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성을 위한 ━━/기독교자료

사두개인들과 바리새인들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Joyfule 2019. 12. 18. 00:45



 


      사두개인들과 바리새인들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인물 연구 모델을 통한 역사적 바리새인 이해


Eleazar
바리새인으로 간주될 수 있는 첫 번째 개인은 어떤 엘레자르다. 요세푸스에 의해서 자세히 제시되고 있듯이([유대인 고대사] 13.288-98), 엘레자르는 요한 히르카누스(135/4-104 B.C.E)와 바리새인간의 단절에 관한 유명한 이야기에서 핵심 인물이다. 바리새인 동료들을 위하여 하르카누스가 베푼 축제 동안에, 그들은 그를 비난할 것을 전혀 찾지 못했다. 오직 엘레자르만이 그가 대제사장직을 사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르카누스는 분노하여 바리새인들로 하여금 그러한 오만에 대한 죄과를 결정하도록 요청한다. 바리새인들은 엘레자르를 매질할 것을 제안하지만, 하르카누스는 그렇게 가벼운 형벌은 자신의 위엄에 대한 모욕이라고 간주한다. 그래서 그는 바리새인들과 단절하고서 사두개인들과 동맹한다. 전체 이야기는 매우 전설적이어서 역사적 자료로써 신뢰성이 없다. 엘레자르는 바리새인과 관련되어 언급되지만, 한 바리새인으로 확인되지는 않는다. 만일 그가 바리새인이었다면, 그는 바리새인으로 정확하게 언급될 것인데, 왜냐하면 대제사장에 대한 그의 경시는 이례적이었기 때문이다.


폴리온(Pollion)
우리의 관심을 끄는 두 번째 인물은 헤롯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요세푸스는 그를 "바리새인 폴리온"이라고 부른다. 그와 그의 제자 "샴마이아스"(Samaias)는 헤롯이 평민으로 있을 동안에 지지한 대가로 헤롯에 의해서 영예를 받았다([고대사] 15.3-4). 요세푸스가 폴리온과 샴마이아스를 같이 언급할 때, 두 번씩이나 폴리온만을 바리새인이라 부른다. 우리는 이 구분을 심도있게 다루어야 한다. 하르카누스와 샴마이아스가 바리새인의 제자로 불리는 것은 그들을 바리새인으로 간주하지는 않는다.
요세푸스에 따르면, 바리새인 폴리온은 헤롯을 지지한 중요한 인물이다. 이것 때문에 그와 그의 제자들은 왕에 대한 서약으로부터 면제될 수 있었다([고대사] 15.370):
sune,peiqe de. kai. tou.j peri. Polli,wn to.n Farisai/on kai. Samai,an kai. tw/n evkei,noij sundiatribo,ntwn tou.j plei,stouj ovmnu,ein((((
폴리온은 바리새인의 권위있는 대표자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고대사] 14.172-76에 따르면, 그의 제자 샴아미아스는 헤롯의 지지를 받는 산헤드린의 일원이었다. 헤롯과 관련하여 그 두사람의 역할들은 요세푸스에 의해 혼동되어 있다.

사독(Saddok)
사독은 갈릴리 사람 유다(Judas the Galilean)와 함께 퀴리누스(Quirinus)의 호구조사 때(c. 6 C.E.) 소위 제 4 철학파를 세웠다. 요세푸스는 사독에 관한 다른 말을 하지는 않지만, "유다와 사독이 고무시킨 열심은 우리의 폐허의 원인이었다"([고대사] 18.10)고 비난한다. 요세푸스는 일관성없이 처음으로 제 4 철학파가 다른 유대인 집단과는 공통점이 없다고 진술한다([전쟁사] 2.118). 오히려 후에 그는 "그들의 다른 모든 것이 바리새인들의 견해와 일치했지만, 그들이 자유를 향한 열망만은 예외였다"([고대사] 18.23)고 주장한다. 사독은 그 집단의 대표자가 아닌 다른 바리새인이었다.


시몬(Simon)
누가복음 7
니고데모(Nicodemos)
복음서에서 바리새인으로 불리는 다른 인물은 니고데모다. 그는 처음엔 밤에 예수와 대화하고(요 3:1

