히 이놈들의 실체와 공격유형이 눈에 들어왔다. 그러나 필자나 코치들이 안다고 해서 되는 일이 아니었다. 정작 미혹의 영이 잠복하고 있는 사람들이 이 사실을 인지하고 치열하게 싸우려 해야 이기든지 지든지 결론이 난다. 그러나 본인들이 이 사실을 알아채는 것이 실로 힘든 일이다. 만약 그들이 그 사실을 진즉 알았다면 벌써 쫓아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지 못했기 때문에 지금까지 끈덕지게 붙어있었던 것일 게다. 필자가 이놈들의 정체를 깨닫게 된 것은, 이놈들의 입장에서 무엇을 노리는 지 날카롭게 살펴보면서 부터이다. 이놈들의 목적은 죄를 짓게 해서 생명과 영혼을 사냥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죄를 짓는 유형 중에서, 본인들이 인지하지 못하는 죄들을 날카롭게 집어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은 미혹의 영과 싸워 승리하는 특단의 대책에 대해 살펴보고 싶다.
1. 자신의 생각을 포맷하라.
포맷이란 단어는 컴퓨터가 바이러스가 먹었을 때 죄다 지운다는 용어이다. 미혹의 영은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생각을 넣어주기 때문에, 자신의 생각을 철저하게 지우지 않으면 이놈들의 공격을 알아챌 수가 없다. 특히 고집이 세거나, 자기중심적이거나, 교만한 사람들은 미혹의 영이 장악하고 있다고 보면 틀림없다. 그래서 아무리 기도해도 성령이 내주하는 증거나 변화, 능력이나 열매가 없는데도,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결과가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는 자신에게 문제를 찾기보다, 환경을 탓하거나 변명을 하거나 자기합리화를 하고, 심지어는 필자의 기도에 의구심을 갖는다. 그래서 마음을 찢고 잘못을 개선할 생각이 없는 이유이다. 그게 미혹의 영이 넣어주는 치명적인 공격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싫어하는 죄와 피터지게 싸우지 않으며, 죄와 싸울 생각조차 없다. 죄와 싸우는 것은 내 몫이지만, 죄를 이기는 힘을 주시는 것이 하나님이시다. 죄와 싸울 생각이 없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을 경멸하는 큰 죄이다.
1) 그간 해온 희생적인 종교행위에 대한 근거 없는 믿음(자기의)
2) 과거에 받았던 기도응답이나 은혜를 근거로 지금도 성령께서 역사하신다고 생각함
3) 자괴감, 죄책감(오랫동안 귀신에게 눌려 있었거나, 크고 작은 질병에 시달린 사람, 믿음이 부족한 사람(특히 여성이나 노인) : 불신앙
4) 기도할 때 든 느낌이나 감정을 죄다 성령의 역사로 착각함, 특히 감정의 기복이 심한 사람들은 틀림없이 미혹의 영이 공격하고 있다.
5) 세상에서 성공적인 업적을 쌓은 경우에 성령의 역사로 착각함
6) 과거에 비해 기도시간이 늘어나거나 성경지식이 많아진 것을 성령의 역사로 착각
7) 교회에서 높은 직분이 있는 사람, 성경지식이 많은 사람, 희생적인 신앙행위를 남다르게 한 사람, 교회나 세상에서 가르치는 직업이 있는 사람들은 습관적으로 상대방을 설득시키려는 영적 교만을 넣어주기 십상이다.
이 외에도 미혹의 영은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모든 생각을 넣어주어 속이고 있다. 그러나 오랫동안 기도해도 성령의 사람이 되지 않았다면, 자신이 잘 하고 있거나 올하고 생각하는 모든 생각을 내려놓아야 한다. 물론 자신이 옳고 다른 사람이 잘못되었을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상대방을 배려하거나 겸손한 태도를 견지하지 않으면 미워하고 교만한 죄를 짓게 된다. 그래서 항상 유순한 자세와 겸손한 태도가 없는 사람들은 미혹의 영이 장악하고 있다고 보면 틀림없다. 이는 자신의 생각이 옳다고 여기는 미혹의 영의 생각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2.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을 통렬하게 고백해라.
