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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황금비율

Joyfule 2013. 8. 16. 09:45

 

 

사진과 황금비율 (조선일보)|

 

 

'화면의 3분의1 지점에 인물 배치하라'
황금 분할 盲信 가르치는 사진 교재들
언제 어디서나 아름다운 비율 있을까

다빈치 작품은 내용이 아름다운 것
사진판의 부족한 언어가 視野 가려
美의 기준, 스스로 보고 판단해야

 


	채승우 멀티미디어영상부 차장
채승우 멀티미디어영상부 차장
사진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만큼 사진 교재도 많아졌다. 저마다 자신의 지식을 담아 책을 낸다. 교재들을 넘기다 보면 화면의 구성에 대해서 이런 표현을 자주 볼 수 있다. '인물을 사진에 담을 때 인물의 위치를 화면의 대략 3분의 1 지점에 놓으면 사진이 보기 좋습니다.' 이 설명에서의 비율은 3대5 또는 5대8로 달라지기도 하지만 대부분 황금분할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진다. 결론은 화면을 황금비율로 분할하면 사진이 절대적으로 아름다워진다는 것이다.

나는 이 황금분할이 영 맘에 들지 않는다. 정확히는, 황금분할을 사진 교육에서 언급하는 것이 맘에 안 든다. 인물을 사진의 3분의 1 지점에 놓으면 '손쉽게' 좋은 화면 구성을 만들기는 한다. 하지만 왜 반드시 3분의 1일까? 이유를 설명할 수 없으니 황금분할이라는 오래된 신화를 끌어오는 것이다.

이참에 황금비율이라는 용어가 얼마나 잘못 쓰이는지 얘기해봐야겠다. 황금비율을 피타고라스가 만들었다는 것도 잘못된 상식이다. 기원전 500년 피타고라스 학파는 '만물은 수로 이루어졌다'고 말할 만큼 수에 의미를 부여했다. 특히 오각형을 숭배했는데, 오각형에는 황금비라고 할 만한 것이 숨어 있다. 피타고라스 학파는 그 비가 무리수인 것까지는 알았으나 특별하게 의미를 두진 않았다. 그 비를 정의하고 계산한 것은 그보다 200년쯤 후의 유클리드이다.

이 시대에는 그 비율이 예술에 적용되어야 한다는 생각 같은 것은 없었다. 그럼에도 기원전 400년쯤 유클리드가 계산을 하기도 전에 만들어진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이 황금비율을 가진 대표적인 예술품으로 꼽히곤 한다. 많은 황금비 추종자가 신전의 치수를 계산해 황금비율을 찾아냈지만, 제시한 신전의 치수가 저마다 달랐다. 이는 여러 가지 측량 수치 중 정답에 필요한 것을 선택했거나 조작했다는 뜻이다. 이집트의 피라미드에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그림까지 뭔가를 직접 재어 황금비율을 찾아낸 시도들에는 모두 이런 부정확함이 숨어있다.


	[채승우의 첩첩사진] 사진과 황금비율 일러스트
일러스트=박상훈 기자
이 비율이 예술과 관련되는 것은 르네상스 시대에 와서이다. 원근법을 구현하기 위해 수학을 사용한 화가 겸 수학자들이 등장한 시대이다. 또 한 명, 수학자이자 화가이자 신학자인 파치올리는 '신성한 수'라는 책을 쓴다. 여기서 그는 순전히 신학적인 이유로 유클리드가 정의한 그 비율이 신성한 수라고 주장한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파치올리와 각별한 친분이 있었다. 다빈치의 그림에서 황금비율이 나타날 만도 하지만 사실은 다르다. 다빈치가 비례에 관심을 가졌음을 보여주는 유명한 인체 비율 그림이 있다. 성인 남성이 팔다리를 좌우로 펼치고 있는 모습 위에 정사각형과 원이 그려져 있는 그림이다. 종종 이 그림은 황금비율의 예로 쓰이기도 한다. 이 그림의 제목은 '비트루비우스적 인간'인데, 비트루비우스는 회화의 구조와 비를 다룰 때 황금비율이 아닌 단순한 정수비를 따라야 한다고 주장한 수학자이다.

드디어 19세기 초 황금비율이라는 명칭이 등장하고, 20세기로 넘어오면서 황금비 신비주의는 절정에 달했다. 클로드 드뷔시, 조르주 브라크, 르코르뷔지에 등 여러 예술가가 황금비율을 숭배했다. 사람들은 황금비율이야말로 언제나 어디에서나 통하는 미의 기준이라고 외쳤다. 마르셀 뒤샹을 포함한 몇몇은 1912년 파리에서 '황금분할'이라는 제목의 전시를 열기도 했다. 그리고 유행은 저물어갔다.

학자들은 실험을 하기도 했다. 그 실험 중에는 당연히 여러 가지 사각형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가장 보기 좋은 비율의 사각형을 골라보라는 실험도 있었다. 사람들이 선택한 것은 황금 사각형만이 아니었다. 이 실험의 결과는 황금비율이 언제 어느 장소에서나 아름다워 보인다는 명제를 만족시키지 못했다.

물론 역사상 많은 사람이 황금비율 사용에 미숙했다고 해서, 현대의 사진가가 황금비율을 숭배하지 말란 법은 없다. 그럼에도 황금분할을 말하는 것이 엉터리라는 이유는 그 대다수가 정확한 황금비의 값을 모른다는 점 때문이다. 그것이 정말 황금의 규칙이라면, 정말 절대적인 미의 기준이라면 어찌 '대략' 3분의 1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황금비 '1.6180339887…'은 수학과 과학에서는 정말 신비한 숫자이다. 자연과 천체의 질서를 설명하는 숫자다. 하지만 그 숫자를 미적감각에까지 적용하려는 시도는 잘못인 듯하다. 다빈치의 그림은 황금비에 따라 그려졌기 때문이 아니라 그의 그림과 내용 자체가 아름답기 때문에 감동을 준다.

왜 사진에는 황금비율이라는 말이 아직껏 사용되고 있을까? 나는 우리 사진판에 사진을 말하는 언어가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부족한 언어는 시야를 가린다. 황금분할을 절대적인 기준으로 받아들인다면, 우리가 볼 수 없는 사진이 너무 많다. 3분의 1 규칙에 얽매인다면 더 좋은 구성을 만들기 어려워진다. 스스로 보고 판단해야 한다.

'이 사진은 정말 아름다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