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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마에게 준 노벨 평화상

Joyfule 2006. 5. 29. 00:44

동료 유대인 살육했던 극우 테러리스트 메나헴 베긴… 루스벨트·키신저도 ‘전쟁상’감

필자가 한국에서 매우 안타깝게 느낀 것 중 하나는 한국인들의 노벨상에 대한 아주 특별한 ‘애착’이었다. 노벨상 콤플렉스…. 물론 이것은 제도권 교육과 언론들이 주입시킨 결과다. 그러나 다이너마이트를 팔아 번 돈으로 만든, 불투명하고 주관성이 강한 심사 과정을 통해 주어지는 그 상이 과연 그렇게 귀중할까 물리학과 같은 분야의 노벨상 심사는 전문성을 어느 정도 인정할 수 있다 하자. 그렇다면 평화상을 주는 기준은 무엇인가

서북청년단 방불케 한 ‘베타르’


사진/ 이스라엘 베긴(오른쪽) 전 총리에게 노벨 평화상 수상의 계기가 됐던 1978년 이집트와의 평화조약체결. (GAMMA)


물론 수상자들 중에서 테레사 수녀나 버마의 아웅산 수치처럼 자선사업·민주화에 실제적 기여를 한 사람도 있다. 그러나 수상자 명단을 훑어보면 평화상이 아닌 전쟁상을 받았어야 할 자들의 이름이 수두룩하다. 예컨대 러일전쟁 이후의 평화협상을 주관한 공로로 1906년의 노벨 평화상을 얻은 미국의 시어도어 루스벨트(Theodore Roosevelt·1858~1919) 대통령을 보자. 1898년의 쿠바 침략에 앞장서고, 1904년에 중남미 국가가 ‘정치를 그릇되게 할 경우에’ 미국이 ‘간섭’(침략)해야 한다는 새로운 ‘독트린’을 반포하고, 한국의 독립을 도와달라는 호소에 “그 무력한 나라를 우리가 도와줄 의미가 있느냐”라고 했던 철저한 인종주의자·침략주의자 루스벨트. 평화상을 준 사람들은 과연 세계를 어떻게 보고 있었는가

또 칠레에서의 피노체트 쿠데타를 지휘한 미국의 헨리 키신저(Henry A. Kissinger)에게 베트남 평화조약의 협상 공로로 1973년의 평화상을 준 것은 평화에 대한 조롱 아니면 무엇인가. 이들의 경우보다 사람들을 훨씬 더 놀라게 한 것은 1978년의 이스라엘 국무총리 메나헴 베긴(Menachem Begin·1913~92)의 평화상 수상이었다. 팔레스타인 난민과 가자·서안 지구 점령의 문제도 해결하지 못한 채, 이집트와 평화조약을 체결했다는 수상의 명분도 의심스러웠지만, 무엇보다 베긴의 과거는 의문을 일으켰다. 1940년대의 베긴은 팔레스타인의 가장 악명이 높았던, 수천명의 아랍인과 영국인, 그리고 동료 유대인들을 살육한 유대인 극우 테러리스트였기 때문이다.

백러시아에서 태어나 폴란드의 바르샤바대학교에서 법학부를 졸업한 베긴은 학창시절부터 ‘정치학생’이자 ‘열변가’로 이름나 있었다. 그가 입단한 정치단체는 이른바 ‘베타르’ 청년단이었는데, 그 단체의 신념은 ‘수정주의적 시온주의’였다. 그들의 표현으로 ‘사회주의자들에 둘러싸인’ 시온주의 운동으로부터 일체 ‘좌파’들을 추방하고, 팔레스타인에서 아랍인들을 추방하여 ‘유대인 국가의 기반인 대다수의 유대인 인구’를 이민을 통해 보장하자는 이야기였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수정주의자’들에게 타도의 타깃으로 지목된 ‘좌파’들은 공산주의자나 좌파적 사회주의자도 아닌, 시온주의라는 민족주의적 신념의 일정 부분을 조건부로 받아들인 개량주의적·민주주의적 부르주아 성향의 중도·우파 사회주의자들이었다는 사실이다. ‘얼빠진 온건주의자’들을 타도하기 위해 조직된 ‘베타르’ 청년단은, 늘 군복을 입고 정렬된 대열로 행진하고 정규적인 군사훈련을 받는, 당시의 독일 파시스트나 1945년 이후 남한의 서북청년단을 방불케 했던 반(半)군사 조직이었다. 영국의 위탁통치를 받고 있던 1930년대 팔레스타인에서는, ‘베타르’가 부단히 아랍인들을 공격하는 한편 1933년 노동운동가 아를라조로브(Arlozorov) 박사를 백주에 암살하는 등 동류 유대인에 대한 유혈도 서슴지 않았다. 젊은 시절의 베긴은 그 극우단체의 폴란드 지부장을 맡아(1939년) 본격적인 폭력 수업을 받았다.

다윗왕 호텔 폭파사건을 아십니까


사진/ 1946년 7월 22일. 베긴의 주도로 폭파된 예루살렘 다윗왕 호텔. 희생자 91명 중 17명이 유대인이었다. (20세기 세계와 한국)


폴란드 동부를 1939년에 점령한 소련군에 의해 체포돼 ‘반공활동’ 혐의로 시베리아 수용소로 보내진 베긴은, 1941년부터 대(對)독 전쟁에서 소련 동맹국이 된 폴란드의 시민권 소유자라는 이유로 석방되어 1942년 팔레스타인에 도착했다. 거기에서 베긴은 ‘베타르’의 옛 동지로 구성된 ‘이르군’(Irgun)이라는 유대인 극우 무장단체에 가입하여 적극적 테러활동에 착수했다. 활동의 목표는 테러리즘을 통해 아랍 주민들을 추방해 ‘유대인만을 위한 팔레스타인’을 만드는 것이었다.

