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의예지(仁義禮智) - 새천년의 충·효·예 교육 이렇게 합시다
김종두
아침의 나라, 문화의 나라로 거듭나게 하자.
옛일을 연구하여 거기서 새로운 지식이나 도리를 찾아내는 것을
온고지신(溫故知新)이라 한다.
그리고 “근본이 서면 길과 방법이 저절로 생긴다(本立而道生)”, “
근본이 선 이후에 교화가 이루어 질 수 있다(本立而後化成)”에서
근본의 중요성을 알 수 있다.
또한 “사람의 됨됨이가 온전치 않으면 그 어떤 것도 물려주어서는 안된다(非人不傳)”,
“재주가 덕을 이겨서는 모든 것이 위태롭게 된다(不才勝德)”고 하였다.
이 모두가 온전한 인간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요
충효예 실천운동의 필요성을 설명하는 주옥같은
“적구심낭(摘句心囊)”에 해당되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좋은 사상이자 철학이 있어도
그것을 우리 것으로 소화하지 못하는 면이 없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오늘날에 와서 부끄러운 기록들이 자꾸 나타나는 것이다.
굵직한 것들만 열거한다 해도, 국가원수 및 지도자들의 빈번한 영어신세,
삼풍백화점과 성수대교의 붕괴, 화성 ‘씨랜드’와 인천 호프집 화재에 이르기까지
윤리의식 결여에서 온 인재(人災)들이 수없이 많다.
충·효·예 운동은 모든 것을 바르게 알려주는 데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역사도 알려주고 충·효·예 가 무엇인지도 바르게 알려주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고유사상이요,
현대적 의미로도 전혀 손색이 없는 아름다운 사상임을 알게 해야 한다.
그래서 전인교육의 학자들은
「知(앎)→情(느낌)→意(다짐)→行(행동/실천)의 과정」에서
‘知(앎)의 과정’을 중요시 해왔다.
그 것은 충·효·예가무엇인지를 알지 못하면
‘느낌’도 ‘다짐’도 ‘실천’도 기대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일찍이 율곡 이이 선생은 그가 지은 ‘격몽요결’에서
“무릇 자식이면 부모에게 효를 해야 한다는 것을 모르는 이가 없다.
그러나 효도하는 사람이 대단히 적은 것은 부모의 은혜를
깊이 알지 못하기 때문이므로 가르쳐야 한다”하였고,
다산 정약용 선생께서도 목민심서에서
“목민관의 직책은 사람으로서의 도리를 가르치는데 있다.
그렇기 때문에 가르치지 않고 형벌로 다스려서는 안 된다.
백성이 알도록 해야 한다”는 말을 남겼다.
이렇듯이 ‘충·효·예’에 대하여 그 의미를 알지 못하면
느낌도, 다짐도, 그리고 행동도 기대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사랑을 담아서 알려주려는 노력도 중요하다.
이것은 “사랑은 개념으로 이해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받음으로써 익혀진다,
교회에서 훌륭하게 설교하는 성직자보다도 골방에서 기도하는
어머니의 모습이 교육에 있어서는 더 효과적인 방법이 될 수 있다(페스탈로찌)”고
한 말에 잘 나타나 있다.
또한 “선생님이 좋아야 그 과목이 재미있고 공부를 잘하게 된다”는 말에서도
“情(느낌)과 意(다짐)”가 어떤 상태에서 올 수 있는 것인가를 알게 하는 대목이다.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우선 먼저 리더들부터 알아야 한다.
그래야 상황인식도 가능하고, 리더십으로 연계시킬 수 있으며
군과의 연대 필요성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런 과정을 거쳤을 때 비로소 공자, 타고르, 토인비, 게오르규가 예찬했던
아침의 나라, 문화의 나라로 거듭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끝으로 월간 「충·효·예 잡지」의 창간을 충심으로 축하하며
충·효·예 운동에 있어 큰 길잡이가 되어 주리라 기대하는 바이다.
김종두 (월간 충·효·예 2000년 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