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적 기도 - 신상래 목사
107. 기도란 주인을 섬기는 것이다.
종은 주인을 섬기는 역할을 하는 신분이다. 교회에 오면 우리는 하나님을 주인이라고 부른다. 스스로 종이라고 신분을 밝히는 것이다. 그런 우리는 주인인 하나님을 섬기는 행위로 온갖 신앙행위를 하고 있다. 성실한 예배와 아낌없는 헌금, 각종 기도회의 참석과 봉사, 전도를 열심히 하면 하나님을 잘 섬기고 있다고 생각하며 천국의 면류관과 상급을 따 논 당상이라고 여기곤 한다.
그러나 과연 그러한 생각이 성경적일까?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의 피조물이며 그분의 영광을 위해 창조되었으며 찬양을 하도록 지어졌다고 밝히고 있다. 더불어 그 모든 능력은 하나님을 통해 공급되었다는 사실을 덧붙이고 있다. 예를 들어, 우리가 드리는 헌금을 살펴보자. 우리는 자신이 힘든 노동과 수고를 통해 귀한 돈을 벌어 교회와 하나님께 드린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성경은 세상의 모든 재물은 하나님의 소유라고 밝히고 있다.(학2:8) 그렇다면 사람들은 하나님의 소유를 가지고 와서 자신의 것으로 드린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말이다. 찬양과 경배 등의 신앙행위도 마찬가지이다. 이 역시 자신의 뜻과 정성으로 드린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하나님이 그런 믿음을 주시고 그 마음을 주셔야 하지 않겠는가? 믿음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시지 자신의 노력과 의지로 믿음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지금까지 행한 신앙행위와 종교의식도 하나님이 공급해주시는 능력 안에서 가능한 일이다.
모든 믿음의 행위가 하나님으로부터 공급받는다면 어떤 통로를 통해 얻어지는 것일까? 두말 할 것도 없이 기도와 말씀을 통해 얻어지는 것이다. 성경은 깨달음을 얻는 수단이지만 기도는 하나님과 깊고 친밀하게 교제하는 통로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모든 능력을 공급해주시는 하나님을 찾아뵙는 기도야 말로 하나님을 섬기는 원초적이며 근본적인 행위가 아닌가? 그러나 신앙의식을 성실하게하고 종교행위를 정성껏 드리는 이들조차 기도를 소홀하게 여기곤 한다. 2,30분에 불과한 새벽기도회만 빠지지 않고 참여해도 열심히 기도하고 있다고 잘못 생각하기 일쑤이다. 이는 종이 자신의 재산과 능력으로 주인을 섬기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주인의 재산을 관리하며 노동하는 대가로, 봉건시대의 종들은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제공받고 장가도 가고 시집도 가며 자식을 낳아 행복하게 살수도 있었다. 기도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행위이다. 하루 종일 기도의 삶을 사는 이들이라면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며 삶의 전부인 것을 고백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그러나 하루에 한번, 그것도 2,30분에 불과한 기도시간이라면 그 믿음의 정도가 소홀하다는 증거이며, 아예 그런 기도조차 없는 이들이라면 교회의 예배의식에 성실하게 출석하고 있는지는 몰라도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이 아니라는 증거이다.
일상의 삶에서 하나님을 까마득히 잊고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하나님을 주인으로 섬기는 종이라고 고백한다고 할 수 있는가? 하나님과 깊고 친밀하게 사귀는 종이라면 일주일에 한 번의 예배의식이 아니라 삶 그자체가 예배이며 소유의 일부를 교회에 드리는 게 아니라 자신의 모든 것을 하나님의 것으로 사용한다. 이들은 자신이 생각하고 말하며 행동하는 모든 출처가 하나님이라고 인정하고 고백한다. 이들이 가장 열심히 하는 것은 외형적인 종교행위가 아니라 하나님과 깊고 친밀하게 만나는 기도이다. 기도를 통해 믿음과 생명을 공급받는다. 인생이 거룩한 예배이며 삶 자체가 찬양의 도구로 살아간다.
그러나 아쉽게도 우리네 주변에는 기도가 신앙행위에 들러리를 서거나 아예 삶에서 빠진 이들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이들은 주인을 섬기는 법을 모르는 종들이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종도 아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앞세우는 주인일 뿐이다. 종의 일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108. 새롭게 변화되기를 기도하라.
바울 사도는 세상풍조를 따르지 말고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분별하도록 하라고 권면했다. 변화를 받는다는 것은 지금의 신앙상태나 삶의 방식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으로 날마다 발전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신앙의 연륜이 십수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이들이 우리 주변에 허다하다. 매주 설교를 열심히 들으며 봉사를 하고 전도를 하는데도 말이다. 부족한 성품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고 믿음의 성장도 보이지 않는다. 성령의 능력이 임하는 기도는 언감생심이다. 그들은 입을 모아 예전에 뜨거웠던 신앙을 회상하고 자랑하곤 한다. 새롭게 변화가 되어 날마다 신앙이 성장하고 성령의 능력으로 풍성한 열매를 맺어도 시원치 않은데 과거의 모습을 그리워하고 있으니 기가 찰 노릇이다.
신앙의 연륜이 오래되고 교회의 직책이 무거워도 여전히 변화되지 않는 이유는 새롭게 되기를 갈망하는 간절한 기도가 없기 때문이다. 새 신자가 처음 교회에 오면 모든 게 새롭고 낯설기에 배우는 일에 애쓰고 힘쓰곤 한다. 그러나 일이 년이 지나 사람들과 친근해지고 교회의 종교행사에 익숙해지면 노력을 게을리 하기 시작한다. 특히 이러한 일은 기도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처음에 하나님과 동행하는 기도를 배우지 않았던 사람이 중간에 배우는 일은 고되고 힘들다. 이미 매너리즘에 빠지고 안주함이 배어들어 몸과 생각이 바뀌기를 거부하기 때문이다. 오랜 신앙의 소유자들이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는 일이 뼈를 깎고 살을 저미는 것처럼 고통스럽게 여긴다. 예수님은 새 술은 새 부대에 넣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이처럼 새로운 믿음은 새로운 마음상태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마음이 새롭게 변화하기를 원한다면 성령으로부터 끊임없이 그 능력을 공급받아야한다. 필자가 쉼 없는 기도를 한지 십여 년이 흘렀지만 지금도 아침에 일어나 기도를 시작하면 기도훈련을 시작하는 날처럼 간절히 성령이 내주하시기를 갈망하며 요청한다. 어제 식사를 맛있게 했더라도 오늘 새로운 식사를 해야 하듯이, 어제까지 열심히 기도한 것은 새날이 되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다음날에는 그날에 필요한 기도를 새롭게 해야 한다. 신앙의 연륜이 오래되며 교회의 묵직한 직책이 있는 사람이라면 안주하기 십상이다.
그러나 이들이야말로 새롭게 변화되는 기도가 더욱 필요한 사람이다.
예수님은 나중 된 자들이 처음 되고 처음 된 자들이 나중 되는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경고를 하셨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스스로 변화되기를 거부하였기에 예수님으로부터 책망을 받았으며 천국에서 거절당했다. 새롭게 변화되는 것은 모든 크리스천들의 필수적인 기도목록이다. 하나님은 신앙의 연륜이 오래될수록 견고한 믿음으로 성장하며 성령의 능력을 받아 기꺼이 제자의 도구로 쓰이기를 원하시고 계신다. 변화는 이런 사람에게 더욱 필요하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믿음의 수준과 신앙의 잣대는 새 신자와 비교할 수 없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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