이미 1943년부터 팔레스타인을 위탁 통치한 영국 행정기관에 대한 습격과 영국인 암살 등의 테러활동을 전개한 베긴은, 영국이 유대인의 학살을 감행한 파시스트 독일과 전쟁 중이었다는 사실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르군’보다 더 과격한 극우 단체 ‘레히’(Lehi) 같은 경우에는 아예 히틀러에게 밀사를 보내 “파시즘과 시온주의의 인종주의 원칙이 서로 같은 데 반하여 영국식의 자유주의가 우리의 공동의 적이니 전후에 팔레스타인을 유대인에게 할양할 조건으로 대(對)영 공동 전선을 만들자”고 제안할 정도였다. 히틀러는 유대인을 학살한 ‘민족의 적’이었지만, 히틀러의 이념과 전체주의 국가의 구조가 유대인 극우주의자들에게 너무나 매력적이었던 것이다.

영국인을 상대로 감행한 베긴 휘하 ‘이르군’의 최악 테러는 1946년 7월22일 예루살렘의 영국군 본부인 ‘다윗왕’(The King David) 호텔 폭파였다. 명령은 유대인의 주류 무장조직 ‘하가나’(현재 이스라엘 군대의 전신)가 내렸지만, 폭파·기획을 입안·실행한 것은 베긴과 그의 극우단체였다. 호텔 지하에 폭발물들을 잔뜩 쌓아놓은 ‘이르군’은 폭파에 대한 예고를 호텔 데스크에 전화로 보내긴 했지만, 예고한 지 20분 뒤에 폭발 굉음이 터져 호텔 직원과 투숙자들이 고통스러운 죽음을 맞이하게 됐다.


사진/ ‘노벨 평화상을 부끄럽게 한’베킨, 키신저, 루스벨트(왼쪽부터) (GAMMA,SYGMA)


희생자 91명 중 17명이 유대인이었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베긴을 영웅으로만 보는 이스라엘 우파는 인명피해에 대한 유감조차 제대로 표하지 않았다. 반대로 그 끔찍한 테러 사건은 ‘영국의 위탁통치를 끝내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나 ‘이스라엘 건국의 중요한 초석’으로 여겨지고 있다. 최근의 어느 팔레스타인 자살테러보다 더 많은 인명피해를 초래한 1946년의 범죄행위를 찬양하는 이스라엘의 우파가 과연 팔레스타인인들의 테러리즘을 비판할 자격이 있는가.

‘다윗왕’ 테러사건으로 ‘무자비한 살육자’의 오명을 썼음에도 ‘이르군’은 유럽의 영국 대사관과 영국인이 투숙하는 호텔 등에 폭탄을 투척하거나 폭탄물을 설치하는 등 국제적 테러활동을 전개했다. 그러나 베긴의 주요 희생자들은 영국인 등의 유럽인들보다는 ‘이르군’에 의해 추방 내지 살육된 팔레스타인의 아랍인들이었다. ‘유대인이 대다수인 팔레스타인’을 만들기 위해 ‘이르군’의 한 부대는 1948년 4월9일에 아랍인 마을 데이르 야신(Deir Yassin)을 무력으로 점령하여 대부분(약 200명)의 주민을 살육한 뒤 나머지를 추방했다. 만행의 의도는 아랍인 주민들에게 겁을 주어 ‘자의적으로’ 팔레스타인을 떠나게 하려는 것이었다. 지금도 풀리지 않는 300만명의 팔레스타인 난민문제에 베긴 휘하의 ‘이르군’ 살육자들이 이처럼 크게 ‘공헌’한 것이다.

유대인 로비단체들이 움직인 미국의 영향력에 의해 영국 세력이 물러나고 이스라엘이 건국되자(1948년) 베긴은 곧장 정치인으로 변모하여 극우 정당 ‘헤루트’(현재 집권당인 ‘리쿠드’의 전신)를 창당했다. 중도 좌파가 주도했던 이스라엘 초기의 정국에서는 베긴이 기를 펴지 못했지만, 1967년 6일 전쟁의 전승 이후 이스라엘이 미국의 동맹국이 되어 유대인 계통의 미국 대자본이 이스라엘에 상륙하자, 점차 극우들에게 유리한 분위기가 조성됐다.

만년에 악몽에 시달리다 거의 폐인돼

1977년에 드디어 집권한 베긴은 이집트와 평화조약을 체결하여 노벨상을 받은 다음 1982년 레바논 침략이라는 ‘숙원사업’에 착수했다. 약 2만명의 아랍인들을 희생시킨 침략이 전 세계적 비판을 받자 베긴은 1983년에 하야하고 정치에서 은퇴했다. 평화상까지 받은 베긴은 만년에 밤마다 악몽에 시달리다시피해 죽음을 앞두고 거의 폐인이 됐다고 한다. 수천명의 목숨을 앗아간 살인마는 이미 금세에 대가를 받기 시작한 셈이다.

필자가 이 글을 쓰는 목적은 황천에서 이미 희생자들의 원혼을 만나고 있는 베긴을 매도하기 위해서가 결코 아니다. 번쩍거린다고 다 금은 아니다. 우리는 더 이상 외국의 그 번쩍거리는 ‘권위’에 마음을 팔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코가 막혀 있지만 않는다면 서구의 각종 상에서 나는 썩고 피비린내 나는 냄새를 얼마든지 맡을 수 있다. 우리는 그들의 화려한 ‘권위’의 실체를 알고 나서 주체적인 참된 세계관을 세울 수 있을 것이다.

박노자 ㅣ 오슬로국립대 교수·<아웃사이더>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