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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고향 - 이경담

Joyfule 2013. 9. 3. 09:14

 

 

 시인의 고향 - 이경담


  가을에는 불현듯 고향이 가고 싶다. 안개가 자욱한 아침, 시인의 고향에 가려고 기차를 탔다. 들녘에 누런 벼들이 고개를 숙이고 산은 울긋불긋 가을색으로 막 옷을 갈아입기 시작하는 때였다. 차창에 스치는 풍경을 좇으며 내 마음은 정감어린 향수로 물들어갔다.

정지용과 오장환 시인! 북으로 간 시인들은 우리에게 오랫동안 알려지지 않은 존재이며 금지된 사람이었다.

그들은 낯설었다. 어떤 사람의 고향에 가는 길은 그 사람에게 가장 가까이 다가가는 길일 것이다.

  오장환 시인(19018-1951)의 생가와 문학관이 있는 보은군 회인 산골 마을에는 키가 큰 감나무들이 많았다. 집집마다 높이 자란 나무에 붉은 감들이 주렁주렁 달려있는 풍경이 인적이 드문 동네에 정겨움을 더해 주었다. 시인의 생가인 초가집 담장에 가로펼침막이 걸려 있었다.

 ‘아, 이 세월도 헛되이 물러가는가!’ 펼침막에 커다랗게 적혀 있는 글귀 앞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의미심장한 이 문장은 나중에 알아보니 오장환 시인이 해방 후 맞은 사회 현실에 대해 쓴 시 <이 세월도 헛되이>에 나오는 첫 구절인데, 올해 13번째 맞는 ‘오장환 문학제’의 주제로 삼은 모양이다.

  새로 지은 시인의 생가는 일자형 초가집이다. 행랑채도 없고 곳간이나 마구간도 없이 방과 부엌이 딸린 안채 하나뿐인 소농의 집이다.

오장환이 아홉 살까지 살았다는 고향집 처마 끝에는 잘 영근 옥수수들이 매달린 채 햇볕에 말라가고 있었다. 장독과 우물이 있고, 나무판을 붙여 만든 굴뚝에서는 금방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를 듯 했으며 손때 묻은 뒤주와 앉은뱅이책상 등 살림살이가 갖추어진 집을 보니 어머니와 단 둘이 살았을 시인의 어린 시절이 눈앞에 그려졌다. ‘오장환’이라는 이름이 새겨진 문패가 걸려 있는 주인 없는 집에 마루며 마당에는 손님들만이 기웃거릴 뿐이었다.   
 
  마당 한 귀퉁이에 서 있는 시비에 그의 시 <나의 노래>가 풀꽃 그림이 곁들여 적혀 있다. ‘나의 노래가 끝나는 날은 내 가슴에 아름다운 꽃이 피리라. … . 나의 노래가 끝나는 날은 내 무덤에 아름다운 꽃이 피리라’. 세운 지 얼마 되지 않아 보이는 시비가 어쩐지 서글퍼 보였다. 꽃을 피우지 못하고 스러져 간 시인의 짧은 삶 때문이리라.

  현대식 건물로 지은 ‘오장환 문학관’에는 많은 자료가 전시되어 있어 시인의 삶과 문학세계를 알 수 있게 했다. 그의 시 <병든 서울>은 해방의 기쁨과 함께 병약한 자신의 육신과 혼란한 당시 사회에 대한 우울함을 동시에 나타내고 있다. 이 시를 읽으며 ‘눈물이 났다’는 한 방문객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오장환은 북으로 갔고 전쟁 중에 소련에서 병사했다.  

  ‘깊은 산골 인적이 닿지 않는, 산이 산을 부르는 산골짝’이라고 시인이 읊었던 시인의 고향, 산골마을에 가을볕이 따사로웠다. 뛰어난 두뇌를 지닌 지성인이며 남다른 감수성을 지닌 시인, 그러나 젊은 나이에 결핵을 앓았던 병약한 청년 오장환, 비록 짧은 생애를 살았지만 투철한 현실 인식에서 고뇌하고 진실하게 살고자 했던, 그래서 몸도 마음도 고달팠을 시인 오장환의 노래는 끝나지 않았다. 시인의 아픈 노래를 뒤에 남기며 다음 행선지로 떠나는데 뒷담 밖 은행나무에서 노란 잎들이 한 잎 두 잎 발 앞에 진다. 아, 이 세월도 헛되이 물러가는가!  

