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찬의 의미와 목적
<성찬식에 대한 역사적, 신앙적, 신학적 이해를 돕고자 개혁주의 교회의 3대 신앙고백서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벨직 신앙고백서(1561),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서(1621)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1643)에 언급된 성찬식에 관한 내용과 웨스트민스터 소요리 문답과 예배모범에 실린 성찬식에 관한 글을 소개합니다.>
1)벨직 신앙고백서에 언급된 성만찬에 관한 내용
35장. 성만찬
우리는 이미 중생함을 얻고 교회의 지체가 된 사람들을 기르치시고 도우시기 위하여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만찬을 제정해 주셨음을 믿고 고백하는 바이다. 중생한 성도들에게는 다음의 두 가지의 생활면을 갖게 되는데, 첫째는 육신적이며 일시적인 것이다. 이는 태어날 때부터 갖는 것이요 모든 사람에게 공통적인 것이다. 둘째로는 영적이며 영원한 것인데 이는 중생할 때 갖게 되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하는 복음의 말씀에 의하여 효력을 얻게 되는 것이다.
이런 생활은 누구에게나 주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택함받은 자에게만 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육체와 이 세상의 삶을 위하여 일용할 양식을 우리에게 내려주시는데 이것은 생활 그 자체로서 누구에게나 있어야 되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신자들이 지녀야 되는 영적이며 영원한 삶을 영위하도록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양식을 우리에게 주신다. 이는 곧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는 것으로서 우리가 그를 취할 때 모든 성도들이 영적인 생명을 공급받고 힘을 얻는다. 다시 말해서 신자들이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인정하고 그를 영접할 때에 그렇게 된다는 것이다.
주님께서는 이 영적이며 신령한 양식을 보여주시기 위하여 이 세상의 가시적인 제도를 세우셨는데, 그의 몸을 상징하는 떡과 그의 피를 상징하는 포도주가 그것이다. 이것은 마치 우리가 이 예식을 잘 행하되 육신의 손과 입을 통하여 먹고 마심으로 우리의 생명이 공급을 받듯이, 믿음으로 우리의 영혼의 유일한 구세주이신 그리스도의 참 몸과 피를 취함으로 영적 생명을 유지해 나갈 수 있는 것이다.
마치 성령의 역사가 인간에게는 감추어져 있어서 깨닫기 어렵듯이, 이 성례의 참 의미가 우리의 이해를 초월해 깨닫기가 어렵기는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성례를 헛되이 행치 않도록 명령하셨다. 그는 우리 속에서 이 거룩한 징표들을 통하여 그의 사역을 이루고 계신다. 우리가 먹고 마시는 것이 그리스도께서 가지셨던 몸과 피라고 말하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우리가 취하는 수단은 육신의 입을 통해서가 아니라 믿음을 통한 영에 의해서인 것이다.
따라서 그리스도께서 비록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오른편에 앉아 계시기는 하지만, 그는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그와 하나가 되게 하시는 분이시다. 이 예식은 영적인 식탁에서 이뤄지는데, 그리스도께서는 그 모든 은혜로써 우리와 교통하시며 그를 즐거워하도록 할 뿐만 아니라 그의 고난과 죽으심의 공로를 또한 기꺼이 얻도록 하신다. 이것은 그의 살을 취함으로써 영양을 공급받고 든든해져서 우리의 가련하고 쓸쓸한 영혼이 위로를 받도록 함이요, 그의 피를 마심으로써 영혼을 소생시키고 새롭게 함에 있는 것이다.
더 나아가, 이 성례식이 비록 의미 심장한 일과 연관되어 있기는 하지만 이 두 예식을 모든 사람이 다 받을 수는 없다. 진실로 경건치 않은 이들은 이 예식을 행한다 하더라도, 이 성례식의 참 진리를 받을 수 없는데, 이는 마치 유다와 마술사 시몬이 이 예식을 좇아 행하기는 했으나 이 예식의 참 의미가 되시며 모든 믿는 자와 하나가 되시는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못한 것과 같다.
