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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님께 접붙임 당하면 나타나는 본질적 현상

Joyfule 2018. 8. 18. 00:16



 성령님께 접붙임 당하면 나타나는 본질적 현상



여러분들이 성령님이 오시면 어떤 변화가 있는지

혹은 어떤 현상이 일어나는지 궁금해하는 분들이 많아서 그 부분에 대해서 글을 쓰고자 합니다.

물론, 거듭나도 사람들 개개인의 영성이나 성격, 자라온 환경등의 차이로 약간씩 다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전체적인 맥락의 본질은 거의 똑같습니다.


성령님이 내게 오시면... 제일 먼저 나타나는 현상이 


내가 아주 더러운 죄인이라는 것을 직설적으로 알게 됩니다.

막연히 그냥 무조건 나는 죄인이니까 죄인이지가 아니라,

현실적으로 혹은 입체적으로 더러운 죄인임을 알게 됩니다.

너무 괴로워 몸 둘 바를 몰라 하며 쥐구멍을 찾고 싶어집니다. 

이게 가장 먼저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이것은 성령님께서 나를 조명하셔서  내 상태를 영적으로 느끼거나 보게 하시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그래서, 의롭다 하며 거룩한 모습인 양 스스로 나타내는 사람은 아직 성령님이 없는 분들입니다. 


하루종일 주님의 생각으로 꽉 차 있습니다.

뭘 하려고 해도 주님께 먼저 기도하는 습관이 자동적으로 나타납니다.

마치 스펀지에 물이 흠뻑 스며들듯 주님을 생각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늘 마음속에 스며들어 있습니다.

은혜의 물이 마르지 않는 물댄동산 그런 것입니다.

예전에는 은혜를 받았다고 하며 며칠 동안 그 감정이 잠시 있으나

이는 임시적인 것이기에 세상의 현실과 부대끼면서 시간이 지나면 곧 사라집니다.

그러나, 접붙임 당하면 어디 가서 말씀을 들어서 은혜를 느끼는 것도 있지만

근본적으로 내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님의 영향으로 말미암아 끊임없이

은혜를 느끼게 됩니다. 또한, 그 은혜가 떨어지는 게 두려워  쉬지 않고 기도하는 상태가 됩니다.

그래서 쉬지말고 기도하라는 말씀은 저절로 지키게 됩니다. 


죄를 지을만한 곳... 즉, 근처에도 가지 않으려고 합니다.

노래방, 룸살롱, 술자리, 연예인 공연, TV, 음란사이트 등등 

말초신경을 자극하여 생각으로 죄짓게 하는 곳에는 가지 않습니다.

이는 내가 아닌, 나에게 계신 성령님께서 그런 것을 거부하는 마음이 들게 하시는 겁니다.

어쩔 수 없이 그런 곳에 가면 아무리 자제심을 끌어올려도

까마귀 노는 곳에 가면 조금이라도 먹물이 들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아예, 접근을 꺼리게 하시는 겁니다.

사회생활의 융통성 어쩌니 하면서 그런 곳에 가려는 마음이 있다면 성령님이 안 계신 겁니다.

성령의 사람은 단호함이 있기에 죄의 근처에도 안 가려고 합니다.

그래서, 반드시 세상과 충돌하게 되어 있습니다.


과거에는 나와 맞지 않는 생각이나 자극이 오면 말로 되돌려주거나

어떻게든 복수하려는 생각이 있었지만, 그런 생각 자체가 사라집니다.

마치 머리 위로 지나가는 까마귀를 억지로 붙잡아 머리 위에 올려놓고

임의로 화를 내고, 분석하고, 정의를 내려서 스스로 늪에 빠지지만,

거듭나면 까마귀가 위로 지나가며 아무리 자극해도 그냥 지나가도록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아무리 누가 자극해도 동요됨 없이 인내하게 되고 오히려 그를 위하여 기도하며 사랑으로 감싸게 됩니다.

