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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 화산 폭발 논쟁

Joyfule 2015. 6. 22. 22:06

 

 

[백두산 화산 폭발 논쟁… '韓中 백두산 마그마 공동연구' 한국 측 대표 이윤수 박사]

"北 核실험과 백두산 폭발 연관? 헬륨 가스 수치 분석 결과
핵실험 진동이 백두산 마그마를 흔들었다고 보기는 어려워"

"活火山인 백두산은 어느 때든 터진다는 것은 분명해
다만 정확히 언제인지는 현재 자료로는 아무도 몰라"

국민안전처의 연구 용역을 받은 윤성효 부산대교수 연구팀은 "백두산 화산이 폭발지수(VEI) 8단계 중 7단계로 폭발할 경우 남한에 최대 11조1900억원의 재산 피해를 줄 것"이라고 발표했다.

'강원도와 경북은 화산재가 최고 10.3㎝까지 쌓이는 등 거의 남한 전역에 화산재가 떨어진다. 제주공항을 제외한 국내 모든 공항이 최장 39시간 폐쇄될 것이다. 화산 폭발에 따른 지진으로 서울·부산의 10층 이상 건물은 외벽과 창문이 파손될 수도 있다….'

우리 머리 위에 있는 백두산 화산 폭발의 공포를 다시 일깨운 것이다. 학자 개인 차원이 아닌, 정부가 발주한 '화산 재해 피해 예측 기술개발' 연구 용역의 결과이기에 훨씬 신빙성이 높아졌다.

당초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책임연구원인 이윤수(58) 박사를 만난 것은 좀 더 부연 설명을 듣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예상 밖의 반응이 나왔다.

"이런 경우 말하기도 난처하고, 입 다물고 있기도 그렇다. 내가 알고 있는 지식으로는 백두산 화산 폭발이 남한 지역에 그처럼 재앙 같은 피해를 줄 수가 없다."

연세대와 일본 교토대에서 '지구동력학'을 전공한 그는 '한·중(韓中) 백두산 화산 마그마 공동 연구그룹'의 한국 측 대표다. 오는 7월부터 중국과학원과 공동으로 백두산 내부의 마그마 움직임을 관측하기 위해 시추공을 뚫는 사전 작업에 착수한다. 그런 그가 정부 용역 연구 결과에 대해 의문을 표시한 것이다.


	이윤수 박사는 “‘한일 월드컵’으로 한창 떠들썩했을 때 백두산에서는 화산 폭발 위기로 들썩거렸다”고 말했다.
이윤수 박사는 “‘한일 월드컵’으로 한창 떠들썩했을 때 백두산에서는 화산 폭발 위기로 들썩거렸다”고 말했다. /김지호 기자

―본인이 참여하지도 않은 연구의 결과에 대해 이처럼 자신 있게 부정할 수 있나?

"10세기경 백두산 화산이 대폭발했다. 당시 분출된 화산재는 남한 전역을 1m 높이로 덮을 만한 양이었다. 고고학 연구자들은 남한 전역 수십 곳의 기반암까지 절개를 해서 지층(地層)들을 살펴왔다. 하지만 화산재 지층이나 그런 성분이 지금껏 발견된 적이 없다. 자연현상은 똑같은 조건에서는 똑같이 일어난다. 백두산 분화(噴火)로 남한에 큰 피해가 예상된다고 하려면 10세기의 화산재가 발견돼야 하는 것이다."

―백두산 화산재가 남한까지 날아올 수 없다는 뜻인가?

"화산이 대폭발할 경우 화산재는 10km 높이 이상의 성층권까지 올라간다. 성층권에서는 동쪽으로 제트기류가 분다. 백두산의 화산재는 북한과 동해상, 일본 홋카이도와 혼슈 북부에 떨어진다."

―남한이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할 수 있나?

"화산재가 동해 한류를 따라 흘러내려 오거나 계절풍으로 얼마간 날아올 수는 있다. 이번 연구처럼 재앙과는 거리가 멀다. 가장 피해를 많이 보는 인접 지역은 일본이다. 10세기에 백두산의 화산 폭발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도 일본의 지질조사에서였다."

―백두산 화산 폭발의 증거가 일본에서 나왔다는 것인가?