기도를 오래하는 사람이거나, 과거의 신앙의 행위에 도취되었거나, 신앙생활을 오래 한 사람은 물론, 세상에서 굵직굵직한 업적을 남긴 사람들은 자신에 대해 긍정적인 생각을 갖기 마련이다. 또한 세상에서도 긍정적인 사고방식이나 자신이 세상의 주인이라는 식의 비성경적인 세계관이 교회 내에 흘러들어와 있다. 그래서 기복신앙이나 번영신학이 교회를 장악하게 되는 밑거름이 되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생각은 다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수준을 원하신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5:16~18)
기록되었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벧전1:16)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마5:48)
하나님은 항상 기뻐하고 모든 일에 감사하라고 명령하고 계시고, 하나님처럼 거룩하라고 하셨으며, 하나님처럼 말과 행동에 완벽할 것을 바라신다. 말하자면 당신이 처한 환경과 상황에 상관없이 기뻐하며 감사할 수 있겠는가? 또한 하나님처럼 거룩하며 완벽하게 살 수 있겠는가? 그러나 사람들은 그런 명령이 성경에 없는 것처럼 무시하고, 설령 누군가가 말해준다 하더라도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살 수 있냐고 되묻는다.” 말하자면 처음부터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할 생각조차 없다. 그래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과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살아간다. 말하자면 하나님의 기준이 아니라 자신의 잣대로 사는 것이다. 그러면서 입만 열면 하나님을 주님이라고 부르고 있으니 가증스럽지 아니한가? 하나님은 사데교회를 향해 온전한 것을 찾지 못했다고 책망하시면서, 죄를 철저하게 회개하라고 명하셨다. 그렇다면 우리에게도 똑같이 주문하실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처럼 살아가고 있다.
너희 중에 뉘게 밭을 갈거나 양을 치거나 하는 종이 있어 밭에서 돌아오면 저더러 곧 와 앉아서 먹으라 할 자가 있느냐 도리어 저더러 내 먹을 것을 예비하고 띠를 띠고 나의 먹고 마시는 동안에 수종들고 너는 그 후에 먹고 마시라 하지 않겠느냐 명한대로 하였다고 종에게 사례하겠느냐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의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찌니라(눅17:7~10)
하나님이 주인이라면 당신이 종이라는 것이다. 종은 주인의 명령에 절대 순종해야 한다. 그러나 이런 저런 이유를 대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나 하고 싶은 것만 하고, 하고 싶지 않거나 할 수 없는 것은 하지 않는다면 악한 종이다. 하나님은 당신이 모든 일을 할 수 없으며 전능하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거꾸로 연약하고 부족하며 약점투성이라는 것을 알고 계시다. 그럼에도 이런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시는 이유는, 당신의 순종하는 자세를 테스트하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혹의 영은 하나님의 테스트를 깨닫지 못하게 하여 죄에 걸려들게 만들고 있다. 그렇다면 당신이 지녀야 할 또 하나의 태도가 있다. 바로 한 없이 낮고 겸손한 자세로 하나님께 불쌍히 여겨달라고 간청하는 것이다.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에 저 바리새인이 아니고 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으로 내려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눅18:13~14)
여리고에 가까이 가셨을 때에 한 맹인이 길 가에 앉아 구걸하다가 무리가 지나감을 듣고 이 무슨 일이냐고 물은대 그들이 나사렛 예수께서 지나가신다 하니 맹인이 외쳐 이르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앞서 가는 자들이 그를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그가 더욱 크게 소리 질러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지라(눅18:36~39)
이 세리와 맹인 바디매오가 예수님으로부터 의롭다고 여김을 받고 소원을 이룬 원인은 자신을 한없이 굽히고 겸손히 여기며 불쌍히 여겨달라고 애걸복걸하였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마음이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셔서 천국에서 영원히 같이 살고 싶어 하신다. 그러나 미혹의 영은 자신이 주인이라는 생각을 넣어주어 교만을 떨게 만들어 지옥에 던져지게 하는 것이다.
