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채 - 김학 (수필가)
새 옷으로 단장한 산과 바다가 서로 자태를 뽐내며 유혹하는 계절이다. 다녀왔거나 떠날 사람들의 피서 이야기가 연일 고막을 따갑게 하는 여름이다.수은주는 섭씨 30도를 웃돌고, 덩달아 불쾌지수는 활주로를 벗어난 비행기처럼 치솟는다. 등줄기에는 땀방울이 도랑을 이루고, 숨이 컥컥 막히는 여름의 허리 삼복더위다.
목욕탕으로 달려가 옷을 훨훨 벗어 젖히고 샤워를 한다. 언제 더웠더냐 싶으리만큼 시원하다. 옷을 챙겨 입고 방으로 나온다. 피워 문 담배를 채 끄기도 전에 더위와의 실랑이는 다시 되풀이된다. 선풍기를 튼다. 삽상한 바람도 잠깐일 뿐, 후텁지근한 바람이 온몸을 칭칭 휘감는다. 선풍기나 에어컨이 없던 어린 시절의 여름 풍경이 주마등처럼 스친다.
내 고향 동구 밖에는 당산이 있었다. 수백 년 됨직한 아름드리 거목이 그늘을 드리운 채 서 있고, 그 아래로는 밋밋한 바위덩이가 듬성듬성 놓여 있다. 더위를 삭이기에는 안성맞춤의 상설 피서지다.
이글거리는 태양이 중천에 솟아오르면 논밭에서 비지땀을 뿌리며 일하던 이웃들이 점심을 때우고 당산으로 모여든다. 조무래기부터 할아버지까지 다양한 계층이다. 부채로 장단을 맞추며 청아한 목청으로 시조를 읊조리는 노인, '장군! 멍군!' 장기 삼매경에 빠진 젊은이들, 고누를 두며 깔깔거리는 어린이들, 입담 좋게 한담을 즐기는 장년들. 이 땅의 어느 농촌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여름 정경이다.
어둠이 나래를 펼 즈음 집에 돌아가면 어느새 뜨락엔 모깃불이 피워져 매캐한 연기를 내뿜는다. 멍석에 드러누워 초롱초롱한 밤하늘의 별을 헤다가 스르르 잠에 빠지면, 어머니는 삼베 홑이불을 덮어 주고 밤이 이슥토록 부채로 살랑살랑 바람을 일궈 주신다. 더위도 식혀 주고 모기도 쫓아 주려는 찐득찐득한 모성애였던 것이다.
부채는 여름철 우리네의 필수 도구였다. 식구대로 부채를 마련하는 것이 예사였다. 그러기에 예로부터 단오(端午)의 선물은 부채요, 동지(冬至)의 선물은 달력이라고 했는지도 모른다. 부채는 단순히 더위를 쫓는 데만 요긴하게 쓰인 게 아니었다. 폭포수 아래서 3년 독공(獨功) 끝에 목청을 틔운 명창들도 부채를 들어야 흥이 나서 노래를 부를 수 있었고, 천군만마를 호령하던 제갈량(諸葛亮)도 부채를 들어야 지휘관으로서의 체통이 섰다. 남원 광한루에서 그네타는 춘향이를 가리키며 데이트를 주선하라고 방자를 다그치던 이 도령의 손에도 부채는 들려있었고, 혼례식장에서 신랑신부가 얼굴을 반쯤 가리던 것도 부채였다. 너울너울 춤을 추는 무희(舞姬)와 푸닥거리를 하는 무당의 손에도 어김없이 부채는 들려져야 했다.
부모의 병구완을 위하여 한약을 달이는 때도 부채는 있어야 했고, 임진왜란 때 동래성을 지키다 순절한 송상현 부사가 그 부친에게 유서를 써 보낸 것도 부채였다. 부채살 마디만큼이나 많은 사연이 담겨진 게 부채다.
조선 시대 전주를 비롯한 부채 명산지 고을 수령들이 부채를 진상하고, 임금이 단오날 관원에게 부채를 하사한 풍속이 예사로운 일은 아니다. 어진 바람을 일으켜 백성들의 마음을 시원하게 보살펴 주라는 무언의 뜻이 담겨졌던 것이다.
* 경북일보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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