  정지용 시인(1902-?)의 고향 옥천은 오장환 시인의 고향인 보은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이다.

정지용이 휘문학교 재직시절에 오장환에게 시를 가르치는 것으로 두 사람 사이에 인연이 맺어졌다고 한다.

시인은 고향의 정경과 그리움을 아름답게 묘사한 시 <향수>로 널리 알려졌다.

시에 나오는 고향은 그만의 고향이 아니다. 누구나 꿈꾸고 그리워하는 모든 사람의 고향, 이상향이 아닐까.

시 <향수>가 노래가 되어 나왔을 때, 나는 그리움을 안은 채 외국에서 살고 있는 친구에게 이 곡이 담긴 테이프를 선물했다. 시의 정취를 한층 살리는 성악가 박인수의 밝은 목소리와 대중가수 이동원의 우수에 찬 목소리가 휑한 가슴을 다독여주었을지….

  노래를 통해 익숙해진 <향수>에 나오는 시인의 고향에 진작부터 한번 가고 싶었다. 시인이 살았던 당시에는 넓은 들이 펼쳐지고 맑은 시냇물이 흘렀을 그곳이 지금은 꽤나 번잡한 주택지가 되어 있다.

그의 집은 새로 복원되어 옛 모습을 유지하고 있으나, 황금 들판도 보이지 않고 ‘해설피’ 우는 얼룩배기 황소도 없었다. 집 앞에 물이 흐르도록 만들어 놓은 도랑은 너무 인공적인 데다가 물레방아가 돌고 있는 광경은 생경스럽기까지 했다.

안내자는 시인의 생가를 복원하면서 실제보다 조금 키웠으며 휘돌아가는 마을 실개천은 정비 끝에 직선이 되었노라고 설명했다. 이 시대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건물의 규모나 키우며 굽은 길을 반듯반듯하게 낼 뿐인가 싶고 사라진 들녘과 실개천이 너무도 아쉽기만 했다.

  시에 나오는 고향과는 사뭇 다른 모습에 섭섭해 하면서, 문득 프랑스 ‘고흐 마을’이 생각났다. 빈센트 반 고흐(1853-1890)가 생의 마지막 시기를 보낸 파리 근교 작은 마을, 오베르 쉬르 우아즈(Auvers-sur-Oise)는 ‘고흐 마을’로 유명해졌다. 그곳엔 고흐의 작품 배경이 되었던 마을의 집과 성당, 길, 언덕, 밀밭 등이 고스란히 남아 있어 그곳을 찾는 사람들은 작품과 똑같은 풍경을 걷다보면 마치 그림 속으로 걸어 들어온 듯한 환각에 빠진다고 한다. ‘고흐 마을’은 많은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세계적인 관광명소가 되어 있다.  

  조선 초기 화가 안견의 <몽유도원도>는 안평대군이 꿈속에 가보았다는 무릉도원을 그린 그림으로 당시 사대부들의 이상향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고향을 훼손하고 잃어버린 우리는 정지용의 시 <향수>에 그려진 고향을 통해 마음속에나마 고향을 간직하는 행운을 누릴 수 있다.

꿈에도 차마 잊지 못할 고향에 되돌아오지 못하고 어느 시간 어느 곳에서 마지막 생을 보냈는지도 알 수 없이 가버린 시인이 애처롭다. 두루마기 한복 차림을 한 시인의 모습을 형상화한 동상이 ‘정지용 문학관’ 앞에 서 있다.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던 고향은 모습을 달리하고 있으나 그의 문학을, 그의 고향을 찾아오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기지 않는 한 시인은 외롭지 않으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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