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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 김두병 장로 (기장)

Joyfule 2009. 6. 16. 06:18

순교자 김두병 장로 (기장)

 

김두병 장로(1906-1950)


1906년 3월 25일 전북 남원군 대강면 풍산리에서 김창원의 3남 1녀중 장남으로 출생.예수를 믿기 전 무속에 빠져 교회를 아주 못마땅하게 생각하던 그가 첫 아이를 잃고 아내를 동부교회에 나가라고 하여 아내가 교회에가서 목사님의 기도중 마귀 잡귀를 일체 틈타지 못하게 해달라고 기도했다는 말을 듣고 무릎을 치면서 나도 교회에 나가야겠다고 하고 그 다음주부터 동부교회에 출석하다가 친구들의 권유로 전주 중앙교회로 옮겨 극진히 봉사하였다.

 

1943년 일제 말기에 징용병으로 일본 북해도 북단 아오모리 광산지구에서 강제 노역을 하다가 해방을 맞아 귀국선을 타고 오던 중 부산 앞바다에서 어뢰에 난파되어 기름 바다를 헤치며 가까스로 생환했다. 1949년 6월에 전주 중앙교회에서 제 6대 장로로 임직하며 기쁨에 넘쳐 주님을 위해 죽도록 충성할것을 결의했다.

 

1950년 6.25전쟁 발발로 교회시설에 '중앙교회'라고 페인트로 표시하는 등 마지막 순간까지 교회를 사랑하며 목회자를 섬기고 자신의 직임에 충성을 다하다가 전세가 불리해지자 부산으로 피난을 가다가 교회의일이 마음 놓이질 않아 가던 길을 멈추고 다시 전주로 돌아와 지하실에서 살다가 인민위원회 사무실에 끌려가 민주인사들과 줄줄이 묶여 개처럼 끌려다니며 가두시위를 했다. 전북 토목관구사무소에서 인민재판을 했는데 학살에 가담한 자들은 술을 마셔 이성을 잃은 상태에서 삽과 곡괭이를 가지고 쳐죽이는 천인 공로할 만행을 저질렀다.

공산주의자들은 김장로에게 "너는 믿는 사람이니 어디 죽여도 사나보자"고 조롱하면서 마지막 소원을 말해 보라"고 할 때 김장로는 "죽으면 천국에 갈터이니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다만 다만 아쉬운 것은 나는 일흔이 넘으신 어머님이 계신데 내가 먼저 죽는것이요. 또 하나는 마지막 죽는 자리에서 사랑하는 교우들과 함께 고별 예배를 드리지 못하고 죽는 것이다."라고 대답하며 손을 모으고 머리 숙여 하나님께 기도를 올리고 곡괭이와 삽에 찍혀 순교했다.

 

그는 평소 야곱이 이스라엘이 된 것처럼 완전히 변화된 생을 살다가 간 사람으로 교회를 자신의 몸처럼 사랑했으며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는 주님의 명령을 몸으로 살아 낸 사람으로 후손들에게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라"는 유언과 몸소 그런 삶을 유산으로 남겨주었다.

 

기도중에 1950년 9월 28일에 순교하였는데 전주시 효자공원묘지에 모셨다. 유족으로는 아내 김복순 권사는 81세를 일기로 1994년에 소천했고 장남 용신은 집사로 차남 용희, 삼남 용문, 사남 용운은 열심히 교회에 충성하고 있다. 손자중 장손자 손녀 정곤 승곤 형균 옥현 중 김정곤씨는 현재 '군산한일교회' 담임목사로 시무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