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성을 위한 ━━/신앙인물

순교자 강종근 목사 (감리교)

Joyfule 2009. 6. 8. 05:11

순교자 강종근 목사 (감리교)

 

강종근 목사 (1904.9.26-1942.6.3)

 

평안남도 강서군 증산면에서 태어났다. 1910년 부모의 신앙을 따라 어렸을 때부터 예수를 믿기 시작하였으며 1925년 배재학교를 졸업하였다. 1928년 감리교 협성신학교(현 감리교신학대학교)를 졸업하고 윤희성과 결혼하였다.

 

1933년 4월 중부연회에 허입한 후 첫 목회지로 경성지방의 창동교회에 파송 받아 목회하였고, 1935년에 창동교회가 동부연회로 편입됨에 따라 그의 소속도 동부연회로 옮겨지게 되었다. 1937년에는 철원지방 연천교회를 이듬해인 1938년에는 창도교회를 그리고 1939년부터 목사 안수를 받고 정회원에 허입한 후 철원지방 철원제일교회를 담임하게 되었다.

 

 철원제일교회를 담임한 그는 열심히 봉직하였고 그로 인하여 교회가 크게 부흥하매 교인은 물론 일반 불신자들에게도 존경과 신임을 받았다. 따라서 일본 경찰은 교회 행사에 일일이 간섭하고 방해하며 강종근 목사를 호출하여 방해하곤 하였다. 1940년 철원제일교회에서 시무하던 중 신사참배를 거부하자 조선총독부의 “사상범 예비검속령”에 의해 구속되어 1년형을 선고받은 뒤 서대문 형무소에 수감되었다.

그곳에서 받은 고문으로 신병이 약해지자 세브란스병원으로 옮겼으나 회생하지 못하고 아내 윤희성 사모가 지켜보는 가운데 “나는 주를 따라간다. 마음이 기쁘다”는 말을 남기고 숨을 거두었다.

 

그때가 1942년 6월 3일 이었다.  윤희성 여사는 아현동에 신성교회를 설립하고 예배당을 건축하였으며 장로로서 충성을 다해 교회를 섬겼다. 온 가족이 미국으로 이민을 가 한국에 남아있는 가족이 없었던 고 강 목사는 지난 8년간 강 목사의 제자이자 장남 서웅 씨의 친구인 이창건 박사의 노력 끝에 2003년 8월 15일 뒤늦게 애국장을 추서 받았다.

그리고 2006.11. 국립대전현충원에 유해를 안장하는 예식이 거행됐다. 예식을 치룬 뒤 이 박사는 “오늘 뜻 깊은 자리까지 오게 돼 감격스럽다”며 “고 강종근 목사를 위해 감리교회 모두가 기도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