스스로 지혜롭다 하며 스스로 명철하다 하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사5:21)
가령 내가 의인에게 말하기를 너는 살리라 하였다 하자 그가 그 공의를 스스로 믿고 죄악을 행하면 그 모든 의로운 행위가 하나도 기억되지 아니하리니 그가 그 지은 죄악으로 말미암아 곧 그 안에서 죽으리라(겔33:13)
이처럼 스스로 자혜롭다고 여기거나 스스로 명철하다고 여기거나, 자신의 의로움을 믿고 하나님 앞에서 교만을 드러낸다면, 이전에 아무리 하나님 앞에 의롭다는 증거가 있었을 지라도 교만의 죄악으로 인해서 지옥의 불길에 던져진다는 것을 잊지 마시라.
3.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입에 달고 살라.
단단한 음식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그들은 지각을 사용함으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하는 자들이니라(히5:14)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12:2)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가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께서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영적인 일은 영적인 것으로 분별하느니라(고전2:13)
분별이란 뜻은 선과 악을 분별한다는 의미이다. 선한 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며, 악한 것은 악한 영이 사주하는 역사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하시는 일과 악한 영이 교묘하게 넣어주는 일을 어떻게 분별하는가? 바로 하나님이신 성령께서 주시는 은사를 받아야 한다. 그래서 분별의 은사가 바로 성령의 은사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신이 성경지식이나 세상적인 지식과 지혜, 경험, 인본적인 생각 등으로 분별하고 있다. 그런 생각은 죄다 미혹의 영이 넣어주는 생각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려면 성령이 주시는 은사를 받아야 하며,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서 깨달아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성령이 주시는 깨달음을 얻어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수 있는가? 바로 미혹의 영이 공격하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방어막을 쳐야 한다. 그 방어막이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이다. 미혹의 영이 가장 두려워하는 말이 바로 예수님의 이름이며 예수 보혈이다. 그래서 항상 예수 이름으로 말하고 행동하며 예수 피를 입에 달고 살아야 한다. 미혹의 영은 24시간 내 주변을 배회하면서 공격하려고 틈을 노리고 있다. 특히 관계를 맺는 사람을 통해서 공격한다. 그러므로 어떤 환경이나 상황, 친한 가족을 포함한 어떤 사람을 통해서도 공격할 수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항상 예수피를 입에 달고 살면서 미혹의 영이 공격할 수 없도록 방어해야 한다. 그러나 자칫 실수로 죄를 지었을 때, 미혹의 영은 자괴감이나 죄책감을 넣어주어 이차 공격을 가해온다. 그래서 아예 죄에 짓눌리게 하는 공격을 해온다. 오랫동안 미혹의 영에 눌려서 정신질환을 앓았거나, 걱정과 염려, 두려움과 불안, 낙심과 절망 등에 시달렸던 사람들은 이런 공격에 취약 한다. 그러므로 죄를 지었을 때 즉시 마음이 평안할 때까지 전심으로 예수 보혈을 의지하며 회개를 해야 한다.
4. 사귐이 있는 기도의 습관만이 미혹의 영을 이기는 비결이다.
