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선교의 아버지, 베어드 선교사를 조명하다
"초량교회, 바른 역사를 찾았다."
부산장신 기획강좌, 베어드 선교사 일기장에서 화인
"1893년 토착신자 모아 첫 예배"
윌리엄 베어드 선교사가 남긴 일기장을 통해 초량교회의 실제 창립연도가 밝혀져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지난 3일 부산장신대학교(총장 : 신동작)에서 열린 부산장신대 부설 부산경남 교회사연구소(소장 : 탁지일) 연속기획강좌에서 고신대 이상규 교수(교회사학)는 "베어드가 남긴 일기를 살펴보면 1894년 6월 4일에 부산지역에서 토착신자들이 최초로 예배를 드렸다 기록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이는 초량교회가 고수해 오던 '1892년 11월' 설립설을 전면적으로 뒤집는 사료여서 향후 부산지역 교회사에도 일부 영향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초량교회는 "윌리엄 베어드 선교사는 아내의 산후조리가 끝나는 11월부터 자신의 집에서 선교활동을 시작했으며, 이후 집회형태를 갖게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초량교회의 최초의 예배가 되었다"라고 밝혀왔다. 그러나 이번에 공개되는 베어드의 1893년 6월 4일자 일기에는 "처음으로 사랑방에서 예배를 드리기 위해 함께 모였다. 참석자 중에 어학선생은 서서방, 고서방 그리고 그의 동생 안서방이었고, 하인으로는 용규, 세기, 인수 그리고 게일의 하인인 감영이 참석했다. (중략) 그리고나서 하나님의 집을 드리는(dedicating) 기도를 했다" 라고 기록되어있다.
결국 베어드가 부산지역 기독교인들과 첫 모임을 갖고 그 자리에서 자신의 사랑방을 하나님의 집으로 봉헌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윌리엄 베어드가 초량교회 설립자임을 감안한다면 이 교회의 설립일은 기존보다 8개월이 늦은 1893년 6월 4일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이날 예배에 참석한 '서서방'과 '고서방'이 순회전도가였던 서경조 목사와 고학윤이었다는 사실도 확인이 돼 이날 예배가 단순한 모임이 아니라 특별한 목적을 가진 예배였다는 것을 뒷받침하고 있다.
발제를 한 이상규 교수는 "윌리엄 베어드 선교사의 일기가 발견되지 않았다면 초량교회의 설립연도는 기존의 1892년으로 굳어졌을 것"이라면서, "그러나 정확한 사료가 발견된 것은 교회의 역사나 지역교회의 역사를 위하여도 여러모로 도움이 된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이어 베어드 선교사의 일기가 발견된 것을 계기로 교회역사를 집필할 때 정확한 사료에 기초해 사료를 정리해 나갈 수 있는 풍토가 정착되어야한다"면서, "이를 통해 선교사들과 초기 전도자들의 행적을 보다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부산의 첫 교회 설립자 William Baird
William Baird의 일기장을 토대로 근거 마련해
기독교의 역사를 고찰하기 위한 목적으로 3년 연속기획 강좌를 벌여오고 있는 부산장신대학교와 부산경남교회사 연구소는 지난 3일 부산장신대학교 채플관에서 ‘미국교회의 부산경남지역 선교 ‘William Baird의 부산에서의 활동’이라는 주제로 기독교역사강좌가 열었다.
지난 2004년부터 시작된 기획강좌는 2004년 부산의 첫 상주선교사 ‘캐나다교회의 제임스 게일’, 2005년 부산선교의 첫 순교자 ‘호주교회의 헨리 데이비스’에 이어 올해는 부산의 첫 교회 설립자 ‘미국교회의 윌리엄 베어드’에 대해 강좌가 진행되었다.
사회를 맡은 탁지일 교수는 “3년간 해 온 기획강좌를 한권의 책으로 엮어낼 예정”이라며 “부산경남교회사연구소의 연속기획강좌는 부산경남 지역의 초기 선교역사를 연구하기 위한 목적으로 진행해 오고 있으며 이 연구를 통해 부산경남지역에 복음의 씨를 뿌린 첫 전도자들의 삶과 신앙을 조명해 볼 수 있는 기회”라고 설명했다.
환영사에서 신동작 총장은 “한국교회사에서 부산경남의 교회사가 정리 안되어 차지하는 비중이 작았다”며 “부산경남에 역사를 찾는 일은 보람있는 일이고, 특별한 일이기에 기쁘게 생각한다”고 전했다.
이상규 교수(고신대학교 교회사학과)는 강좌를 시작 전 나눠준 미국 선교사 ‘William Baird의 부산에서의 활동’이라는 유인물을 토대로 설명하면서 강좌를 진행했다. 이 교수는 강좌에서 “직접 미국으로 건너가 William Baird의 일기장을 토대로 부산경남의 역사적인 현주소를 되짚을 수 있었다”며 “부산지역의 선교사들은 호주선교사들이 부산에 와서 개척했기 때문에 서울과 부산의 중간 지점인 대구를 개척할 생각을 했다. 하지만, 부산의 두가지 문제점을 보면서 부산에서 계속 개척해 나갔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William Baird의 남동생 안의환(Adams)을 대구에 보내 개척하게 해 안두환(Adams의 아들)이 계명대를 짓게되었고, 옛 제종원(현 동산병원) 앞마당에 미국에서 가져온 사과나무 3그루 심은 것이 현재 대구 사과의 시작이 되었다” 고 덧붙였다.
강좌 후 박의영 목사(경성대학교 교목)의 ‘William Baird의 부산에서의 활동’에 대한 논찬에서는 “부산경남에서 기독교역사가 전무한 상태였는데, 부산경남 역사연구회가 태동하면서 부산경남지역의 역사를 올바로 인식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며 감사의 뜻을 표하면서 “그 시대적 배경인 청일전쟁, 러일전쟁, 을사조약, 한일병탄에 관한 정치적인 내용이 없어 아쉽다”고 전하고 준비해 온 유인물을 토대로 논찬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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