가말리엘(Gamaliel)
가말리엘은 두 구절에서 현저하게 다루어진다(행 5:34
사도행전에서 가말리엘은 바리새인으로, 그리고 산헤드린 의원으로 소개되며, 또한 모든 사람들에 의해서 율법 교사로 인정을 받고 있다. 비록 산헤드린에서 가말리엘의 연설이 후대의 작문이라고 평가되지만, 사도행전의 저자는 예수의 제자들과 바리새인간의 긍정적 관계를 강조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바울(Paul)
사도행전 22빌 3:5
바울은 율법에 대한 특별한 관점이나 태도를 바리새인에게 분명히 돌린다. 자신의 과거를 언급하는 갈라다아서 1장 14절을 근거로 말하자면 다메섹 경험 이전의 바울은 진정한 바리새인이었을 것이다. 이 구절에서 바울은 바리새적 유대주의를 이해함에 있어서 토라와 조상들의 유전을 강조하고 있을 뿐이지 다메섹 체험 이전의 삶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말하고 있지 않다.
사도행전은 바울의 바리새인과의 관계에 대한 많은 자료를 담고 있지만, 저자 자신의 관심을 반영한 것들이다. 저자는 토라 준수와 열심을 바울의 바리새주의의 핵심적 요소들로 강조한다(22:3). 사도행전 23
예루살렘 회의에서 사도행전의 저자는 "바리새 학파에 속했던 일부 신자들"을 언급하는데(행 15:5

요세푸스(Josephus)
요세푸스는 그 자신을 바리새인으로 말하지만, 바리새인과의 관계예 대한 그의 입장을 볼 때 다소 의심적이다. 게다가 마슨은 요세푸스가 자신을 바리새인이라고 말하지 않았고, 단지 자신의 공적 삶의 진보에 필요한 경우에는 바리새적인 정치적 프로그램을 따랐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요세푸스가 바리새인과 스토아학파를 비교한 것은 이상하다.


시몬 벤 가말리엘(Simon ben Gamaliel)
요세푸스가 자신을 체포하려는 사람을 긍정적으로 평가([생애] 191-92)한 이유는 불확실하다. 마슨은 요세푸스는 내키지 않는 마음으로 반대자의 유명한 특징을 인정하는 것으로 간주한 반면에, 코헨은 화해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어느 경우든간에, 시몬이 저명한 인물임을 분명하다. 그가 기스칼라의 요한(John of Gischala), 즉 갈릴리 출신의 저항 지도자와 오랫 동안 가까이 지낸 것은 주목할 가치가 있다.
시몬은 예루살렘과 깊은 관련이 있고 사두개인 대제사장 안나누스(Ananus)에게 영향력을 행사했고, 요세푸스를 제거하기 위한 사절단-바리새인과 관련된 평신도인 요나단와 안나니아스, 그리고 제사장 가문에 속한 요자르, 그리고 대제사장 후손인 시몬-을 보내기도 했다. 이로 보자면, 바리새인들이 사두개인이나 다른 집단들과 조직적으로 반대한 것은 아니다.


역사적 바리새인과 관련 집단들


바리새인과 토라

일부 학자들은 집단의 원리적 특성인 토라에 대한 랍비적 개념을 지적했다. 리프킨은 바리새인들이 모든 텍스트에서 이중적 율법―구전 율법과 기록된 율법―의 옹호자라고 진술한다. 그는 바리새인들이 이중적 율법의 우위성에 헌신한 학자 계층(scholar-class)이었다고 생각한다. 핑켈(Finkel)은 바리새적 교사의 주요 임무는 이전 세대들에 의해서 전수된 어떤 논박을 전수하는 것이었다고 주장한다. 블랙(Black)은 기독교의 성서의 진술에 자신의 논증을 기초하면서 바리새인의 근본적으로 형식적인 특성과 장로들의 전통에 대한 그들의 존중에 초점을 두었다. 만수르(Mansoor)는 바리새인을 그들의 형식적 차원에 대한 진화적이고 비-문자적인 접근을 따르는 것으로 그리고 그리고 구전 율법이 기록된 율법과 동일 효과가 있는 것으로 믿는 것으로 기록한다(Baron; Bowker; Guttman; Le Moyne; Zeitlin). 학자들은 공통적으로 요세푸스의 바리새인에 대한 묘사가 그들이 구전 전승을 가졌다는 생각을 지지한다고 주장한다(Rivkin; Finkel; Zeitlin). 요세푸스는 바리새인들이 그들 자신의 전승을 가졌다고 진술하지만, 그는 이것들이 구전적으로 형성되었거나 전수되었다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노이스너는 랍비적 전승의 구전 전수에 대한 가장 초기의 주장이 바 코흐바 전쟁 뒤에 있었다고 증거했다.


바리새인과 정결법

일부 학자들은 정결에 대한 바리새인의 관심이 그 집단의 중심적 특징이라고 주장했다(Meyer; Le Moyne). 노이스너는 "식탁 교제"를 특별히 언급하면서 바리새인 중에서 정결의 역할을 강조한다. 그는 바리새인에 관한 랍비적 전승의 67%가 식탁 교제와 관계된다고 특별히 언급한다. 그는 힐렐파와 샴마이파의 많은 규정들이 음식과 직접적으로 혹은 간접적으로 관련된다는 것을 제시했다. 그러나 노이스너는 식탁 교제가 특별한 제전이나 특별한 의식을 요구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것이 "매일의 일상 생활에 적용되고, 또한 모든 비-의식적 식탁 교제가 발생하는 동일한 경우에 개인 가정에서 준수되었다.... 이것은 실제의 정결-규율과 음식 규제를 더욱 중요하게 만들었는데, 왜냐하면 그것들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세계에서 바리새인들을 사람들과 분리시켜 주기 때문이다"고 주장한다.