까마귀(마귀의 공격)는 계속해서 사람들의 머리 위로 지나가며

죄를 짓도록 화를 자극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예를 들면.. 주변 사람들이나, 가족 중에 한 사람이 아무리 자극해도 자극되지 않고 그냥 흘려버립니다. 


예전에는 내가 배운 학식이나 세상 지식을 대단히 여겼으나

성령님이 오시면 배설물로 여겨서 관심 대상에서 완전히 사라집니다.

그래서 그 누구에게도 자신이 가진 지식이나 능력을 자랑하는 법이 없습니다. 자랑하려는 맘 자체가 없어집니다.

나타내려는 욕구가 계속 올라온다면 거듭남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오직 주님의 말씀인 성경책에 집중하여 주님의 뜻을 알아가려는 영적 재미에 기쁨을 느낍니다.


예전에는 전쟁의 두려움이나 세상 소문과 난리에 대한 것에

걱정하며 쓸데없는 생각에 휩싸여서 안절부절못했지만,

성령님이 오시면 전쟁은 하나님께 속하였고, 온 세상 만물이 주님의 관활하에 있음을 알기에 

두려움이나 걱정이 전혀 없이 오직 담대함으로 주님만 바라보게 됩니다.

휴거에 대한 생각도 기름준비를 하다 보면 응당 당연히 들림 받는 것이니 걱정 자체가 없어집니다.


예전에는 나와 연관된 사람만 감싸고 사랑했지만, 

주님이 오시면 이웃의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을 주시기에

우리 이웃을 지옥에 보내면 안 된다는 사명감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강하게 생기기에

한 영혼이라도 구하려는 사명감에 전도하려고 하는 마음이 불같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성령의 인침을 받으면 창피한 것이고 뭐고 앞뒤 안 가리고

예수님을 믿으라고 소리치는 용기가 마음속 깊은 곳에서 강하게 올라옵니다.


주님께서 언제 어디서나 늘 지켜보고 있음을 잘 알기에 행동거지와 말을 조심하게 됩니다.

이는 기독교인이라서 인위적으로 조심하는 것과 다른 것입니다.

주님께서 지켜보심을 영으로 실제 체감하기 때문입니다.


때로 찌들어 더러운 옷을 입으면 죄에 대하여 무감각해집니다.

죄로 찌든 옷에 뭐가 튀어도 관심도 없습니다.

더러워질 대로 더러워진 옷에 뭐가 튄들 무슨 느낌이 있겠습니까..

인간의 기본 양심에 의지하여 어느 정도의 죄책감도 느끼지만,

성령님이 오시면 아주 조그만 죄에도 견딜 수 없는 상태가 됩니다.

흰옷을 입으면 아주 조그만 음식 국물이 튀어도 금방 표가 나서

화장실로 달려가 그 흔적을 물로 씻으려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영적 양심상 내가 죄를 지었다 인식되면 눈물을 흘리면서까지 용서해달라고 가슴을 치며 기도합니다.


이중인격이 사라집니다.

예전에는 교인이라는 명분상 남들 앞에서 그럴듯하게 자신을 좋은 얼굴로 거룩한 척 교언영색(巧言令色)하고

혼자 있거나, 나를 알지 못하는 익명성의 공간에서는 거듭나지 못한 자신의 본성을 그대로 드러냅니다.

그러나, 성령님이 오시면 누가 보나 안 보나 늘 변함이 없습니다.

오히려 혼자 있을 때 더 주님을 의식하며 겸손하게 됩니다.

성가대원으로 찬양해도 남들 많이 보는 앞에서 하는 것보다,

나 혼자 있을 때 주님만 들으시라고 찬양하는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지며 주님의 임재를 강하게 느낍니다. 


남에게 피해가 되는 거짓말은 당연히 안 하지만,

일상적으로 죄책감 없이 하던 거짓말도 안 하게 됩니다.

그러나 남을 위해 내가 대신 죄를 뒤집어쓰기 위하여 자신의 잘못으로 돌리는 선한 거짓말은 가끔 합니다.

