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처와 애첩 - 임매자
처음 수필과 쉽게 인연을 맺은 것이 내 실수였다. 내 삶에 관계되는 일들은 모두 글감이라 기억 저편에 누워있는 이미지들을 손만 내밀면 쉽게 건져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것은 오해였다. 그는 가까이 할수록 멀어질 뿐이다.
그와 동거하는 동안 나는 말이 없어지고 한 공간에 같이 지내는 가족에게 정다운 눈짓도 인색해진다. 그와 사는 몇날 며칠은 허깨비로 살며 남편의 말도 알아듣지 못하기도 하고 무엇을 꺼내려고 냉장고 문을 열다가 머리를 디밀고 뭘 찾으려고 했는지 깜박 잊고 그냥 문을 닫기도 하는 등, 그를 머릿속에 담고 다니는 동안에는 일상의 순서를 잊어버린다. 그렇지만 그와 만나고부터 난 넘치는 행복감을 만끽하며 산다. 수필과 만나기 전 내 삶은 햄버거처럼 흔한 싸구려 행복들 속에서 참새 한 마리의 무게로도 휘청댔다.
처음 그가 내 눈에 조선여인들처럼 고고하고 정갈하게 보였던 것은 내 눈에 콩깍지가 낀 탓이 아니었을까.
그를 만나자 난 미세한 촉수로 삶을 넓고 깊게 감지하고 싶은 욕망이 일었고 깊은 지적인 욕구가 생겼다. 결혼하고 맞벌이 하는 동안 책과 멀리했던 나는 닥치는 대로 독서를 멈추지 않았다. 뭔가는 남겠지 하며 탐했다. 그러나 늦은 나이라서인지 뇌리에 남아 있지도 않았고, 숙련되지도 않은 그냥 스쳐가는 독서였다.
그는 어떤 날은 톡톡 튀는 생경스러움으로 오는 날도 있지만 또 다른 날은 느슨하고 누리끼리하게 퇴색된 모습으로 영영 구실을 할 수 없을 것 같은 모습으로 오기도 한다. 이럴 때 먼지를 털어 살을 붙이고 맑은 피로 수혈을 하다보면 뜻하지 않게 매력적이고 반짝이는 이미지의 멋진 수필이 되기도 한다.
나른한 삶에서 갑자기 어떤 이미지가 튀어 오르면 우선 그를 날새게 잡아채어 그 이미지를 주제로 모신다. 그리고 그와 관련된 소재를 최대한 긁어모으고 내 기억 속의 소재들도 징발하고 나서 활용가치가 높은 소재들만 남기고 나머지는 과감히 버린다.
처음 낚시 바늘로 낚아 올렸을 때 그는 월척이 될 것 같았지만 끝내 게으르게 누워서 자기 구실을 못하고 점점 퇴색되어 시간의 무덤에서 죽은 생각의 글이 되기도 한다. 그럴 때 미련 없이 미루어두고 어슬렁거리며 걷는다. 느긋하게 걸어야 미세한 데 눈길을 줄 수 있고, 세상이 요구하는 질서의 뒤편을 응시할 수 있는 글을 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때는 그를 받아들이고 부터 모든 일상이 건성건성해지고 자그마한 실수도 자주 저지른다. 일상적인 생활 속에서 손은 기계적으로 움직이고 수면 위로 떠오른 얼굴은 평온하고 느긋하게 느적 거리며 이것저것 참견하며 놀고 있는 듯 보이지만 내 안에는 제게 놀리는 오리발의 물갈퀴처럼 늘 출렁이며 바쁘다.
수필은 일상에서 선을 하듯 착하게 살아야 하고 그 속에서 글을 건져야 하니까 수필은 내가 늘 감수하고 지킬 본분이라 그는 남겨진 숙제처럼 무겁다.
수필이 무거울 때면 으레 시를 품에 품고 싶다. 시에게 스트레스를 안 받으니 그냥 예쁘고 앙증맞아 늘 사랑스럽기만 하다.
시의 그 날씬한 함축력의 매력에 목이 말라 그에게 흥건히 젖고 싶다. 부부가 소통이 안 되어 버거울 때 다른 상대와 불륜을 저지르듯이.
내가 남자라면, 그러면 수필은 본처이고 시는 애첩쯤 되는 걸까.
내 삶에 뛰어든 시는 내 깊은 잠 속까지 걸어 들어와 매일 밤 우리는 젖은 꿈속으로 빠져든다. 대낮에도 차 안이거나 누구를 기다리는 시간에는 늘 애첩을 애완용처럼 끼고 다닌다. 내가 깨우면 눈 비비고 깨어나는 상큼한 시 한 줄에 하루가 행복하다. 그래서 고단하게 돌아다녔을 애첩의 발을 씻기고 깨끗한 이부자리로 뉘이고 매일 아침 햇살에 이마를 씻고 풀포기에 가득 내린 맑은 이슬로 손을 씻긴다.
애첩은 내 일상을 맑고 깨끗하게 씻어주지만, 그러나 나는 안다, 무수히 쏟아지는 서툰 시들이 많은 걸. 그래서 늘 애첩에게 목마른 짝사랑을 할 뿐이다. 시를 즐기기는 하나 감히 써보려고 시도해 보지도 못한다. 청량한 바람을 맞으려고 고개를 들여 미는 사람들에게 냄새를 끼치는 우를 범할 것 같아서.
때로는 수필이 이합집산이라 부담스럽고 빡빡하여 쉬고 싶을 때 애첩을 만나 언어의 마술에 취해 희희낙락하다가 그와 혼곤한 잠속으로 빠진다.
그럴 때는 애첩에 대한 열망으로 본처를 두고 그녀의 곁에 가고 싶지만 그 역시 넘어야 할 산이 되면 수필처럼 무거워 질까봐 망설여진다. 역시 애첩이란 무게감 없이 즐기는 게 묘미가 있는 것이 아닐까.
수필과 인연을 맺어 그와 몸 비비는 동안 쓰면 쓸수록 어려운 게 수필이지만, 그래도 그를 나의 반려로 삼은 것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몇날 며칠을 수필과 씨름하다가 그래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깊은 항아리에 잊은 듯 묻어버린다. 그러다가 어느 날 문득 처박아 삭히고 잊던 글을 꺼내 환기를 시키면 다시 생경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머리에서 파생된 단어들을 줄을 세우고 고르고 골라 자신이 있을 자리에 배치시키고 대장간에 공구를 벼르듯이 수도 없이 벼르기 시작한다. 그러노라면 그는 다소곳한 모습으로 익어간다.
그러면서 다소곳한 농익은 그의 모습에 난 황홀한 환희를 느낀다. 이런 느낌을 위해 난 오늘도 이렇게 허우적거리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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