‘입으로 나를 찾는 자는 기도의 본질을 모르는 자다. 기도의 본질은 나이고 자기도 알 수 없는 자를 만나는 것이므로, 그분이 누구인지 알려면 마음으로 만날 분을 사모하고 이름을 부르면서 자기에게 오시도록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나를 찾아주시도록 보이지 아니하고 들리지 아니한다 해도 오직 기도하는 일에 모든 집중을 다해서 일상에서도 기도하는 마음이 떠나지 아니하고 자기에게 오시도록 집요하게 조르는 것이다. 모든 이들이 이 기도를 하지 않고 중도에 포기하고 내가 그를 만나려고, 주리고 목마른 자가 오로지 나를 찾고자 하는 것을 혹독한 마음을 읽었을 때 내가 그를 만나려고 하고 있는데, 그들은 중도에 포기하고 자기들의 입으로 하나님은 자기에게 오시지 않는다고 불평만 하고 있다. 이렇게 기도하는 자는 어떤 일에서도 인내하지 아니하고 자기 고집대로 모든 일을, 하나님 없이도 자기의 일을 하겠다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나를 만날 수도 나는 그런 사람의 아버지도 아님도 알 것이라. 모든 사람들이 이런 기도를 하고 정성스럽고 끈질긴 자들이 나를 만나는 것이지, 조급하고 자기중심으로 나를 만나려고 하는 사람은 나도 그들을 만날 수 없다는 걸 알려라.’
위 글은 오래 전에 성령께서 필자부부에게 말씀하신 내용으로, 많은 이들에게 알리라는 명령에 의해서 영성학교의 기도훈련교재인 ‘성경적인 기도가이드’의 첫 장에 올려놓았으며, 동일한 이름의 다음 카페의 게시판에도 실어놓은 내용이다. 위 말씀을 간추려보면, 하나님을 만나는 기도는 혹독하게 그리고 끈기 있게 불러서, 하나님이 자신을 찾아오도록 간구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우리네 교회는 이런 투의 가르침이 없다. 영접기도를 하면 성령이 자신 안에 들어와 있기 때문에, 교회의 기도회에 모여서 자신들이 원하는 기도의 목록을 주구장창 간구하면 들어주실 거라고 가르치며 시행하고 있다. 물론 자신들의 주장을 합리화하는 성경의 구절을 자의적으로 해석해서 그 근거로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필자의 기도훈련방식의 근거는 성경말씀을 글자 그대로 제시하고 자의적인 해석을 덧붙이지 않는다.
만일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그를 찾으면 만나리라(신4:29)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렘29:13)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다.(잠8:17)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 중략..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눅11:9~13)
위의 성경구절은 필자가 훈련하는 혹독하고 끈기 있는 기도방식의 근거로 자주 인용하고 있다. 위의 말씀의 공통점은 하나님을 만나려면 마음을 다하여 전심으로 간절히 찾아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1분짜리 영접기도에 아멘하기만 하면 성령께서 즉시 자동적으로 들어오신다는 게 말이 되는가? 물론 우리네 교회도 자신들의 주장이 하나님의 뜻임을 주장하는 근거로,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롬10:10)의 구절을 들이대고 있다. 그러므로 자신이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 성령이 안에 들어오시고 구원을 얻게 된다고 말하고 있다. 여기서 ‘시인한다’는 뜻의 헬라어단어는 ‘오모게레인’인데, 이는 신앙고백을 하거나 자신의 죄를 고백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초대교회의 교인들이 예수를 믿는다면 죄다 목숨을 걸어야 했다. 그래서 우리네 교인들은 목숨을 걸고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고 고백하는 삶을 살고 있는가? 또한 우리네 교회에서 주장하는 근거의 성경구절인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1:12)를 곱씹어보자. ‘영접하다’는 단어는 헬라어 ‘엘라본’으로서 ‘받아들이다’라는 뜻이다. 이 말은 평생 동안 전인격적으로 예수님을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으로 받아들이며 살아가겠다는 결연한 신앙고백이다.
성경에서 쉬지 않는 기도를 요구하는 이유는, 악한 영들과의 치열한 영적 전투를 이겨내는 데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악한 영들은 24시간 어느 때든지 우리의 머리를 타고 들어와 자신들의 생각을 넣어주어 조종하는 공격을 하고 있다. 그러므로 성령이 우리 안에 들어와서 동행하지 않는다면 이들과 싸워 이길 수 없다. 그렇기에 쉬지 않고 항상 하나님을 부르는 기도습관이 필요하다. 그래야 미혹의 영의 공격을 이겨내고 성령이 사람이 되어 죄다 정예용사의 반열에 오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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