사실 이건 거짓말이 아닙니다.

남의 죄를 대신 뒤집어쓰는 것이기에 거짓이라 하기엔 무리가 있습니다.


인간적 기준으로 보면, 사랑하지 못할 사람을 사랑하게 됩니다.

인간적 기준으로 보면, 용서하지 못할 사람을 용서하게 됩니다.

누명을 써도 이를 벗어나려 변명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왜냐면, 주님은 이미 다 아시기에 걱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변명은 그 의식 속에 하나님보다 사람을 의식하기에 나타나는 심리현상입니다.


함부로 판단하거나 정죄하지 않게 됩니다.

예전에는 내 생각이 나를 지배하므로 내 생각대로 재단하고, 조립하고 했지만,

성령님이 오시면 내 생각은 뒤로 밀리고 주님을 먼저 앞세우기에 모든 것은 주님의 판단에 맡깁니다.

예를 들면, 내가 아니라 주님이라면 과연 어떻게 하실까...

주님의 마음을 품었는데 정죄하거나 판단하겠습니까?  


성령님이 오시면 가끔 주님의 음성이 들립니다.

이는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영의 세계와 연결되는 통로가 됩니다.

여기서 주의할 것은 마귀의 음성도 들을 수 있다는 겁니다.

영의 귀가 열리니 당연히 영적 소리가 들려옵니다.

주님의 음성인지 마귀의 음성인지 분별하는 것은 과연 그 음성이 성경적으로

주님의 거룩성이 있는지 없는지 알아야 합니다.

거룩한 의가 되는 일도 아닌데 밑도 끝도 없이 ~~ 하라고 집요하게 시키는 것은 마귀의 음성입니다.

주님은 두세 번 권면하고 더는 권하지 않으십니다.

이는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주신 이유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음성은 저 깊숙한 곳에서 권위 있게 올라오지만,

마귀의 음성은 바로 옆에서 재잘거리듯 품위가 없습니다.

하여, 뭔 소리를 들었다고 흥분을 감추지 못하여 무조건 위로부터 왔다 여기면

마귀의 영적 노예가 될 수 있으니 조심하십시오. 

가끔, 내 의도와 전혀 상관없이 환상이 열리기도 합니다.


뭘 듣고, 봤다고 그걸 영력으로 여겨 신성하게 여긴다거나 신앙의 기준으로 삼으면 큰일 납니다.

잘못하면 마귀에게 이용당합니다.

이런 것들은 신앙의 본질이 아닙니다.

신앙의 본질은... 성령으로 거듭나 주님의 뜻에 순종하여 천로역정의 길을 가는 것과

주님의 성품이 나를 통하여 나타나 주변에 덕을 끼치고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는 것에 주안점을 둬야 합니다.


주님은 사랑 그 자체이기도 하지만 무서운 공의의 하나님임을 잊으면 안 됩니다.

주님이 용서의 하나님임을 왜곡하여 내가 지은 죄를 회개도 없이

무조건 용서되길 바라는 자에게 용서의 하나님이 아닙니다.

간절히 눈물로 회개할 때 그 죄를 사해주시는 용서의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결론은...

성령님이 오시면 나로 인하여 주님의 성품이 그대로 나타나게 됩니다.

즉, 예수님을 닮아 작은 예수로 사는 것입니다.

이를 또 오해하여...  당신이 뭔데 교만하게 예수님 흉내를 내냐며 타박하지 마십시오.

교만하게 흉내를 내는 게 아니라, 포도나무에 접붙임 당하면, 포도나무의 원래 본질이 

가지에 흘러들어 원래 포도나무를 닮아간다는 의미입니다.

사과나무도 같은 과에 속한 나뭇가지를 접붙이면 사과가 열립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기에 성령으로 접붙임 당하면

당연히 주님을 닮아 주님의 향기가 나타나게 되는 겁니다. 

주님의 형상과 전혀 다르고 영이 없는 일반 동물이 성령으로 접붙임 당했다는 소리 들어본 적 있습니까?