"그렇다. 1980년대 초 일본 혼슈 북부 지역의 지질조사에서 두 개의 화산재 층(層)이 나왔다. 아래층은 915년 일본 화산 폭발의 증거였다. 그런데 위층은 일본 화산에서 발견되지 않은 아주 이질적인 성분의 화산재였다. 그걸 추적하면서 근원지가 백두산임을 알게 됐고, 지층 분포에 의해 분화 시기를 915년 이후로 추정할 수 있었다."

―역사적으로 발해(渤海)의 멸망 시기가 926년이다. 백두산 화산 폭발과 관련 있다고 보나?

"내가 답변할 수 있는 사안은 아니다. 다만 당시 그런 대폭발이 있었을 때 왜 일본에는 있고 남한에는 화산재가 발견되지 않았을까. 강력하게 뿜어져 나온 화산재가 성층권으로 올라가 동쪽 기류를 타고 갔기 때문이다. 이번 정부 용역 연구팀은 왜 이런 기본적인 사실을 외면했는지 모르겠다. 백두산 화산 폭발의 극단적 시나리오만 보여준 것 같다."

이번 정부 용역 연구를 맡았던 윤성효 부산대 교수는 백두산 화산 연구의 권위자다. 2010년 유럽 항공대란을 초래했던 아이슬란드의 화산 폭발이 발생했을 때다. 두 달 뒤 윤 교수는 기상청 세미나에서 '중국 학자들이 2014~2015년 백두산 화산 폭발 가능성을 제시하는 등 백두산이 가까운 장래에 분화할 조짐이 확실하니 정부 차원의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발표했다. 이때부터 백두산 화산 폭발은 막연한 공포와 함께 우리 사회의 이슈가 됐다.

"화산 분야 연구자가 거의 없는 국내에서 윤 교수는 가장 오래 연구를 해왔다. 하지만 그때 발언으로 시끄러웠다. 당시 외교부에서 '백두산의 화산 폭발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토의를 해보자'며 연락이 왔다. 윤 교수 등을 포함해 전문가들이 모였다. 윤 교수에 대해 성토하는 자리가 됐다. 참석자들은 아무도 인정을 안 했다."

―백두산이 화산 폭발 한다는 게 근거 없다는 것인가?

"백두산은 활화산(活火山)이기 때문에 언젠가는 터진다. 다만 어떤 관측 자료나 근거가 없이 '몇 년 뒤에 터진다'는 식은 잘못된 것이다. 그건 과학이 아니고, 사회적 혼란만 부추기는 것이다. 당시 윤 교수는 '내 본의가 언론에 잘못 보도했다'고 해명했다."

―어쨌든 그로 인해 백두산 화산에 우리가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사실이다.

"국내뿐만 아니라 외국에서도 이슈가 됐다. 권위 있는 과학 저널 '사이언스'는 두 번이나 백두산 화산을 다뤘다. 그때까지 중국 정부는 백두산(장백산)을 관광개발지구의 관점에서 보고 있었다. 그런데 '백두산 화산 폭발' 보도가 나오니까 당황했다. 백두산 관측 자료는 중국밖에 없을 때였다. 공식 회의에서 '제3국의 학자가 무슨 자료를 갖고 그렇게 발표했는지 조사하라'는 지시까지 나왔다고 들었다."

―다시 묻는데, 백두산 화산은 터지느냐 안 터지느냐?

"반드시 터진다. 북한·러시아·중국이 교차하는 지점의 아래는 지진대다. 다시 말해 백두산의 심부(深部)에는 지진이 빈발하다. 그래서 전문가들끼리는 '백두산 화산이 언제 폭발해도 이상할 게 없다'고 말한다."


	이윤수 박사와 최보식 선임 기자 사진

―내 기억으로는 학교 다닐 때 백두산을 '휴화산(休火山)'으로 배운 것 같은데.

"그때는 그렇게 배웠겠지만 백두산은 '활화산'이다. 1990년 중국 지진국과 미국 뉴욕주립대가 공동으로 백두산 내부의 탄성파 실험을 했고, 한반도에서 마그마(용암)의 존재가 유일하게 확인된 산이다. 마그마가 있다는 것은 활화산을 뜻한다. 이론적으로는 '홀로세'(1만1700년 전부터 지금까지) 안에 화산 활동이 있었으면 활화산이다. 그런 기준에서 한라산과 울릉도 성인봉도 활화산에 속한다."

―백두산이 가까운 시일 내 폭발할 수도 있는가? 20년 안에 폭발할 것이라는 설도 제기됐는데.

