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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덤구멍은 골프홀이야 -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Joyfule 2023. 4. 15. 13:53





 무덤구멍은 골프홀이야 -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어제는 실버타운의 같은 식탁에서 밥을 먹던 노인이 이런 넋두리를 내뱉었다.

“평생 비행기 기장을 하다가 정년퇴직을 하고 부부가 실버타운에 들어왔어요. 아내는 하고 싶던 그림을 그리고 나는 골프를 치면서 여생을 즐겁게 보내려고 했죠. 그런데 아내가 암으로 저 세상으로 가버린 거야. 아내가 죽은 후 나 혼자서 오 년이나 살았는데도 왜안 죽어지는지 몰라.”

노인의 얼굴에 쓸쓸한 그림자가 드리운다. 인생의 황혼이 되면 그런 혼자 남음은 지나가야 하는 터널인지도 모른다. 그가 말을 계속했다.

“내가 일이 있는 것도 아니고 살아가는 시간이 얼마나 막막하고 무료한지 몰라요. 골프를 쳐보면 마지막에 공이 땅 속으로 들어가는 거잖아? 인간도 마지막에 몸이 땅 속으로 들어가는데 나는 왜 바로 땅속 구멍으로 바로 들어가지 않고 못치는 골프같이 그 주위에서 이리저리 굴러다니는지 몰라.”

그 내면의 쓸쓸함과 추위가 그대로 나의 마음으로 전해져 오는 것 같았다. 그는 다시 비행기를 조종하고 싶은지도 모른다. 그러나 세상 무대는 그를 퇴장시켰다. 그의 앞에 앉은 팔십대 노인이 위로하듯 이런 말을 했다.

“이 사람아 골프하고 달리 바로 구멍으로 들어가지 않고 이리저리 굴러다니면서 남는 게 행복인 줄 알아야지. 땅 속으로 들어가면 그나마 느낄 아무것도 없어.”

“에이 형님 그런 소리 마슈. 살아있다는 게 나한테는 고통자체야 뭐가 행복해?”

옆자리에서 밥을 먹던 팔십대 말의 잠수부 출신 노인은 이런 말을 했다.

“내가 일흔 일곱살에 온갖 병을 다 가지고 이 실버타운에 죽으려고 왔어. 그런데 물이 좋고 공기가 좋아서 그런지 아직도 안 죽어져.”

아직 살아있다는 그 노인은 자기 일을 찾은 것 같았다. 여름에 실버타운 풀장이 어린아이들에게 개방 됐을 때 왕년의 잠수부 실력을 발휘해서 풀장 바닥에 유리 조각이라도 있지 않나 살피고 다녔다. 그 노인은 실버타운에서 키우는 여러마리 개들에게 맛있는 선물을 가져다 주었다. 식당의 잔반통에 남은 고기조각들을 골라 비닐봉지에 담는 모습이자주 보였다. 노인이 행복한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내가 가면 개들이 너무 좋아서 뒹굴고 눕고 그래.”

잠수부 출신 노인은 살아야 할 이유를 찾은 것 같아보였다. 나는 실버타운에 묵으면서 노인들이 툭툭 던지는 말 속에서 살아있는 지혜를 얻는다. 내가 묵는 실버타운의 노인들은 나름대로 성실하게 살아온 사람들 같다. 선생님도 구청 공무원도 군인도 교수도 있었다. 연금을 받아 한달 밥값과 관리비를 내고도 여유가 있는 안정적인 삶 같다. 


그런데 그들이 아쉬워하는 게 있다. 어떤 보람 내지 성취감을 줄 수 있는 자신의 일이었다. 그런데 세상은 그들을 가을 낙엽같이 퇴출 시켰다. 그 공허를 메꾸기 위해 뭔가 일을 찾거나 복지관을 찾아다니며 열심히들 배우고 있다. 그러나 그게 쉽게 되지 않는건 당연하다. 하모니카를 배우던 노인은 어려운 단계로 가니까 힘이들어 못하겠다고 했다. 기타를 배우는 교장 선생님도 고비를 넘기지 못하겠다고 했다. 

나는 안간힘을 쓰는 노인들을 보면서 행복의 요소 중에는 죽을 때까지 자기가 즐길 수 있는 자신만의 어떤 것을 마련해 두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직업과는 별개다. 돈과도 다른 문제다. 아예 청년 시절부터 그런 준비를 해 두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회사원이었던 나의 아버지는 젊은 시절부터 새를 길렀다. 정년퇴직 후에는 신혼부부가 많은 다가구주택 동네에서 ‘파랑새할아버지’라는 별명을 얻고 새가게를 했다. 아버지는 저세상으로 옮기는 날까지 새들을 돌보았다. 


사십대 초쯤 나는 한 일본드라마에서 일이 끊긴 양복쟁이의 처량한 모습을 본 적이 있다. 그는 마루에 앉아 담배를 피며 비가오는 정원을 망연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걸 보면서 변호사의 일이 끊기면 뭘하지? 아파서 입원해 있다면 그 공백을 어떻게 메울까?라는 생각을 했었다. 병원에 있어도 할 수 있는 게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이었다. 악기를 배운다거나 글을 쓰거나 바둑을 두거나 하는 게 단순하지 않았다. 삼년은 해야 감이 잡히고 십년은 해야 막연히 길이 보일 것 같았다. 삼십년은 해야 자기이야기가 비로서 나오는 것 같기도 하다. 나는 젊은 사람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좋은 직장도 괜찮지만 죽을 때까지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을 찾으라고. 그게 천직인 사람이 가장 행복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