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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온도 높이기 -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Joyfule 2023. 4. 19. 09:04





세상 온도 높이기 -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실버타운의 식탁마다 먹음직스러운 약밥이 놓여 있었다. 오층에 혼자 사는 아흔네 살의 영감님이 생일을 자축하는 의미에서 노인들에게 낸다고 했다. 도사같이 하얀 수염이 난 그 영감님은 항상 깨끗한 누빈 한복을 입고 있었다. 아버지 같은 그 나이에도 주위에 작은 거라도 베풀려고 하는 그의 마음이 넉넉해 보였다. 나는 바닷가 노인마을에 살면서 그들이 행동으로 보이는 지혜를 배우고 있다.

바닷가에 일 년 정도 살다 보니 단골로 가는 허름한 식당도 생겼다. 주인 내외가 자식같이 보살피는 뚱보개와 함께 살고 있었다. 싱싱한 물회나 매운탕이 맛깔스러운 집이었다. 순해 보이는 뚱보 개는 손님들 옆에 가서 털썩 앉아 무심히 앞을 바라보았다. 머리를 한 두번 쓰다듬어주면 슬며시 다른 자리로 갔다. 얼마전 털실로 짠 모자를 쓰고 그 식당에 간 적이 있었다. 주방에 있던 주인남자가 나를 보고 반가운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변호사님 다음에 나도 그런 모자 하나만 가져다 주세요.”

동생이 형한테 하듯 정감 어린 어조였다. 이번에 갈 때 나는 어떤 모자를 가져다 줄까 고민했다. 털실로 짠 쌍으로 된 모자 두 개가 있었다. 똑같은 제품인데 색깔만 달랐다. 그중 하나는 내가 쓰고 가서 다른 하나를 선물로 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가 “나도 그런 모자”라고 한 말이 마음에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쓰는 것과 같아야 했다.

식당으로 들어가는 길에 주머니에서 가지고 간 모자를 꺼내 그에게 주었다. 그의 얼굴이 환해졌다. 그는 내가 똑같은 모자를 쓴 걸 보면서 더 기뻐하는 것 같았다. 작은 물건으로 사람을 기쁘게 해 줄 수 있다는 게 좋았다. 모자와 연상된 또 다른 기억이 떠올랐다. 십년전 찬 바람이 불던 일월이었다. 사무실을 찾아온 전 직장동료와 근처의 식당으로 가는 길이었다. 그 며칠 전에 온 눈이 쌓여 얼음으로 변해 있었다. 옆에서 가는 머리털 하나 없는 그의 대머리를 보니까 추워 보였다.

“이 털모자 한번 써 봐요.”

내가 쓰고 있던 털모자를 벗어 그에게 씌워 주었다. 어린 시절 군고무마 장사들이 흔히 쓰던 뺨까지 가려주는 털이 달린 모자였다.

“허 허 우리 회사에서는 출퇴근할 때 모자쓰는 사람이 없는데----”

그는 정년퇴직을 하고 다시 재취업을 했다.

“다른 사람들은 머리털이 있으니까 모자를 안 쓰는 거지. 대머리는 모자가 머리털이야.”

내가 농담같이 말했다.

“야, 이 거 써 보니까 정말 따뜻하다.”

그가 어린애 같이 싱글거렸다. 그 모습을 보는 내 마음이 훈훈해졌다. 그 며칠 전 인사동 길거리를 걷다가 노점상에게서 산 값싼 모자였다.

그 다음해 겨울이었다. 나의 사무실 쪽으로 가는데 빌딩사이에서 냉기 서린 골바람이 흘러 나왔다. 그때 아는 변호사가 가방을 들고 종종걸음으로 오고 있었다. 그도 대머리였다. 산불 난 후의 몇 개 남은 까맣게 탄 나무처럼 그의 대머리 위에는 몇 개의 꼬부라진 털이 힘없이 얹혀 있었다. 나는 내가 쓰고 있던 볼사리노 형태의 모자를 벗어 그에게 씌워 주었다. 한 번 챙이 있는 모자를 쓰고 싶어 길거리에서 산 싸구려 모자였다. 모자는 그의 모습을 순식간에 풍성하게 만들었다. 대머리인 사람들은 왜 모자를 안 쓰는지 얼핏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 변호사는 신이 나서 내 모자를 쓰고 법원 쪽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모자보다는 마음을 주고 받아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나는 작은 물건 하나를 통해 전해오는 마음을 느낀 적이 있다. 한해 겨울 일주일에 한 번 정도 탑골공원 뒤에 있는 골목으로 간 적이 있었다. 갈 곳 없는 노인들이나 노숙자들이 횃대위에 나란히 앉아있는 새들처럼 인도의 경계석에 앉아 있었다. 자신을 낮춘 ‘거리의 변호사’가 되어 그들에게 다가가고 싶었다. 색이 바랜 낡은 졈퍼를 입고 그 노인들 사이에 끼어 앉았었다. 나이 먹은 나는 그들과 전혀 다를 게 없었다. 그때였다. 지나가던 노숙자가 나를 보고 말했다.

“이 거 하나 가져요. 저기서 나눠주는 거 받았는데 따뜻할 거야.”

노숙자는 내 앞에 털실로 짠 목도리 하나를 놓고 갔다. 또 다른 노숙자가 다가왔다.

“이거 가져, 기모바진데 구호단체에서 줘.”

나는 내 앞에 놓인 두툼한 바지를 보고 있었다.‘이게 뭐지’하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후였다. 또 다른 남자가 손에 쥐는 작은 ‘핫팩’을 건네주면서 말했다.

“이거 손에 잡고 부벼봐, 금세 뜨뜻해져.”

거기서 난 버려진 연탄불에 남은 것 같은 따뜻한 온기를 발견했다. 경제만으로 세상이 좋아지는 건 아니었다. 있을수록 더 냉각되는 세상이다. 찬밥이라도 비벼서 함께 먹던 예전 세상이 더 따뜻했는지도 모른다. 복지도 정책도 좋지만 개개인이 좀 더 따뜻해 졌으면 좋겠다. 그래야 세상의 온도가 올라가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