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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도 병풍의 노래 - 鄭木日

Joyfule 2012. 9. 4. 11:20

 

 

효도 병풍의 노래 - 鄭木日




12폭 병풍을 보고서 치솟는 눈물을 억제할 수가 없었다.
어느 사람의 효성에 그만 몰래 울고 말았다. 아무리 시대가 바뀌었다한들 퇴색될 수 없는 감동이었다.
그 12폭 병풍은 오래 만에 깊고 맑은 샘물로 삭막하고 목마른 가슴을 적셔주었다.  

밀양에 간 길에 잠시 틈을 내어 개관한 지 몇 달이 안 된 밀양박물관에 갔다.
1층 기획전시실에서 ‘밀양 12경도(密陽十二景圖)’란 열두 폭 병풍 앞에 눈이 딱 머물렀다.
오래 동안 그 앞에서 숨을 죽이고 움직이지 않았다. 짜르르 전율이 가슴에 전해 왔다.

‘이 그림은 금시당(今是堂) 이광진(李光軫 1517~1566)의 장남 근재(槿齊) 이경홍(李慶弘 1540~1595)이
1566년 (조선 명종 21년) 당시 지병으로 고생하는 부친을 위로하기 위해 그린 그림이다.’

안내 해설판을 보고, ‘지병으로 고생하는 부친을 위로하기 위해 그린 그림’이란 부분에 눈이 머물면서
병든 아버지를 위해 12폭 병풍 그림을 그렸을 아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원숙한 화가의 솜씨가 아니다.
정성을 다하여 완성한 그림인 듯했다.
당시 사대부 자제들은 서예를 공부하면서 사군자(四君子) 그리는 법도 배워서 동양화 필법을 익히기도 했다.

산수도의 구성은 위쪽에 산봉우리를 그린 다음,
산기슭 숲속에 안긴 마을, 중간쪽에 마을 앞으로 흐르는 시냇물,
아래쪽엔 들판이나 모래밭, 또는 강변을 그렸다. 3층 구도를 취하고,
세필 묘사로 그려낸 진경산수도(眞景山水圖)이다. 그림 솜씨가 빼어난 것은 아니다.
병든 아버지를 위로해 드리기 위해 그린 그림이란 데서 ‘효도 병풍’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 그림을 본지 두 달이 지나고도 ‘효도 병풍'에 대한 내력을 알고 싶어서 재차 밀양박물관을 찾아 갔다.
그림을 그린 이경홍의 부친 이광진은 학문과 효행으로 이름이 높은 학자였다.
승정원 승지의 벼슬에서 물러나, 당시 향리인 밀양에 내려와 있었다.
그는 밀양의 절경처를 두루 산책하는 것을 일과로 삼고 있었다.
자연 속에서 유유자적의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이광진이 병을 얻어 바깥출입이 자유롭지 않게 되자,
효성이 지극한 장남 경홍이 날마다 아버지를 업고서 밀양의 12경을 구경시켜 드렸다.
몇 년간 아버지를 업고 지극 정성으로  절경지를 찾아다녔다.
아들은 절경의 모습과 자연의 기운을 받아 아버지의 병세가 호전되길 기원했다.

아들의 뜻과는 달리 아버지의 병세는 점점 심해져서 자리에 눕고 말았다.
아들 경홍은 밀양 12경을 직접 보여드릴 수 없게 되자, 손수 ‘밀양12경도’를 그렸다.
아버지가 누워서라도 그림을 보고 기운이 회복되길 빌었다.
‘밀양12경도’는 한 폭마다 색 다른 절경을 그렸고,  경치에 따른 한 수의 시(詩)가 짝을 이루고 있다.
아버지를 위해 아들이 그림을 그린 지 300년 후에 이광진의 12대손 이용구(李龍九)가 시를 지었다.

춘풍일야족생애 (春風一夜足生涯) 하룻밤 봄바람에도 생애가 자족하여
우세산안벽파하 (雨洗山顔碧破霞) 비에 씻긴 푸른 산은 안개를 걷어낸다
금마귀래증기일 (金馬歸來曾幾日) 금마문에서 돌아온 지 언제 이온데
연연유발두견화 (年年留發杜鵑花) 해마다 고운 진달래 잊지 않고 피우네

그림을 그린 경홍은 선조 24년(1596) 효행에 천거되어 참봉에 제수되었으며,
임진왜란 당시 밀양 석동산에서 의병을 일으킨 의병장이다.
시를 지은 만성(晩性) 이용구(李龍九 1819~1868)는 금시당 이광진의 12대손으로 조선 후기 학자이다.

‘효도병풍’을 보고 내가 감동과 함께 회한으로 눈물을 흘린 까닭은 17세에 아버지를 여의고,
단 한 번의 효행도 해본 적 없는 불효자여서, 천추의 한으로 남아서였다.
하늘이 왜 한 번이라도 기회를 주지 않았을까? 슬프고 원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병든 아버지를 업고서 매일 산수 구경을 시켜드린 아들과 등에 업힌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려 본다.
자리보전으로 움직일 수 없게 되자, 그림을 그려서 보여드린 아들을 생각하면 어찌 눈물겹지 않겠는가.

내 가친(家親)께서 병을 얻어 방에 누운 것은 고교 1학년 무렵이었다.
2학년이 될 즈음까지 약 1년간이었다. 한 번이라도 아버지를 업고
즐겨 산책하시던 촉석루를 구경시켜 드렸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 가슴 한 쪽이 시려온다.  

밀양12경도가 당시 밀양의 진경산수를 그린 점에서 문화재적 가치를 평가받고 있다.
나에겐 현대에 찾을 수 없는 아름다운 효(孝)의 행실도를 보는 것 같아 더 벅찬 감격을 안겨 준다.

‘밀양12경도’ 속엔 아름다운 경치뿐만 아니라,
부자(父子) 간의 따뜻한 체온과 눈물어린 사랑의 이야기가
몇 백 년이 지나도록 퇴색되지 않고 생생하게 전해와 가슴을 적셔준다.

밀양에 와서 그림으로 남아 있는 효도를 본다. 시가 되고 노래가 된 효도를 오래도록 느껴본다.
효도란 단순히 은혜 갚음만이 아닐 듯싶다.
세월이 흐른다고 낡고 진부해질 수 없는, 늘 새롭게 흘러야 할 마음의 강물이라 아닐까.
아버님께 한 번의 효도는커녕 걱정만 끼쳤던 내 모습이 아련히 떠올라 눈물을 참고 12폭 병풍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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