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시장 가는 길 - 이정아
유학생이던 남편이 텍사스 주립대학에서 공부를 끝내고 첫 직장을 L.A.에 잡았을 무렵,
장만한 작은집에서 14년째 살고 있다.
남들은 좀더 큰집으로, 더 좋은 학군으로 이사하라고들 성화지만 정작 당사자인
우리들은 더 큰집도 좋은 학군의 필요성도 절실하지가 않다.
식구라고 해봐야 아이하나에 두 내외뿐인 우리에겐 지금 살고 있는 집도 과분할 뿐이다.
미국에서의 자기 집이라 해본들 정작은 은행소유의 집이며,
처음 살 때 집 값의 10-20%만 내고 나머지는 은행융자를 얻어 30년 정도 갚아나가야 하므로
한국식 개념으로 하면 월세집이나 다름없다.
그래서 남의 아파트에서 다달이 렌트를 내고 살건 자기 집을 할부금 부어가며 살거나 간에,
온전히 내 것 나의 집이라는 악착같은 소유욕은 한국에 비해 훨씬 떨어지는 것이 이곳의 일반적인 정서이다.
길거리에서 잠을 자는 이들을 집 없는 이들(HOMELESS)라고 부르는데
아마도 가정이 없는이들을 지칭하는 말로 한인사회에서는 점잖게 '무숙자'라고 불러준다.
속칭 홈레스들이 살고있는 거리는 이곳에서도 제일 번화한 다운타운이다.
직장인들이 모두 퇴근하여 비어버린 빌딩의 처마밑으로 그들은 모여드는 것이다.
이른 아침 그 길을 지나다 보면 빌딩벽을 의지 삼아 빈 종이상자로 바람막이를 치거나,
아예 긴 상자 속에 들어가 자는 이들, 휴대용 텐트로 방을 삼은 이들이 즐비하다.
깊은 잠에서 아직 깨지 않은 이도 있고 머리가 잔뜩 엉긴 채로 지나가는 차를 멀뚱히 쳐다보는 이도 있다.
출근하러 사람들이 모여드는 시간이면 그들은 자기의 집(?)을 걷고 급식소 주변을 서성일 것이다.
일년 내내 날씨가 온화한 이곳 L.A.는 무숙자들에겐 이상향이라고 불리운단다.
무숙자들 뿐 아니라 이곳에 오래 살고있는 이들도 사시사철 피고 지는 꽃들과
키가 큰 팜트리의 가로수가 어우러진 독특하고 아름다운 풍광을 사랑하고들 있다.
요즈음엔 그 의미가 많이 퇴락 했다고는 하나 천사의 도시(LOS ANGELES)가 아닌가.
아무튼 낡고 오래된 작은 우리 집엔 늘 손님이 끊이지 않아서 주말마다 분주하다.
변변치 못한 살림에 보여줄 것 없는 우리 집 에서는 으레 손님맞이 준비로 새벽에 꽃시장엘 가곤 한다.
적은 투자로 최대의 효과를 올릴 수 있는 것이 꽃 장식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친정어머니도 항아리에 안개꽃을 잔뜩 꽂아두거나 오지약탕기에 노란 소국을
탐스럽게 꽂아놓고 손님을 맞곤 하셨다.
더운 지방의 화려한 꽃을 싸고도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이곳에서는 목이 긴 유리병에
칼라꽃을 꽂거나 튤립으로 소담하게 식탁을 장식하거나 한다.
상쾌한 기분으로 새벽 꽃 시장을 향하며 오늘은 무슨 꽃을 만날까 기대하면서 즐겁게 시동을 켠다.
글렌데일길을 따라 내려오다가 터널을 지나 다운타운을 향해 가다보면
LOS ANGELES STREET 과 만나게 되는 그 시점 부터가 무숙자들의 집합장소이다.
그곳에는 한국목사님 한 분도 사역하고 계신데 아침마다 무숙자들 에게 급식을 하고 계신 '거리의 교회' 목사님이시다.
이곳을 지나 꽃시장으로 갈 때마다 지난 연말 교회청년들과 그 장소를 방문했던 기억이 난다.
아무리 온화한 날씨라 해도 새벽에는 추웠다.
모여든 무숙자들은 종이와 나무토막을 주워 모아 모닥불을 지펴놓고
때가 더케로 앉은 손들을 내밀어 군불을 쬐고있었다.
