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속 백미 - 白蓮 원화윤
2008년 12월 18일 이른 오전
속살을 들어낸 하늘은 물 속 거울 빛이다. 장지로 톡 건드리면 쨍 하고 비명을 지를 것 같은 날씨다. 눈이 시린 날씨에 좋아지는 기분에는 미소가 절로 핀다. 굴을 듬뿍 넣은 얼큰한 겉절이 통과 과일이 담긴 통과 헤이즐럿커피를 보온병 두 개에 가득 채웠다. 연신 전화가 울어댄다. 집결지로 향하는데 기다리는 도반들을 떠올리는 발걸음은 리듬이 실린다.
약 4시간 소요로 행선지 속초에 닿았다. 전날부터 의식하던 해조음이 보고 싶고 듣고 싶어 해변을 끼고 달렸다. 맞춤의 날씨인 듯 하늘빛도 바람결도 너무 예쁘다. 저 만치에 하늘과 밀어를 나누는 끝 간 데 없는 망망대해가 마음을 잡는다. 그 배경 속에 점점이 떠다니는 고깃배의 움직임은 더없이 평화롭다. 근거리에서 등대가 손짓한다.
출발할 때부터 목에 건 사진기를 잡고 단걸음에 뛰어갔다. 부드러운 파도가 넘실대는 바닷가에는 방파제가 야트막한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허기졌던 바다향기를 들숨날숨으로 양껏 들이마셨다. 도심의 공해에 띵하던 정신이 반짝하고 답답하던 가슴이 후련했다. 선망의 대상인 겨울 바다, 비파소리 같은 그 해조음은 목멤의 행복감이다.
내려다보며 올려다보며 서로 닮은 하늘빛과 바닷물 빛은 동색이다. 아침햇살이 간질이는 은빛 물살을 박차고 비상하는 갈매기 때의 날갯짓이 아름답다. 우아한 창공의 무희들 아래 서로 건너다보고 서 있는 성게빛깔 등대와 파도빛깔 등대의 모습은 마치 견우와 직녀의 아픔을 연상케 했다. 목에 걸린 사진기는 그리웠던 무대를 연신 담았다.
한 컷 한 컷 마음에 담은 바다만의 특권인 아름다운 산물을 다시 열어본다. 행선지에 다다를수록 해변을 따라 달리는 그 쾌감, 도심 속 공해를 잔재 없이 토할 수 있었던 소화제였다. 잠깐 목을 축인 송천약수는 사이다 맛이다. 양양에 위치한 오색약수 맛을 연상케 했다. 철분 합량이 다량인 약수가 흐르는 물골은 녹슨 쇳물 색깔이었다.
해발이 높은 진 고개는 돌고 돌수록 고소공포증에 머리가 어지럽고 귀가 먹먹했다. 아담한 몸매에 균형이 잘 잡인 굳세게 보이는 검푸른 적송들이 주로 가로수였다. 13:00경에 도착한 속초 대포 항의 식당가, 바닷물이 넘치는 크고 작은 용기마다 그득한 어류들은 활력이 넘친다. 참복 회와 복 지리 맛은 도심과는 값도 맛도 큰 차이가 났다.
늦은 점심식사 후, 느긋한 마음으로 수산물공판장을 둘러보았다. 종류도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어패류들의 활동성은 마치 바다 속을 연상케 했다. 오징어와 광어와 우럭을 횟감으로 준비하고, 새참꺼리로 큼직한 대게를 즉석에서 쪘다. 찜통 뚜껑을 여니 뽀얀 김 속에 묻힌 빨강빛깔 대게는 눈으로 먹는 맛이 더 맛있었다.
여장을 푼 대명 리조트, 객실에서 건너보이는 울산바위, 고운 노을에 갇힌 체구는 가히 천연보석이었다. 눈부신 원석 옆에 간 간 상고대까지 핀 풍모는 신비의 극치였다. 새참인 대게 맛은 쫀득쫀득한 맛이 혀에 착착 붙었다. 산그늘이 잠들 즈음, 잡곡찰밥에 수산물공판장에서 떠온 회와 얼큰하게 끓인 매운탕, 보석 암벽을 배경으로 먹는 저녁식사 맛은 색다른 별미였다.
늦은 새벽, 노천탕에서의 반신욕, 온 몸을 감싸는 싸늘한 공기는 천혜의 보약이었다. 검푸른 양수를 뚫고 서서히 솟으며 어둠을 삼키는 아침 해의 그 장엄함은 전율적인 희열감이었다. 노천탕에서 나와 양팔을 벌리고 온 몸으로 맞이하는 여명은 하루를 다 안은 감사함이다. 존재를 의식하는 순간이 그토록 값진 행복감인 줄 미처 몰랐었다.
고운 노을에 감사한 마음, 안식을 취하던 숙소를 빠져나와 기대에 찬 새 빛 속에 정중한 선비의 자태 같은 소나무행렬을 받으며 하행 길에 들어섰다. 하행 길에 잠깐 씩 머문 명소, 화암사에 이어 청간정에 들렸다. 청간정 입구 오른 쪽에 아름드리나무 중간에는 영역다툼으로 몸싸움이 바쁜 생소한 청설모 모습에 잠시 마음을 빼앗겼었다.
청간정을 올라가는 계단 왼쪽에 서 있는 고, 최규하 전 대통령의 기념식수라는 오향나무가 건장한 모습으로 정자를 지키고 있었다. 옆 계단을 따라 올라가니 동해바다가 한 눈에 드는 정자가 맞아준다. 이층 정자 천정에는 고, 이승만 전 대통령의 친필 ‘청간정 우남’이란 휘호(1953년)와 고, 최규하 전 대통령의 방문 답사기의 친필 현판이 걸려있었다. 그 산물들을 살피는 순간 화면에서 뵙던 생전의 모습을 추억케 했다.
마지막 코스로 ‘금강산 건봉사’에 들렸다. 고찰인 경내에는 빈 집터가 눈길을 잡았다. 마치 다랑이 논 같은 집터는 정사각형인 반듯한 돌들로 쌓여있다. 그렇듯 간결하게 쌓은 돌들은 약지손가락 굵기의 틈도 없이 견고했다. 그 시대에는 모든 건축자재의 다룸이 수작업이었을 텐데 어쩌면 저렇게 반듯하게 자를 수 있었을까. 그 무게를 어떻게 다뤘을까. 궁금했다.
바다빛깔과 하늘빛깔과 동색인 겨울 속 동해 바다, 청옥빛 허공을 수놓은 창공의 무희들, 아득한 망망대해를 하염없이 바라다보는 등대며, 그리움을 갈구하는 밀어 속 낙조며, 검푸른 양수를 뚫으며 칠흑어둠을 삼키는 장엄한 불덩이를 정신없이 담은 겨울 속 동해의 무대에서 48시간의 코스, 서예반 도반들과의 외유는 값진 견문을 넓힌 삶 속의 백미였다.
2008. 1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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