바리새인과 블랙은 매우 일반적인 견해, 즉 바리새인들의 주요 관심이 불결, 특히 땅의 불결한 사람들로부터 분리였다고 표현한다. 바리새인과 #rah ~[간의 관계는 모호한데, 왜냐하면 후자 집단의 정체가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핑켈은 #rah ~[이 바리새인을 존중하는 시골 사람들이었지만, 그들이 바리새인들은 도시에 살았기에 분리하였다고 주장한다. 게다가, 바리새인들은 그들의 가정 혹은 그들의 생산물에 대해 지시된 엄격한 규범(code)을 준수할 수도 없었다. 불행하게도 핑켈의 사회학적 구별을 지지하는 증거는 없다. 마이어는 #rah ~[이 제사장의 정결 규례를 추종하지 않은 비-제사장적 다수파(non-priestly majority)였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서술을 지지하는 증거도 없다.


옾펜하이머(Oppenheimer)의 #rah ~[에 대한 최근 연구는 세 가지 약점을 가지고 있다. 첫째, 그는 현대의 비-이스라엘 학계를 실제로 무시한다. 그가 언급하는 많은 비-이스라엘 저자들은 지난 세기의 독일-유대인 저자들이다. 종종 사람들은 그 저자들의 논제들과 문제들 중에 많은 것들이 시대엥 뒤진 학계의 결과들이라는 인상을 가진다. 둘째, 옾펜하이머는 텍스트의 문자적 의미를 맹목적으로 수용하는 것과 자료 비평과 문헌비평에서 사소한 시도 사이를 오고간다. 이러한 동요는 동등하지 않은 가치의 논증을 하게 만든다. 셋째, 그는 후기 랍비의 수집들이 초기에 관한 앞선 수집들과 동일한 가치의 증거를 포함하고 있지 않았다는 가능성을 무시한 듯하다.


이러한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옾펜하이머는 몇 가지 흥미로운 관찰을 제시한다. 그는 #rah ~[이 계명들을 준수하길 갈망했지만, 그들이 그 준수에 철저히 그리고 전적으로 헌신하지 않았다고 제안한다. 여기서 옾펜하이머는 예레미야스와는 다른데, 왜냐하면 예레미야스는 #rah ~[에게서 정확한 율법 준수를 기대할 수 없는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들로 #rah ~[을 말하기 때문이다. 옾펜하이머는 율법의 문제에 관한 #rah ~[과 연구 문제에 관한 #rah ~[간을 구분지었다. 바리새인과 상반된 집단이 바로 율법의 문제에 관한 "#rah ~["이었다. 게다가, 그는 대다수의 #rah ~[이 아마도 대중에 속했을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그들 중에 일부는 부자였을 것이고 귀족 계층의 일원들이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는 정결과 십일조 문제가 바리새인과 #rah ~[을 구분한 주요한 문제였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분리는 절대적이지 않다. 옾펜하이머는 바리새인과 #rah ~[이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다고 주장하는데, 이 관계는 특정 영역에서 #rah ~[와 접촉을 자제할 때 바리새인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약화되지 않고 지속되었다. 이 진술은 노이스너의 진술, 즉 일반적인 경건으로부터 바리새인의 분리가 거의 분명하게 오랫동안 그리고 점진적 과정에 있었다..... 왜냐하면 신앙 생활의 생부 사항에 대한 새롭고, 정확한 율법이 즉시로 고안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는 말과 연결되어 이해되어야 한다.


바리새인과 tworWbx'tworWbh'(비밀 모임, 성직자 수도단)의 문제는 바리새인과 #rah ~[의 문제와 관련된다. ~yribex'(동료들)이 그들의 분리를 정결과 십일조에 근거했다고 일반적으로 주장된다(Westerholm; Meyer; Neusner; Oppenheimer). 반면에 리프킨은, 비록 ~yribex이 바리새인과 "매우 친밀한" 상태였을 지라도, 그들은 동일하지 않다고 주장하는데, 왜냐하면 바리새인은 영적인 사회적 운동을 구성해지만, 반면에 ~yribex은 폐쇄된 모임을 속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노이스너는 비록 ~yribex이 바리새인이었을 지라도, 모든 바리새인이 ~yribex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옾펜하이머와 노이스너는 ~yribex이 자신들을 전적으로 바리새인 사회와 분리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노이스너는 옾펜하이머가 말하는 것보다는 더 공식적인 분리를 선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