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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초대 CEO 이병철 회장 1.

Joyfule 2007. 4. 13. 10:34

 
삼성 초대 CEO 이병철 회장 

    이병철 
    삼성그룹의 창업자이다. 
    호는 호암(湖巖).
    1926년 서울중동중학교에 입학했으나 2년 뒤 중퇴했다. 
    1932년 일본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 
    전문부 정경과에 입학했다가 
    1934년 중퇴한 후 귀국했다. 
    1982년 미국 보스턴대학교에서 
    명예경영학박사학위를 받았다. 
1938년 대구를 중심으로 청과물·소맥분 등을 수송하는 
삼성상회를 설립하여 사업을 시작했다. 
그후 1948년 삼성물산공사를 설립했고, 1951년 삼성물산(주) 사장, 
1953년 제일제당(주) 사장, 1954년 제일모직(주) 사장 등을 지냈다. 
1961년 5·16군사정변 발발 당시 도쿄[東京]에 출장중이었던 그는 
부정축재자 제1호로 지명되었으나 곧 귀국하여 
국가재건최고회의의 박정희 의장과 담판을 지어 재벌의 재산몰수보다는 
재벌을 통한 국가경제 건설이 더 중요함을 역설했다. 
1961년 한국경제인협회(전국경제인연합회의 전신)를 수립하여 초대 회장에 취임, 
1962년까지 회장을 지냈다. 1961~87년 삼성물산(주) 회장, 
1964년 한국사회사업대학(지금의 대구대학교) 이사장, 
학교법인 성균관대학교 이사장, 1967년 전국경제인연합회 이사, 
1968년 중앙 매스컴(중앙일보·동양방송) 회장, 1971년 삼성공제회 이사장, 
1977~87년 재단법인 삼성미술문화재단 이사장, 1980~87년 (주)중앙일보사 회장, 
1982~87년 한일경제협회 고문 등을 지냈다.
치밀한 재정관리와 인사관리로 오늘날 삼성그룹의 놀라운 조직력을 다진 기업인이며, 
미래지향적인 사업확장으로 화제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특히 1960년대말 20세기 후반의 첨단산업으로 부각되었던 전자산업에 진출하기 위해 
이 분야에 이미 진출해 있던 럭키금성그룹과 불화를 일으킬 만큼 
기업의 발전을 위해 비정한 측면도 있었다. 
1960년대 중반 한국비료공장 밀수사건과 관련하여 한때 
삼성그룹 내의 모든 직책에서 물러나 은퇴한 적이 있었으나 곧 복귀했다. 
이때 그룹을 이끌어가던 맏아들 맹희와 경영이념상의 차이를 보였는데 
끝내 그것을 극복하지 못하고 셋째 아들 건희에게 그룹 경영권을 물려주었다. 
한국의 산업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금탑산업훈장과 
세계적으로 우수한 경영자에게 수여되는 세계최고경영인상을 받았다. 
저서로는 〈우리가 잘 사는 길〉과 자서전 〈호암자전 湖巖自傳〉이 있다.
* 이화여대 이어령 교수의 변 
제일제당(1953), 제일모직 (1954) , 동방생명(1957), 안국화재해상보험(1958), 
세계백화점(1962), 삼성문화재단(1965), 전주제지(1965), 중앙개발(1966), 
한국종합병원(1966) 중앙일보-동양방송(1966), 삼성전자(1969), 삼성전관(1970), 
제일합섬(1972), 삼성전기(1973), 삼성코닝(1973), 호텔신라(1973), 
삼성석유화학(1974), 삼성중공업(1974), 용인자연농원(1975), 삼성항공(1977), 
삼성시계(1977), 삼성건설(1977), 한국엔지니어링(1978), 삼성반도체통신(1980) 
그가 사업을 하기 위해 투자한 초기 자본은 쌀300석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로부터 50년 후 그가 이룩한 삼성그룹은 
166개의 계열기업에 103 조 가량의 매출액(2001년도 8월 기준)을 기록했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이병철은 원래 부자였으니까 라고 하며 
그의 놀라운 업적을 애써 무시하려 한다. 
일본의 3대 경영의 신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있다. 
내셔널 그룹의 창업주 마쓰시타 고노스케, 
혼다자동차의 창업주 혼다 소이치로, 
소니의 창업주 이부카 마사루가 그들이다. 
이 셋을 비교해도 전혀 밀리지 않는 사람이 바로 이병철이라는 사람이다.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기업가라고 말하고 싶다. 
- 정주영 
호암 이병철 회장이 걸출한 사업가였다는 것은 세상의 모든 이들이 알 것이다. 
그분은 자신의 치밀한 판단력과 혜안으로 삼성이라는 대그룹을 일구었으며, 
오늘날 삼성이 한국의 울타리를 뛰어넘어 
세계로 진출할 수 있는 발판을 만들어놓았다. 
- (워싱턴 포스트) 캐서린 그레이엄 명예회장 
세상 사람들은 흔히 경영을 간단히 말하자면 돈벌이로 생각한다. 
호암 선생도 물론 그런 면에서 탁월한 능력을 발휘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호암은 물질에 대한 욕망을 이미 뛰어넘은 대단한 사업가였다. 
나는 사업가에도 일류와 이류가 있다고 생각한다. 
일류 사업가가 되자면 사적인 탐욕을 뛰어넘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호암은 일류 사업가였다. 
- 제너럴 일렉트릭 잭 웰치 회장 
호암 선생의 목소리가 평소보다 낮은 걸 눈치챌 수 있었다. 
안색도 좋아보이지 않았다. 
호암 선생에게 시간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꼈는데, 
호암 선생 역시 자신의 시간이 멀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연한 모습이었고, 
마지막 순간까지 평생 해왔던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었다. 
참 아름다웠다.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해온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대가의 자세가 아닌가 잠시 숙연해졌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진짜 경영자라면 호암선생처럼 최후의 순간까지, 
경영 일선에서 자신의 마지막 생명까지 불태워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도 했었다. 
한국 경제의 짧은 역사 속에 가장 위대한 인물을 선정한다면 
이병철이라고 주저없이 말하겠다. 
내가 한국 경제사의 인물로 선정한 기준은 다음과 같다. 
경제인, 사업가의 첫 번째 목적은 이윤 창출이다. 
두 번째 목적은 일자리 창출, 즉, 경제만 잘하면 되는 것이다. 
상공업 천시풍토와 한일합방, 6.25를 겪으면서 
한국 무역을 세계 12위까지 끌어올린 장본인인 이병철이라면 
한국 경제사에서 가장 뛰어난 경제인으로 선택해도 부족함이 없지 않을까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