끝으로 우리가 성례식을 성도가 모인 곳에서 행하되 겸손과 경외심을 가지고 하는 것은, 우리 구세주인신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엄숙히 기념하고 감사하면서 동시에 기독교의 신앙을 고백하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먼저 자기를 잘 살피지 않고 이 예식에 참여하는 자들은 이 떡과 잔을 마심으로 스스로 심판에 이르게 될 뿐이다. 요컨대 우리가 이 거룩한 예식을 행할 때는 하나님과 이웃을 뜨겁게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성례식에 있어 인간이 조작하여 덧붙인 모든 조잡하고 그릇된 생각들을 불경건한 것으로 배격하는 바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와 사도들이 우리에게 가르쳐준 그 예식의 규정에 만족하며, 그들이 말한 바로 즉 그 방식대로 행해야만 한다는 것을 확증하는 바이다.
2)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에 언급된 성만찬에 관한 내용
제 28주일
거룩한 성만찬에 대하여
제 75문 : 십자가에서 단번에 드리신 그리스도의 속죄제사와 그의 모든 복에 당신이 참여하고 있다는 것을 성만찬은 어떻게 상기시키고 확신시켜 줍니까?
답 : 그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나와 모든 신자들에게 이 뗀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시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리고 명령과 함께 이런 약속을 하셨습니다.1 첫째,나를 위하여 떼신 주님의 떡과 나에게 주신 잔을 내 눈으로 분명히 보듯이 주님의 몸도 나를 위하여 바쳐지고 찢기우셨으며 그의 피도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흘리우신 것이 분명합니다. 둘째, 그리스도의 몸과 피의 상징으로 내게 주어진 주님의 떡과 잔을 집례자로부터 받아서 입으로 맛보는 것이 분명하듯이 주님께서도 십자가에 달리신 몸과 흘리신 피로 영생에 들어가도록 내 영혼을 새롭게 하시며 살지게 하시는 것이 분명합니다. 1)마태복음 26:26-28; 마가복음 14:22-24; 누가복음 22:19,20; 고린도전서 11:23-25
제 76문 :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의 몸을 먹고 흘리신 피를 마신다는 말의 뜻은 무엇입니까?
답 : 그것은 믿는 마음으로 그리스도의 모든 고난과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이며 믿음으로 사죄와 영생을 얻게 된다는 뜻입니다.2 더욱이 그것은 그리스도 안에 그리고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을 통하여 우리가 그리스도의 복된 몸에 연합됨을 의미합니다.3 그래서 주님은 하늘에 계시고4 우리는 땅에 있을지라도 우리의 육체는 주님의 살이며 주님의 뼈가 되는 것입니다.5 그리하여 우리 신체의 각 부분이 한 영혼에 의하여 지배를 받듯이 우리도 한 성령에 의하여 지배를 받으면서 영원히 살게 되는 것입니다.6 2)요한복음 6:35,40,50-54; 3)요한복음 6:55; 고린도전서 12:13; 4)사도행전 1:9-11; 고린도전서 11:26; 골로새서 3:1; 5)고린도전서 6:15-17; 에베소서 5:29,30; 요한일서 4:13; 6)요한복음 6:56-58; 15:1-6; 요한일서 3:24
제 29주일
제 78문 : 떡과 포도주는 그리스도의 실제 몸과 피로 변화됩니까?
답 : 아닙니다. 세례의 물이 그리스도의 피로 변화되지 않고 그 자체가 죄를 씻지 못하며 단순히 하나님께서 주신 상징이요 확신이듯이1 성만찬의 떡이 비록 성례의 본질과 용어상2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불리워질지라도3 그리스도의 실제 몸으로 변화되는 것은 아닙니다.4 1)에베소서 5:26; 디도서 3:5; 2)마태복음 26:26-29; 3)고린도전서 10:16,17; 26-28; 4)창세기 17:10,11; 출애굽기 12:11; 고린도전서 10:1-4
제 79문 : 그러면 왜 그리스도께서는 떡을 자기 몸이요, 잔을 자기 피, 혹은 피로 맺은 새 언약이라고 부르셨습니까? 그리고 사도 바울이 만찬을 그리스도의 몸과 피에 ‘실제적으로 동참하는 것(직접 먹고 마심)’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답 : 거기에는 충분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떡과 포도주가 우리 육신의 생명을 살지게 하듯이5 십자가에 달리신 자신의 몸과 흘리신 피가 진실로 우리 영혼을 영생에 이르도록 살지게 한다는 것을 가르치시려는 것입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우리가 그를 기념하면서 이 거룩한 상징물들을 실제로 받아먹듯이 우리도 성령의 사역으로 말미암아 눈에 보이는 상징과 보증에 의하여 주님의 실제 몸과 피에 참여한다는 것을 확신시켜 주시려는 것입니다.6 그리고 마치 우리가 몸소 고난을 겪어 죄값을 지불한 것처럼 주님의 고난과 순종을 우리의 공로로 간주해 주신다는 것입니다.7 5)요한복음 6:51,55; 6)고린도전서 10:16,17; 11:26; 7)로마서 6:5-11
제 30주일
제 80문 : 성만찬은 로마 카톨릭의 미사와 어떻게 다릅니까?