잠시 후 목사님이 밤새 돌아다니시며 모아온 도넛과 사모님이 준비하신 커피가 당도하니,
나누고 치우고 줄 세우는 당번까지 정해진 무숙자들이 일사불란하게 돕는 것을 보았다.
나는 그들의 눈빛과 태도에서 목사님 내외를 신뢰하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허기를 달랜 그들은 목사님이 내신 성경퀴즈를 맞추고는 양말이나 헌옷가지를 상품으로 타간다.
아주 기초적인 신앙상식 문제로 "구약의 첫 권은?" "신약의 4 복음서는?" 등인데
너무 잘 맞춰서 성경문제가 동이 나면 일반상식 문제도 내었다.
이를테면 "한국의 수도는?" 하면 "서울" 하고 의기양양하게 대답하고는 양말을 타가는 수준이었다.
엄숙하고 경건하지는 않으나 순수하고도 인간적인 모습들이었다.
목욕을 잘 안 하는 그들에겐 입던 옷을 버리고 목사님이 구해간 헌옷을 입는 것이 목욕이나 다름없는 효과를 낸다.
주로 한국인들에게서 수집한 옷들이기에 키가 큰 그들에겐 잘 맞지 않았으나 크기에 상관없이 걸쳐보며 즐거워했었다.
이민가방 안에 꽁꽁 싸여 비행기를 타고 온 우리의 옷이 홈레스들 에게 입혀지는 순간이었다.
이들이 홈레스가 된 데에는 게으른 탓에 그런 삶을 사는 사람도 있겠으나
목사님 말씀이나 신문의 통계를 보면 50% 이상이 이혼이나 별거 등의 결손가정에서 비롯된다 한다.
각양각색의 사연중 이혼후의 방황으로 마약을 찾고 직장 일도 소홀해져서 파면 당하고
그 후유증으로 인해 경제적으로도 파산되어 무숙자 그룹으로 흘러 들어온 사람이 상당수 있다는 것이었다.
못 배우고 부족한 이들이 아닌 고학력의 수준높은 이들도 여럿 있다고 들었다.
그러한 사연들을 가슴에 묻어둔 채 지금은 그저 도넛 하나라도 더 차지하려는 그들을 보며 한인간으로서 연민을 느끼었다.
그들이 몸담았던 행복했던 가정들은 어디로 가버렸는가? 그들과 함께 둘러서서 찬송을 부를 땐 눈물이 솟구쳤다.
그들이 잃어버린 가정과 가족들이 너무도 안타까웠기에.
아무 생각 없이 나왔다가도 그 길을 스치게되면 나도 모르게 그들이 생각나고
평범한 가정의 소중함이 새삼 깨우쳐지는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풍요롭다는 이 나라에 와서 살면서 우리는 그것을 충분히 누리고 있는지,
넉넉한 나라의 여유로움은 정작 누리지도 느끼지도 못한 채 그저 남과 비교만 하며
물질의 노예가 되고있지는 않은지 생각해본다.
쌓기만 하고 쌓은 것을 지키기 위해 가정을 소홀히 하지는 않았는지,
그래서 모르는 사이 가정이 점점 병들지나 않았는지 반성하게된다.
마라톤 경주를 하며 단거리 선수 마냥 달려온 셈이랄까.
홈레스들도 컨디션과 속력조절을 못해 중간에 처져버린 이들이 아닌지?
가정을 소홀히 한 채 일에 매달리는 것을 '성공한 삶'이라고 부추기고,
가정을 버리고 나온 부인들을 '진정한 용기를 가진 여성'이라고 부러워하는 요즈음 세태에
한 번쯤은 홈레스의 의미를 생각해 볼 만하다.
오늘 꽃시장에 가면 보랏빛 아이리스를 두 묶음 사고 노란 수선화로 환한 악센트를 주리라.
'━━ 감성을 위한 ━━ > 에세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모의 정 - 정영숙 (0) | 2012.07.17 |
---|---|
서울! 어느 하늘 아래 있을까? - 이현실 (0) | 2012.07.16 |
삶 속 백미 - 白蓮 원화윤 (0) | 2012.07.14 |
수필 읽으면서 느끼는 것 - 윤모촌 (0) | 2012.07.13 |
보름달 - 鄭 木 日 (0) | 2012.07.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