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위인 - 한국교회 초대 목사 7인
길선주
한학자, 성서학자로도 이름이 높았다. 1908년 3월 1일에 한국인 목사로서는 최초로 세례식을 집례했다. 1907년 부흥운동에 큰 역할을 하였으며, 전국을 누비면서 부흥회를 인도해 가는 곳마다 놀라운 성과를 올렸다. 3ㆍ1운동 민족지도자 33인 중의 한 사람으로 옥중생활의 수난을 겪었다.
방기창
1901년 평양 신학교가 개교되면서 김종섭 장로와 함께 최초 입학생이 되었다. 평양신학교 졸업생으로 목사안수를 받은 7명은 개화도상의 역경이 중첩한 한국 사회의 한가운데서 최대의 역량을 십분 발휘해 초기 한국교회를 순수한 복음으로 선정하는 데 혁혁한 업적을 남겼다.
서경조
평안북도 의주에서 출생하였다. 종교적 감수성이 강한 인물로서 만주에서 예수 믿고 귀국한 형 서상륜의 전도를 받아 곧 신자가 되었다. 형제는 의주에서 기독교 박해가 있자 황해도 솔내로 피신했으며, 그곳에서 열심히 전도해 한국 최초로 여덟 칸짜리 예배당을 건축하고, 전도에 크게 성공했다. 언더우드(H. G. Underwood) 선교사의 내한 소식을 들은 서경조는 곧 상경해 1887년 세례를 받고 1900년 장로가 되었으며, 목사가 된 후 한 때 새문안교회에서 봉직했다. 경실련 전 사무총장, 기윤실활동을 하고 있는 서경석목사(서울대 법대, 장신대 신대원 졸)가 이 분의 손자이다.
송린서
평양 출신으로 마펫 선교사의 전도로 예수를 믿었다. 1907년 목사가 되었으며 평남 일대에 교회를 개척하는 공을 남겼다.
양전백
평북 구성 출신으로 김이련ㆍ김관근 부자의 전도로 신앙인이 되었다. 1902년에 장로가 되었고, 1905년 신성중학교의 설립위원, 대동고아원의 원장을 역임했으며 선천북교회의 목사로 시무했다. 3ㆍ1운동 당시 민족지도자 33인 중 한 사람으로 민족 운동에 크게 헌신했다.
이기풍
1893년 이래 평양거리에서 전도하고 있는 마펫 선교사의 아래턱을 돌로 때려 상처를 낸 불량배이다. 그러나 회개해 목사가 되었으며, 그 후 제주도에 건너가 모진 고난을 다 겪으면서 전도 사역에 종사해 제주도민 교화의 위대한 공을 남겼다. 1921년 총회장을 역임했고, 일본 신사참배를 반대하다 끝내 1942년 6월 20일에 순교했다.
한석진
의주에서 세례 받았고, 평양의 마펫 선교사 밑에서 전도일을 보았다. 1894년 그를 체포한 평안 감사 민병석이 사형선고를 내렸으나 신앙지조를 굽히지 않았고, 마침내 기적적으로 생명을 건졌다. 당대의 가장 총명한 교계 지도자로서 한국 고유의 인습을 바로잡아 계습타파와 남녀차별 철폐 등에 막대한 공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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