사람은 특별히 영을 지녔기에 주님의 형상과 닮은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을 간절히 찾고 찾으며 회개하면 우리의 영이

주님과 접붙임 당하여 주님을 닮은 원래 형상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를 알지 못하여, 예수님의 마음을 품으라는 것을 교만하다 하며 자신이 감히 예수가 되려고 한다며

어느 신실한 목사님을 신랄하게 비판한 어느 기독교 신문 기자가 쓴 사설이 떠오릅니다.

영적 원리를 이해 못 하면 이렇게 판단을 하고 그 글을 읽은 분별력 떨어지는 독자들도 거기에 넘어가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거듭났다고 다 같은 것은 아닙니다.

거듭남은 이제 믿음의 출발 선상에 선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거듭남도 사람이 자라온 환경과 성격에 따라서 약간씩 차이는 있으나 거듭남의 기본적인 본질이 똑같습니다.

다만, 여기서 더 성장하지 못하여 젖먹이에 머물 것이냐

단단한 음식까지 소화할 수 있는 믿음의 성장으로 갈 것이냐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달음박질할 것이냐는 내가 마귀의 핍박과 고통을 이겨내며

어느 정도 신실함을 가지고 주님께 순종하느냐에 달렸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문제가 있습니다.

성령으로 거듭나지도 않은 사람들이 성경을 많이 알고 종교 생활 오래 하면

그게 성령으로 거듭난 것으로 오해하여 은혜로 구원받고

믿음으로 의로워졌다면서 마치 성령님을 받은 것처럼 하는 경우를 보는데 이것은 대단한 착각입니다.

마귀가 얼마나 속임수의 명수인지 대부분 넘어갑니다.

성령을 받은 증거는 위에서 열거한 주님을 닮은 모습들이 나를 통하여 반드시 열매로 나타납니다.

당연히 나타나야할 그런 열매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무슨 근거로 성령으로 거듭났다고 하는 것인지

자신이 만든 테두리 안에서 계속 그렇게 오해하고 살다가 버림받는 것입니다.

이것이 마귀가 노리는 굉장한 미혹임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에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고 은혜로 구원되었다고 나왔으니

자신에게 아무 변화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냥 그 문서 적 글만 믿는 것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글이 생명이 되어 나를 찌르고 내가 성령으로 변화 받았을 때 그 말씀이 효력을 발생하는 것입니다.

아무 변화도 없이 그 글을 신뢰한다고 그게 믿음이 아닙니다. 

이는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지옥 가기 두려워 그 글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당연한 결과지만, 성령으로 거듭나 진정한 믿음이 들어왔다면

당연히 위에서 언급한 성령의 열매들이 당연히 나를 통하여 나타나야 정상입니다.

자신의 영혼 구원을 위하여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올바른 길로 갑니다.

내가 인정하지 않는다고 성경에 기록된 말씀이 변하지 않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대로 거듭남의 열매가 나타나지 않으면 거듭나지 않은 것이고,

거듭남의 열매가 나타나면 거듭난 것입니다.

먼저 자존심 다 내려놓고 자신의 모습을 솔직하게 인정해야 진정한 믿음 안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사도행전 19장 2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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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성경 말씀은 성령을 받아야 진정한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지금도 늦지 않았습니다.

자신에게 성령의 열매가 억지로가 아닌 자연스럽게 평상시에 항상 나타나는지 확인해보십시오.

성경은 거짓말을 절대 안 합니다.

성경에서 그렇다면 그런 겁니다.

믿음으로 의롭게 되고 은혜로 구원받는다는 말씀은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에게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자기 포지션이 현재 어디에 있나 빨리 알아채야 합니다.

성경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요한복음 13장 5절)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로마서 8장 9절)


나는 성령을 받은 그리스도의 사람입니까?
믿음 있다고 자신하는 나에게... 

그것을 증명하는 성령의 9가지 열매가 있습니까???

이 문제는 현실입니다.

막연히 관념적인 것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