답 : 성만찬은 십자가에서 단번에 드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속죄를 통해서 우리 죄가 완전히 용서받았다는 선언입니다.1 또한 그것은 성령께서, 하늘 아버지 우편에 계시면서2 우리의 경배를 받으시는 그리스도에게3 우리를 연합케 하신다는 선언입니다.4 그러나 미사는 그리스도의 몸이 사제들에 의하여 날마다 산자들과 죽은 자들을 위하여 드려지지 않는다면 그의 십자가 고난을 통해서는 사죄를 얻지 못 한다고 가르칩니다. 또한 그리스도의 몸이 떡과 포도주의 형태로 나타나셔서 그곳에서 그리스도가 경배를 받으신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므로 미사는 단번에 드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제사를 근본적으로 부인하는 것이며 저주받을 우상숭배인 것입니다. 1)요한복음 19:30; 히브리서 17:27; 9:12,25,26; 10:10-18; 2)사도행전 7:55,56; 히브리서 1:3; 8:1; 3)마태복음 6:20,21; 요한복음 4:21-24; 빌립보서 3:20; 골로새서 3:1-3; 4)고린도전서 6:17; 10:16,17
제 81문 : 주님의 식탁에는 누가 참여할 수 있습니까?
답 : 자기의 죄를 미워하고 고난과 죽음에 의하여 자기 죄가 용서받고 사악함이 가리워진다는 것을 믿으며 그 믿음이 더욱 강해져서 더 나은 삶을 살기를 원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위선자들과 회개치 않는 자들은 그들의 심판을 먹고 마시는 것이 됩니다.5 5)고린도전서 10:19-22; 11:26-32
제 82문 : 말과 행위로 불신앙과 불경건을 드러내는 자들을 성만찬에 참여하게 해도 됩니까?
답 : 안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언약을 무시하는 일이며 전 회중에게 하나님의 진노를 초래하는 일입니다.6 그러므로 그리스도 및 사도들의 교훈을 좇아서 그리스도의 교회는 천국의 열쇠를 공적으로 사용하여 그들이 회개할 때까지는 그들을 배제시켜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6)고린도전서 11:17-32; 시편 50:14-16; 이사야 1:11-17
3)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에 언급된 성만찬에 관한 내용
제29장 성찬(聖餐)
1. 우리 주님 예수께서는 그가 잡히시던 날 밤에, 그의 몸과 피로 세우신 성례, 곧 성찬을 제정하여, 그의 교회에서 세상 끝날까지 지키도록 하셨는데, 이는 그가 죽으심으로 자신을 친히 희생 제물로 드린 것을 영구히 기념케 하시고, 참 신자들에게 그 희생이 주는 모든 은혜들을 보증하시며, 그 안에서 그들이 영적인 양식을 먹고 성장케 하시며, 그들이 그에게 마땅히 행해야 되는 의무들을 보다 충성스럽게 이행케 하시며, 그들이 그와 더불어 갖는 교통과 그의 신비한 몸의 지체들로서 그들 상호간에 갖는 교통의 매는 줄과 보증이 되게 하시기 위함이다(고전11:23-26; 10:16,17,21; 12:13).
2. 이 성찬 예식을 행할 때 그리스도께서 성부에게 실제로 바쳐지거나, 또는 산 자와 죽은 자의 죄 사함을 위하여 희생 제물이 실제로 드려지는 것도 아니다(히9:22,25,26,28). 다만 이 성찬 예식은 십자가상에서 단번에 스스로 자신을 드린 그 희생을 기념하는 것에 지나지 않으며,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모든 찬미를 영적으로 봉헌하는 것에 불과하다(고전11:24-26; 마26:26,27). 그러므로 카톨릭 교회의 희생 제사인 소위 미사는 그리스도께서 선택자들의 모든 죄를 위한 유일한 희생 제물이 되시고 유일한 화목 제물이 되신 것을 가장 극단적으로 손상시키는 것이 된다(히7:23,24,27; 10:11,12,14,18).
