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성을 위한 ━━/에세이

바다 - 한상렬

Joyfule 2013. 9. 16. 09:38

 

 

  바다 - 한상렬



  바다가 품에 안긴다. 동해 바다다. 푸르다 못해 코발트색이다. 그 바다가 흰 이빨을 드러내고 내게 달려든다. 파고는 족히 3-4미터도 넘을 성싶다.
  바람이 부는가. ‘쉬―’ ‘쏴―’ 파도는 그렇게 밀려오고 밀려간다. 바다는 결코 정지하지 않는다. 끊임없이 변화하고 죽음으로써 새로운 생명으로 부활하는가.
  도대체 바다의 품안에는 얼마나 많은 물을 소유하고 있는 것일까? 그 미궁의 바다는 어머니의 자궁인가? 이제 막 새로운 생명을 출산하려는 듯 우리가 일찍이 어머니의 자궁 속에서 들었던 소리를 들려준다.
      
  망망한 바다를 바라본다. 바다가 내는 소리가 들려온다. ‘쉬-’,  ‘쏴―’. 바다 소리는 모든 것을 집어삼키고 침묵의 심연으로 향한다.
  우리가 최초로 들었던 원초적인 소리는 아마도 바다 소리였나 보다. 나는 지금 내 영혼의 세속적인 때를 씻기는 듯한 바다 소리를 듣는다. 그 소리를 들으려 동해 바다 자그마한 포구에 서 있다.
  텅 빈 바다에서 태고의 바다 소리를 듣는다. 체온을 오르내리던 무더운 여름도 가고 가을로 가는 계절의 한 모퉁이. 삶에 찌든 영혼을 씻어 내리는 듯한 파도소리는 자못 희열을 느끼게 한다. 바다 소리가 들려온다.
  바다는 지금 침묵하지 아니한다. 바다의 소리. 그 소리는 모든 음의 진동이 동시에 나타남으로써 얻어지는 ‘백색잡음(白色雜音)’이다. 소리의 연구자들은 모든 빛이 동시에 나타나 백색을 이루는 현상을 비유하여 백색잡음이라고 했다. 모든 음의 스펙트럼이 동시에 나타나서 ‘쉬―’ 아니면 ‘쏴―’라는 무표정의 음향을 나타낸다는 것이다. 바다 소리는 모든 인간적이고 지상적인 잡된 것들을 몽땅 침묵의 심연으로 쓸어안아 삼켜버리는가? 아니 세속적인 욕망과 생명마저도 거두어 피안의 세계로 갈 것을 예고하는 소리인지도 모른다. 


  작곡가 셰이퍼(R.Murray Schafer)의 말이던가. 바다는 어머니의 자궁으로 재현된다고 하였다. 그래 자궁의 양수(羊水) 속에 태어난 태아는 그 심연에서 탄생된 생명체에 비유될 수 있다고 했다.
  그렇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처음으로 들은 소리는 바로 어머니의 자궁 속에서 들은 그 물소리였다. 바다 소리였다.
  창세기에는 천지창조가 시작되기 전의 모습을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느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느니라.”고 했다. 생명의 근원을 바다에서 찾은 것이었다. 만물의 근원을 물로 본 탈레스의 사색도 이와 같지 아니한가. 

  물이다. 바다는 지금 품에 물을 안고 밀려왔다가는 다시금 밀려간다. 물은 곧 생명체를 품에 안고 있다. 물이 없는 곳에서 생명체가 존재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지구의 모든 생명체가 물로부터 왔다고 한다.
  물은 곧 바다다. 해가 져 가는 바다에는 오직 물밖에 없다. 도대체 얼마나 오랜 세월 바다는 이 모양 이대로 출렁였던가. 지금 저 장엄한 바다의 형상이 그저 신비롭기만 하다. “바다는 지구의 어머니다.” 프루스트였다. 바다를 지구의 모태로 본 것은.
  하늘과 구름이 맞닿은 원초적 혼돈과 끝도 모르는 나락을 가진 바다는 지금 온갖 생명체를 가슴에 안고 쉼 없는 동작을 이어간다. 결코 바다는 정지하는 일이 없다. 이 모양 그 대로. 바람이 부는 대로 더욱 거센 풍랑이 일거나 때론 순한 양과 같이 잠잠하기도 한다.
  하여 바다는 어쩌면 위대한 어머니요, 위대한 파괴자일 수도 있다. <해에서 소년에게>를 보라. 이는 우연이 아니다. 그는 바다를 빌려 기존의 외세에 대한 도전과 저항 의식을 표출하였다.

  눈을 감는다. 빛은 차단되고 보이는 것은 없다. 그저 암흑일 뿐이다. 그러나 소리를 듣지 않는 방법은 없다. 우리의 의식이 있는 한 완벽하게 방음된 방안에서도 귀를 틀어막아도 여전히 소리는 미세할망정 아주 작게 들려온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침묵은 없는 것일까?
  아니다. 바다 소리 뒤에 있는 소리가 침묵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그 침묵을 체험할 수 없다. 영혼으로 들어야하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비우고 영혼으로 바다 소리를 들을 때에 아마도 침묵의 소리를 들을 수 있을는지도 모를 일이다.  
  바다. 바다 소리가 들려온다. 나는 지금 그 바다에 서 있다. 비우지 못하는 내 영혼의 소리를 듣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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