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부터 단단히 먹어야 할 것 같다. 부모 세대나 자식 세대나 말이다. 며칠 전 서울시 발표에 따르면 서울에서 가구주인 부모와 동거 중인 30~49세 자녀는 48만4663명이었다(2010년 현재).
10년 사이에 91%나 늘었다. 30, 40대는 엄마·아빠면 몰라도 ‘자녀’ 호칭은 어색한 나이다.
그런데도 자녀인 것은 부모를 모시느라 동거하는 게 아니라 부모에 얹혀 살고 있기 때문이다. 60세 이상 부모가 자녀와 함께 사는 까닭으로 ‘자녀가 독립생활이 불가능해서’(29.0%), ‘자녀의 가사를 돕기 위해서’(10.5%) 등 자녀 부양 때문인 경우가 39.5%였다. 부모가 독립할 수 없어 자녀의 부양을 받는 경우(32.3%)보다 비율이 높다.
30~40대 캥거루족이 증가한 것은 타협의 산물이다. 경제적으로 자립하지 못했거나 돈을 더 빨리, 더 많이 모으려는 자녀들이 부모 신세를 지기 때문일 것이다. 언제까지 그럴 수 있을까. 여러 조사를 보면 얹혀 사는 자녀, 부양받는 부모의 어정쩡한 공존은 과도기적 현상인 듯하다. 부모는 장차 늙어서 자식에 얹혀 살기 싫다 하고, 자식은 부모 모시지 않겠다는 흐름이 너무나 뚜렷하다.
베이비붐 세대(1955~63년 출생)의 속내는 더 급진적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조사(‘베이비 부머의 생활실태 및 복지욕구’)를 보면 베이비붐 세대의 93.2%가 노후에는 부부끼리, 혹은 혼자 살겠다고 답했다. 노후 수발도 요양시설·배우자·요양병원에 맡기지 아들·며느리(2.7%), 딸·사위(1.1%)에게 의지하겠다는 비율은 극소수였다. 이러니 마음 단단히 먹고 변하는 세태에 대비해야 하지 않겠는가.
벌써 곳곳에서 들려오는 사례를 통해 변화가 감지된다. 한 친지는 집값 싼 동네로 이사갈 계획을 짜면서 “방 세 개는 있어야 아들 식구 오면 자고 가지 않겠느냐”고 했다가 “두 개면 충분하다. 자고 갈 방 있으면 며느리가 싫어한다”는 주변의 타박만 들었다. 다른 지인은 아들의 권유로 아파트를 역모기지에 맡겼다. 친구들이 “효자 뒀다”며 부러워했다. 자식들 눈치 보여 역모기지를 망설이는 분이 많다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수억원을 내고 민간 노인홈에 들어간 자산가 부친 때문에 자녀들이 속앓이하는 얘기도 들었다. 부친이 갑자기 가방 등 비싼 여성용 명품을 구입하기 시작했다. 설마 꽃뱀은 아니겠지만 예쁜 할머니랑 사랑에 빠진 게 분명한데, 자식들이 씀씀이를 거론하면 “나를 걱정하는 거냐, 내 돈 걱정하는 거냐”며 벌컥 화부터 내시니 대책이 없다나. 자식에게 다 내주는 수컷 가시고기, 암컷 문어의 시대는 이미 갔다. 자녀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어떻게 노후를 잘 보낼 것인가. 단군 이래 이런 고민을 하는 세대는 아마 처음일 것이다.
노재현 논설위원·문화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