3. 주 예수께서는, 이 의식을 행함에 있어서 그의 사역자들을 택정하시어 이 예식에 대한 자신의 말씀을 일반 회중에게 선포케 하시고, 기도하게 하시며 떡과 포도주를 축사하게 하시고 그렇게 축사하여 그것들을 거룩하게 사용될 수 있도록 다른 일반 떡이나 포도주와 구별하게 하시고, 떡을 들어 떼게 하시고, 잔을 들게 하신 후에 떡과 잔을(자신들이 나눌 뿐만 아니라) 수찬자(受餐者)들에게 나누어 주게 하셨다(마26:26-28; 막14:22-24; 눅22:19,20; 고전11:23-26). 그러나 그 예식이 거행되는 시간에 회중 가운데 참예하지 않는 자에게는 아무에게도 나누어 주지 못하게 하셨다(행20:7; 고전11:20).
4. 사적(私的)인 미사, 즉 성례를 사제(司祭)나 기타 다른 사람에게서 혼자 받는다든지(고전10:6), 또는 잔을 일반 회중에게는 나누어 주지 않는다든지(막14:23; 고전11:25-29), 떡과 포도주에게 절을 한다거나 숭배할 목적으로 높이 치켜 들거나, 아니면 가지고 돌아다닌다거나, 혹은 겉치레만의 종교적인 용도를 위하여 그것들을 남겨 두는 일이 있다고 하면 이 모든 것들은 이 예식의 본질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이 예식을 제정하신 본래의 뜻에도 어긋난다(마15:9).
5. 이 성례에 사용되는 외형적인 요소들인 떡과 포도주는 그리스도께서 정하신 용도를 위해 정당하게 구별되어 있는 까닭에 이 요소는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와 깊은 관계가 있다. 그 관계는 참된 것이지만 상징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 요소들은 때로는 그것들이 나타내고 있는 것들의 이름으로 불린다. 즉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불린다(마26:26-28). 그렇다 해도 그것들은 실체와 본질에 있어서는 전과 조금도 다름없이 떡과 포도주로만 여전히 남아 있는 것이다(고전11:26-28; 마26:29).
6. 신부가 축사하거나 또는 다른 방법을 통해서 떡과 포도주의 실체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의 실체로 바뀐다고 하는 교리(일반적으로 ‘화체설’이라고 불리운다.)는 성경에 모순될 뿐만 아니라 일반 상식과 이성에도 모순되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교리는 성찬의 본질을 뒤엎는 것이요, 여러 가지의 미신과 조잡한 우상 숭배의 원인이 되어 왔고 지금도 그러한 요인이 되고 있다(행3:21; 고전11:24-26; 눅24:6,39).
7. 합당한 수찬자들은 이 성례의 가견적 요소를 외형적으로 받을 때에(고전11:28) 또한 내면적으로는 믿음으로 받으며 물질적으로나 신체적으로가 아니라 영적으로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리스도와 그의 죽음에서 오는 모든 은혜를 받으며 또한 먹는다. 그러나 성찬을 받는 그 때에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떡과 포도주 안에 함께 또는 밑에, 물질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있는 것은 아니다(루터교의 공재설). 그렇지만 그 가견적 요소들을 그 의식에 참예하는 신자들이 그들의 외적 감각에 의해 알아보는 것처럼 실제적인 동시에 영적으로 그들은 그들의 믿음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깨닫게 되는 것이다(고전10:16).
8. 비록 무지하고 사악한 사람이 이 성례의 외적 요소를 받는다고 할지라도 그들은 그 요소가 의미하는 바의 것을 받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성례에 합당치 못하게 참예함으로 해서 주의 몸과 피를 범하는 죄를 지어 자신의 파멸을 자초하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무지하고 불경건한 사람들은 모두 그리스도와 교통을 갖기에는 부적합함으로 주의 상(床)에 참여할 자격이 없으며, 그들이 무지하고 불경건한 상태에 있는데도 이 거룩한 성찬 예식에 참여하거나(고전11:27-29; 고후6:14-16) 참여하는 것이 허락되는 때에는(고전5:6,7,13; 살후3:6,14,15; 마7:6) 그리스도에 대하여 큰 죄를 반드시 짓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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