"중국은 1999년부터 백두산에서 지진 관측을 해왔다. 2002~2005년 사이 지진 횟수가 부쩍 늘었다. 헬륨가스 농도가 높아지고 지형이 조금씩 솟아오르는 등 폭발 징후가 나타났다. 국내에서 '한·일 월드컵'으로 한창 떠들썩할 때 백두산에서는 화산 폭발 위기로 들썩거렸던 셈이다. 하지만 그 뒤로 백두산은 다시 정상으로 돌아왔다. 현재로는 화산이 언제 터질지 예측할 수 있는 자료가 없다. 그걸 알기 위해 '내시경' 조사처럼 마그마의 움직임을 알아보려고 하는 것이다."

―언제부터 백두산 화산 폭발에 관심을 갖게 됐나?

"백두산의 화산 징후를 알게 됐을 때다. 내가 2007년 조선일보에 '높아가는 백두산 화산 폭발설'이라는 글을 게재했다. 이 무렵 북한도 '백두혈통의 성지'인 백두산 화산 폭발 가능성에 대해 고심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걸 어떻게 아는가?

"그해 말 노무현·김정일 간 남북 정상회담이 있고서 북한에서 '백두산 화산 남북공동연구를 하자'고 제안해왔다. 우리 측 실무대표로 나를 포함해 4명이 뽑혀 협상 초안까지 마련했다. 2008년 봄에 실무자협의를 하려고 했는데, 정권이 바뀌고 남북 관계가 경색되면서 만나지 못했다. 그러다가 2011년에 북한에서 다시 제안을 해왔다."

―그때는 만났나?

"우리 측 4명, 북측 3명이 두 차례 접촉했다. 북측에서는 학술발표회를 먼저 갖자고 했다. 하지만 우리는 백두산 화산에 대해 발표할 만한 연구 성과가 없었다. 정치적으로 백두산은 중국과 북한에 속해 있다. 우리가 상주하거나 장비를 들고 가서 연구할 기회가 없었다. 그동안 중국 측의 제한된 관측 자료에 의존했던 것이다."

―우리 쪽에서는 어떤 제안을 했나?

"북한의 관측 자료를 검토하면서 백두산 화산 연구를 어떻게 할지를 논의해보자는 것이었다. 두 번째 만났을 때 백두산 내부 마그마의 움직임을 공동 연구하자는 안을 내놓았다. 북측은 자기들끼리 장시간 검토를 한 뒤 받아들일 수 없다고 거부했다. 그 뒤로 연락이 끊겼다."

―북한이 왜 거부했다고 보나?

"마그마의 움직임을 관측하는 장비를 설치하게 되면, 그 장비에 의해 북한의 핵실험 같은 것도 관측될지 모른다는 부담을 느꼈을 것이다. 당시 회의에서 내가 '백두산 천지 밑에는 액화이산화탄소가 가라앉아 있을 것이다. 이걸 조사해보면 화산 폭발 관련 단서를 얻을 수 있다'고 말한 적 있다. 그 뒤 '사이언스'가 백두산을 취재한 기사에서 '한 북한 사람이 천지 밑바닥의 물을 떠올리고 있었다'는 내용이 나와 있었다."

―북한 핵실험이 지반을 흔들어 백두산 화산 폭발을 촉발시킬 것이라는 주장도 있었는데.

"실제 그런 연관성을 조사한 적이 있었다. 핵실험은 2006년과 2009년 백두산에서 110㎞ 떨어진 길주군 풍계리에서 이뤄졌다. 백두산의 헬륨 농도를 관측해온 중국 측 자료를 받아 핵실험 전후 기간을 분석해 봤다."

―분석 결과는 어떻게 나왔나?

"1차 핵실험은 TNT 1000t 규모의 위력이었고, 2차는 4500t 규모였다. 백두산 화산 폭발에 영향을 미친다면 당연히 2차 실험에서 헬륨 가스 분출이 더 많아야 한다. 하지만 측정 수치로는 그렇지 않았다. 핵실험의 진동이 백두산의 마그마를 흔들었다고 보기 어려웠다."

―백두산 화산 폭발에 갖는 관심 속에는 막연한 두려움도 섞여 있는 것 같다.

"사람이 죽는 것처럼 화산 폭발은 피할 수 없다. 인간의 의지와 무관한 자연현상이기 때문이다. 다만 폭발 시점을 정확히 예측해 그 현장에서 인간이 잘 피하는 도리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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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