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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초대 CEO 이병철 회장 6.

Joyfule 2007. 4. 18. 09:35


삼성 초대 CEO 이병철 회장 6.  

    이병철 
    삼성그룹의 창업자이다. 
    호는 호암(湖巖).
    1926년 서울중동중학교에 입학했으나 2년 뒤 중퇴했다. 
    1932년 일본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 
    전문부 정경과에 입학했다가 
    1934년 중퇴한 후 귀국했다. 
    1982년 미국 보스턴대학교에서 
    명예경영학박사학위를 받았다. 
`한비 밀수 사건`이란 사카린 
-식료품을 만드는 공업재료로써 단 맛을 내는 물질. 당시에는 필수품이었다고 한다.- 
이 시장에 누출되어 그것을 조사하던 와중에 삼성이 밀수하게 됐다는 것을 알게된 것이다. 
이맹희씨는 이렇게 설명한다. 
삼성이 미쓰이측의 기계를 사준데 대한 고마움의 표시로 100만달러를 주기로 했는데,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불가능하여 박대통령에게 의견을 여쭤본 결과 
100만 달러어치 물건으로 들여와 1/3은 정치자금, 1/3건설자금, 
1/3은 한국비료의 운영자금으로 쓰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하여튼 `한비 사건`으로 인해 이병철은 10년 간 힘들게 가꾸었던 
한국 비료를 국가에 헌납하게 된다. 
물론 한국 비료는 1994년 한국 비료 민영화 방침에 따라 공개입찰을 실시하였는데, 
삼성이 최저입찰가보다 1000억이 더 많은 2300억을 제시해 회사를 찾아갔다고 한다. 
참으로 삼성에게는 한이 서려있는 기업이었던 것 같다. 
한국은 다른 나라보다 급변하는 정치적 상황이 많았기 때문에 
기업인들로 하여금 경영에만 신경을 쏟지 못하게 한 것 같다. 
경영만 잘한다고 성장을 못하는 기업이 한국에는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그 반대도 가능한 곳이 한국이다. 
그러한 상황은 시간이 50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것 같다. 
내 생각에 그러한 풍토를 없애기 위해서는 
정치가 경제계에 영향력을 끼치는 것을 막아야한다고 생각한다. 
올 연말에는 대선이 있다. 
다음 대통령이 누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미래의 대통령에게 한가지 바라는 것이 있다. 
무엇을 하겠다고 나서지 말아달라는 것이다. 
정치인들의 역할은 일반 국정에 관한 것에만 집중을 하고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자유롭게 일할 수 있는 통로를 열어달라는 것이다. 
`무엇을 장려하겠다`는 말만 들어도 겁이 난다.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라도 간다`는 옛 속담이 생각나는 것은 왜일까? 
2) 예측 불허인 세계 상황과의 관계 
이병철이 국제 정세가 일반 경제에도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는 것을 
느낀 것은 대공황이었다. 
대공황이 일어날 당시에는 이병철은 일본에 있었는데, 
일본의 경제 위기를 보면서 느낀 것이 많았던 것 같다. 
그 후에 1937년 3월 터진 중일전쟁은 
경남에서 대지주로서의 꿈을 부풀던 이병철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사건이었다. 
중일전쟁으로 인해 일제는 쌀가게를 문닫게 한다. 
정주영이 파산한 것과 비슷한 상황이다. 
이것은 우리나라 국민들 대부분이 겪은 것일 것이다. 
또 국제 상황이 바뀐 것은 우리 국민들에게 비참한 과거인 1950년 6.25이다. 
삼성물산공사가 보관하던 물품들이 모두 타버려 없어진 것이다. 
이병철이 41살에 일어난 일이다. 
자칫 자포자기할 수 있었던 이병철에게 행운이 돌아왔다. 
이병철은 아마 이때도 그 생각을 했을 것이다. 
`3害가 있으면 3利가 있다.` 
그 행운이란 다름 아닌 예전에 과수원과, 양조장을 했었는데, 
그만 벌이고 있는 사업들이 너무 커서 대구에 있는 조그만 사업체는 
이창업이라는 사람에게 맡기고 잊었던 것이다. 
그런데 전쟁으로부터 피하기 위해 대구에 왔는데, 
이창업이 이익금이라고 3억원을 내놓은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행운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 역시 단순히 행운이라고 보아서는 안될 것이다. 
이병철에 대한 사람들의 믿음을 뜻하는 것이다. 
우리 한국 경제는 현재 IMF 이후 외국 경제에 대한 의존도가 점점 심해지고 있다. 
대부분의 유망한 기업들은 외국에 팔려나간지 오래고, 
일반 국민들은 그것에 대한 인식도 가지지 못한 채 
자신의 앞 날 만을 염려하며 주식 투자에 정열을 쏟는다. 
그런 와중에도 삼성 전자가 성장하는 것을 보았을 때, 
그 뿌리가 얼마나 튼튼한 것인지 알 수 있었다. 
한때 이건희 회장이 개인의 취미생활인 자동차를 사업으로 확장시키려는 
무모한 시도를 해서 위태로워진 적이 있었던 것을 제외하곤 
삼성은 언제나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기업으로 서있었다. 
- 이화여대 이어령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