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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어느 하늘 아래 있을까? - 이현실

Joyfule 2012. 7. 16. 10:25

 

 

 

 서울! 어느 하늘 아래 있을까? - 이현실  

Sous Le Ciel De Paris... 캔디처럼 달콤한 샹송이 흐른다.

인터넷 카페의 운영자인 연두아씨께 특별히 신청한 <<파리의 하늘아래>> 이다. 까마득히 잊혀진 기억의 저쪽 시렁위에 올려둔 마음 하나, 왜 나는 새삼스레 을 듣고 싶어졌을까.

나는 그 사람을 ‘군인아저씨’라 불렀다. 월남전이 치열했던 1960년대 말쯤이었나, 학교별로 선발된 여고생들이 치렁한 한복을 입고 제 3 부두에서 열심히 태극기를 흔들고 있었다.

베트남 전 파병 용사들을 환송하는 행사에 여고생들이 동원되었던 것이다.. <잘 싸우고 무사히 돌아오시라>고. 나는 그때 단발머리가 귀밑에서 찰랑대던  여고 1학년 이었다.

항구 특유의 비릿한 해초 냄새가 질펀했던 부둣가. 거대한 함선위로 끼룩끼룩 공중을 선회하던 갈매기 떼들과 만조기가 해풍에 찢어질 듯 펄럭였다. 갑판의 난간에 새까맣게 붙어 서서 환송 나온 가족들을 향해 연신 눈물을 훔치던 군인들의 고함소리는 귀청이 찢어지도록 우렁찬 군가 속에 빈 하늘로 메아리칠 뿐이었다.

“자유 통일 위해서 조국을 지키시다 조국의 이름으로 님들은 뽑혔으니 그 이름 맹호부대 ······.”

<맹호부대>,<청룡부대>,<백마부대>의 마크가 새겨진 거대한 군함들이 마침내 뿌우웅 뱃고동 소리를 울리고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때 갑자기 툭! 하고 내 발 밑에 뭔가가 떨어졌다.

찢어진 종이 태극기에 급히 휘갈겨 쓴 부대 주소와 이름 석 자. 열일곱 살 이었던 나와 스물다섯 살 군인아저씨와의 펜팔이 시작되었다. 위문편지는 한 통, 두 통씩 수북하게 쌓여갔다.

어느 날은 느닷없이 규율부 선생님이 소지품 검사를 하는 바람에 항공 띠를 두른 아저씨의 편지는 때론 김치 국물 배인 빈 도시락에 황급히 숨겨 놓기도 했다. 왜 그랬을까. 아저씨의 편지에는 항상 짙은 우수가 배여 있었다.

자신은 6·25 때 가족을 잃은 고아라고 했다. 부산 영주동 시장 바닥에서 혼자 울고 있는 자신을 데려와 호적에 입적시키고 키워준 건 지금의 양부모님이라고 했다, 자신은 언제나 혼자라고 했다. 그의 가족은 자신에게 가장 가까우면서도 가장 먼 타인이라고 했다. 그래서 이름조차 외로운 <友一> 이라고 했던가.

유달리 감수성이 예민했던 그 무렵의 나는 막연하지만 어떤 신비한 분위기의 대상에 몰두해 있었던 것 같다. 괴테와 루 살로메와 릴케를 사랑하던 문학 소녀였던 나. 나는 그때 가히 천재 소리를 듣던 독일문학 번역 작가 전혜린의 마성에 빠져 있었다.

흑진주처럼 새까만, 겁먹은 듯한 커다란 그녀의 두 눈 속에서, 완전한 자유를 추구하는 광기로 번득이는 정신을 보았고 나는 그녀를 무작정 좋아했는지도 모른다. 아저씨의 불행했던 환경이 내게는 소녀적인 감상으로 멋있게만 보였던 것일까.

간간히 편지를 주고받는 이태 동안 아저씨는 어느덧 제대를 했다. 아저씨를 처음 만난 건 친척 언니와 함께 나갔던 서면의 <고려당 제과점>에서였다.

애궂은 하얀 손수건만 뱅뱅 말아쥐고 부끄러움에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던 내게 언니는 귓속까지 빨개졌다며 놀려대었다.. “애, 너무 잘 생겼어. 반곱슬머리에 후리후리하게 큰 키 이목구비가 너무 반듯해. 외국남자 같애. 근데 무슨 남자가 저렇게도 수줍음이 많으니?”

몇 달 뒤 모 잡지사의 기자로 취직을 했다던 아저씨께로는 간간히 편지가 왔다. 아저씨는 그림을 참 잘 그렸다. 새까만 목탄으로 쓱쓱 뎃상을 한 쥬리앙의 석고상 그림을 보내주기도 했고 자신의 자작시를 보내주기도 했다.

긴 생 머리카락이 어깨까지 치렁치렁한 대학 신입생이었던 어느 해 가을 저물녘이었다. 부산진 역전의 한 찻집에서 아저씨를 만났다.

“네가 여대생이라니 믿어지지가 않아” 아저씨의 눈 속에는 나는 언제나 단발머리 작은 소녀였는지도 모른다. 아저씨는 사랑하는 여자가 있었다고 했다. 아저씨 몰래 깨금발로 올려다보았던 내 분홍빛 마음 하나가 설핏 흔들렸다.

그 여인과는 자신을 키워준 양부모의 반대로 끝내는 헤어졌다고 했다. 아저씨는 끝내 자신의 정체성을 인정하지 못하고 극심한 소외감에 빠져 있었다. 그 외로움으로 인해 아저씨는 소주에 밥을 말아먹는 심한 알콜 중독자가 되어 있었다.

나의 팔을 와락 잡아끌며 "서울로 함께 떠나자”는 아저씨가 갑자기 무서워졌다. 나는 아저씨를 완강하게 뿌리쳤다. 그때 어깨 넘어 <역마차> 다방에서 흘러나오던 노래. <빠리의 지붕 밑>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죽어라고 도망을 쳤다.

Sous le ciel de Paris S"envole une chanson Hum Hum Elle est née d"aujourd"hui Dans le cœur d"un garçon Sous le ciel de Paris Marchent des amoureux Hum Hum Leur bonheur se construit Sur un air fait pour eux  

빠리의 하늘 밑에는, 사랑의 노래소리가 흩날리고 있어요. 오늘 그 노래 소리는 어느 소년의 마음 속에 싹텄답니다.······.

이제는 뒤척일 것도 보챌 것도 없는 삭아버린 세월의 저 쪽, 어느새 삼십 년이란 세월이 하얗게 머리를 빗고 있네요. 멀리 쓸쓸한 마음 하나가 손을 흔들고 있네요.

내 젊음의 세레나데. 음악에도 색깔이 있는 걸까요. .

완강히 뛰쳐나왔던 내 젊음의 분수(分水) 그 물줄기 하나 <서울의 지붕 밑>을 뒤돌아봅니다. 오랫동안 잠재우고 있었던 아슴한 기억 하나를 가벼이 떨쳐버릴 수 있을 만 큼 참 세월이 많이 흐른 것 같습니다.

<부디 평안하시라>는 마음 하나를 묶어 먼 하늘에 풍선을 날립니다.

▽ 수필가 이현실 프로필
- 現 예술시대 작가회 부회장. 釜山 出生.
- 2006년 서울문학 시등단      
- 2003년 한국예총 <예술세계> 수필등단
- 2005년 전국문화원 연합회 국민 창작시 공모 금상
(문화관광부 장관상 수상)
- 2005년 <빛난수필>공저외 다수 발표
- 계간 한국문학예술 징검다리 편집인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