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성을 위한 ━━/신앙인물

순교자 김규흥 장로 (감리교)

Joyfule 2009. 6. 13. 00:27

순교자 김규흥 장로 (감리교) 

 

김규흥 장로(1894-1950)


김규흥장로는 1894년 5월 6일 경기도 시흥군 군자면 죽률리에서 김경환씨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믿음의 동기는 부친이 병환중 먼저 믿고 교회 어른들이 자주 와서 기도해 주시는 동안에 아버지를 위한 교인들의 따뜻한 사랑에 감화되고 전하는 설교말씀에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아 독실한 신앙을 간직하게 되었다.

 

부친의 장례를 마치고 상청 설치문제로 문중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매를 맞으면서도 끝내 버티어 신앙으로 이겼다. 그 후 뜻한바 있어 서울협성신학교에 입학 2년 수료하고 고향에 돌아와 청년 전도사로 교회를 위해 봉사하였다. 군자 거무게교회를 세워 목회하니 교회는 부흥되고 신유의 은사가 나타나 원근에서 많은 사람들이 몰려왔다. 한편 피 압박 민족의 쓰라린 비운을 누구보다 더 가슴 아프게 느낀 김장로는 민족이 살길로 삼대목표를 세웠다.

 1. 하나님께 대한 믿음. 2. 신학문교육. 3. 농촌 자립경제,

 

그는 신학문과 특별히 여성교육을 강조하고 동네 문맹 부인들을 모아 손수 가르쳤고 농촌경제를 위해서 농업협동조합을 조직하여 생필품을 싸게 구매하고 농사개량과 축산장려 신생활 운동에 앞장 서는 등 강습회를 통해 계몽하는 한편 각종 도서를 구입하여 청소년 교양 및 후진 양성에 힘썼다.

 

신앙생활과 논촌계몽운동으로 민족의 정기를 되살리는 그는 요시찰 인물로 주목받아 어려움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1945년 해방 후 논현동에 교회를 개척하고 전임목사를 모시는 등 동민의 복음화와 복지사회를 위하여 전력하게 되었다. 1950년 8월 19일 안선재 권사와 함께 내무서원에게 끌려가던 중 수수밭에 이르렀을 때 안선재권사를 피신하게 하고 김장로는 그를 살리기 위해 그대로 저들의 손에 끌려 영원히 사는 길로 갔다.

 

유자녀로는 김태선장로로 대원건설 대표이사이고 김연화권사와의 사이에 4남 1녀를 두었다. 큰 딸 김갑순은 송재수목사의 부인이 되어 미국에서 목회하고 있고 둘째딸 김신덕권사는 진남덕 집사의 부인이고, 세째딸 김과숙권사는 한강교회 정운상 목사의 사모로 교회봉사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