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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이 갔었던 아라비아는 어디인가?

Joyfule 2024. 10. 30. 00:04



바울이 갔었던 아라비아는 어디인가?     

 

 

“또 나보다 먼저 사도 된 자들을 만나려고 예루살렘으로 가지 아니하고 오직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갔노라”(갈라디아서 1:17)

nor did I go up to Jerusalem to see those who were apostles before I was, but I went immediately into Arabia and later returned to Damascus.

 

1. 주장1 : 시나이 반도의 광야다

아라비아에서 보낸 3년은 본격적인 복음 사역을 위한 준비 기간으로서 이를 위해 시내산 인근의 광야로 갔었다는 주장이다.

하나님의 일을 하기 전에 모세는 광야에서 40년을 보냈고, 예수님은 광야에서 40일 동안 금식하였으므로 이에 비추어 바울도 시내산 인근의 광야인 아라비아에서 기도와 묵상과 성경연구를 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더구나 갈라디아서 4:25에 “이 하가는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산으로 지금 있는 예루살렘과 같은 데니 저가 그 자녀들로 더불어 종노릇하고”라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주장에 대해 누가복음의 말씀을 근거로 아라비아에서 3년을 보냈다는 것은 맞지 않다고 주장한다.

“음식을 먹으매 강건하여지니라 사울이 다메섹에 있는 제자들과 함께 며칠 있을쌔

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의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니

듣는 사람이 다 놀라 말하되 이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이 이름 부르는 사람을 잔해하던 자가 아니냐 여기 온 것도 저희를 결박하여 대제사장들에게 끌어 가고자 함이 아니냐 하더라”(사도행전 9:19~21)

 

또한 바울은 자신을 소개할 때 가말리엘 문하에서 공부하였다고 한다.

“나는 유대인으로 길리기아 다소에서 났고 이 성에서 자라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우리 조상들의 율법의 엄한 교훈을 받았고 오늘 너희 모든 사람처럼 하나님께 대하여 열심하는 자라”(사도행전 22:3)

그리고 갈라디아서에서도 유대교의 대학자인 가말리엘 문하에서도 뛰어난 제자였고 유대교에 속한 다른 사람들보다 앞서서 나아가고 있었음을 서술하고 있다.

“내가 내 동족 중 여러 연갑자보다 유대교를 지나치게 믿어 내 조상의 유전에 대하여 더욱 열심이 있었으나”(갈라디아서 1:14)

그러한 내용으로 볼 때, 사역을 위해 하나님에 대해 더 연구할 필요는 없다고 보여진다.

따라서 시내산 인근의 아라비아로 가서 사역준비를 3년간 했다는 것은 조금 설득력이 떨어진다.

 

2. 주장2 : 나바티아 왕국이다.

당시의 지도를 살펴볼 때, 나바티아 왕국(Nabatean Kingdom)은 아라비아 반도의 일부를 차지하고 있었으며,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사도행전 9:20에 바울이 다메섹(Damascus)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후 며칠동안 예수님의 제자들과 함께 있다가 “즉시로” 회당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였다고 기록되고 있으므로 3년간의 준비기간은 없었으며, 잠시동안 다메섹에서 말씀을 가르치다가 나바티아 왕국(아라비아)에서 3년간 말씀을 전파하였다고 보는 주장이다.

 

위 지도에서 보는 바와 같이 나바티아 왕국은 다메섹 동남부에서 시내 반도에 이르는 넓은 지역을 점유하고 있었다. 거라사(Gerasa)를 포함한 데가볼리(Decapolis) 성들의 일부가 이 왕국에 속해 있었고, 남부의 페트라(Petra)와 북부의 보스트라(Bostra)가 이 왕국의 주요 도시였다.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는 나바티아 왕국이 아라비아에 포함되어 있다고 했으며, 로마 시대에 나바티아 왕국은 아라비아의 나바티아로 알려졌다.

* ‘데가볼리(Decapolis) 성들’이란 위 지도와 같이 10개 성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데가볼리’라고 하는 것은 특정 성읍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결국 회심 후 바울은 시나이 반도에 있는 아라비아 사막이 아니라 다메섹의 동남부에 있는 아라비아의 나바티아 왕국에 가서 전도활동을 하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바울 자신도 고린도후서 11장에서 아레다 왕(King Aretas IV)이 자신을 잡으려고 했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다메섹에서 아레다왕의 방백이 나를 잡으려고 다메섹 성을 지킬쌔

내가 광주리를 타고 들창문으로 성벽을 내려가 그 손에서 벗어났노라”(고린도후서 11:32~33)

여기서의 아레다 왕은 주전 9년부터 주후 40년까지 나바티아 왕국을 통치한 아레다 4세(Aretas IV)로서 세례요한을 죽인 헤롯(마태복음 14:3~10)의 장인이기도 하다.

 

결국 아라비아의 나바티아 왕국에서 바울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는 일에 열심을 내었고 그렇게 할 수록 유대인들과 나바티아인들은 서로 공모하여 바울을 죽이기로 하고 그로 인해 바울의 목숨이 위태로워지는 상황이 되었던 것이다.

“사울은 힘을 더 얻어 예수를 그리스도라 증명하여 다메섹에 사는 유대인들을 굴복시키니라

여러 날이 지나매 유대인들이 사울 죽이기를 공모하더니”(사도행전 9:23~24)

 

3. 맺음말

이러한 검토를 통해서 볼 때 바울이 회심 후 찾아간 아라비아는 아라비아에 있는 나바티아 왕국이었으며, 이곳에서 3년간 열심히 말씀을 전함으로써 나바티아 왕국과 유대인에게 적대시 되었으며 죽을 위기에 처하기도 하였다고 볼 수 있다.

바울은 예수님을 만난 후 완전히 사람이 변하였으며, 하나님은 그를 이방인에게 말씀을 전하는 도구로 사용하였으며, 그가 공부한 율법이 말씀 전파에 크게 활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