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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위인 - 예수님의 제자, 12사도들의 사역

Joyfule 2021. 6. 9. 06:41



 신앙위인 - 예수님의 제자, 12사도들의 사역            


2. 야고보(알패오의 아들, 예수님의 형제)

 

야고보서의 저자이며 예수님의 동생인 야고보는 야곱의 헬라어 번역이며 영어 성경에서는 제임스(James)라는 이름으로 독특하게 표현하고 있는 제자입니다 예수님께는 네명의 형제와 자매들이 있었습니다(마가복음6:3, 마태복음13:55) 이들은 예수님과 한 가족으로서 30년을 함께 살면서도 정작 그가 메시야라는 사실을 전혀 알수가 없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부활하신 주님이 나타나셨다고 고린도전서 15장 7절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후로 그의 삶은 전환되었고 그의 서신인 야고보서에서 그는 자신을 예수님의 형제라고 소개하지 않고 예수그리스도의 종이라고 설명함으로서 그의 신앙적 가치를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의 동생 야고보는(Saint James the Just) 그리스어:Iάκωβος), ( 주후 62년 사망) 의인 야고보(James the Just), 예루살렘의 야고보(James of Jerusalem), 하나님의 형제 야고보(James Adelphotheos)[1], 또는 야고보, 주의 형제(James, the Brother of the Lord)라고도 불리워지고 있습니다 또한 일반적으로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동일시 되는 인물입니다. 기독교 전승에 따르면, 그는 첫 번째 예루살렘의 주교이고, 신약성경 누가복음10:1-20에 언급된 칠십 인의 사도중 첫 번째 사람입니다. 주후 62년, 네로 황제의 박해로 총독 안나스의 손에 순교당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야고보는 베드로와 요한과 함께 에루살렘 교회를 지도한 사도로서(갈라디아서2:9)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Clement)와 유세비우스(Eusebius)는 베드로가 선교여행을 떠난 후 실질적인 예루살렘교회의 감독으로 인정하였습니다 야고보는 베드로가 부재중인 예루살렘 교회를 지키며 모범적 설교와 생활을 실천하였습니다 그러한 야고보를 사도 바울이 제일 먼저 만나기를 원한 사람이었으며(갈라디아서1:19) 베드로도 그에게는 겸손한 언행으로 대하였습니다(사도행전12:17) 유대인 크리스챤 헤게시푸스(Hegesippus, 170년경) 에 의하면 야고보는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로서 항상 양떼를 위하여 무릎을 꿇고 기도하기에 힘써서 그의 무릎이 약대 무릎같이 굳어졌다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의 서신 야고보서는 그의 신앙태도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루살렘 초대교회 당시, 유대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성도들은 예수님을 메시야로 신앙하면서도 유대교의 식사법과 금식법등 율법을 병행하여 준수하고 있었는데 야고보도 이러한 행위적 신앙을 중요한 가치로 여겼습니다 차이점은 모세의 율법이 아닌 자유의 율법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야고보서2:12)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에게 있어서 죽은 믿음과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야고보서2:17)

 

야고보는 다윗 혈통 계승자로서 유대인의 율법의 한구절도 소홀이 하지 않는 경건한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뛰어난 경건 생활로 인하여 의인(Zadik)이라는 별명까지 있었으며, 예루살렘교회의 확장을 두려워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다시 유대교로 개종시키기 위해 온갖 유혹과 심문을 획책하였지만 끝끝내 신앙을 지킴으로서 돌에 맞아죽는 처형을 당하고 순교자의 길을 걸어갔던 것입니다

 

3. 요한(세배대와 살로메의 아들이며 야고보의 형제로서 어업에 종사)

 

사도 요한(히브리어: יוחנן,그리스어: Ιωάννης, ?~100년?)은 예수 그리스도의 열두 제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야고보와 형제 관계에 있습니다. 그 이름의 뜻은 "여호와께서는 은혜로우시다"입니다

 

요한복음과 요한계시록의 저자인 사도 요한은 세례 요한의 제자로 활동하였습니다(요한복음1:35~40) 요한의 아버지는 세배대(마태복음4:21), 어머니는 살로메(마태복음27:56)로 요한복음 19장 25절과 비교하여 설명하면,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와 요한의 모친 살로메는 자매였으며, 그러므로 예수님과 요한은 이종사촌관계인 것입니다 이처럼 요한의 형제들과 가족들이 예수님의 부르심에 응한 최초의 제자그룹에 속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사도 요한은 예수님으로 부터 "우뢰의 아들"(막복음3:17)이라는 별명을 받을 만큼 강직하고 강렬했던 사람이었습니다(마가복음9:38, 10:37, 누가복음9:54) 사도 요한의 가정은 삯군을 두고 어업을 경영할 만큼 부자였으며(마가복음1:20), 대제사장과도 개인적인 친분이 있었습니다(요한복음18;15~16) 그는 베드로, 야고보와 함께 예수님의 수제자로서 변화산과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 동행하였으며 특별히 4대복음 속에는 예수님으로 부터 "예수의 사랑하는 제자"라는 언급이 5회에 걸쳐 계속해서 반복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최후만찬에서 주를 팔자가 누구냐고 질문한 사람이 바로 사도 요한이었습니다(요한복음13:23~25) 그는 예수님이 끌려가시는 행적을 따라 가야바의 집에까지 이르렀으며, 모친 마리아와 함께 예수님의 마지막가는 모습을 지켜 보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마지막 부탁인 마리아의 노후부양의 부탁을 받고 그 책임을 다하는 제자였습니다 (요한복음19:26~27) 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빈무덤을 가장 먼저본 제자였습니다(요한복음20:1~10)

 

사도 요한이 예루살렘 교회를 지키다가 언제 떠났는지는 잔존 기록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주후 58년 사도바울이 마지막으로 예루살렘을 방문하였을때 야고보외에 다른 사도들은 만날 수 없었습니다 일부 견해로는 주후 50년 경 사도 요한은 예루살렘을 떠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그는 예루살렘교회에서 성전문앞의 앉은뱅이를 고치고(사도행전3:1~10), 산헤드린 공회에서 예수님을 증거하였으며(사도행전4:1~22), 예루살렘 총회에서 사마리아로 전도단을 파송할 때에도 베드로와 같이 파송되어 아름다운 결과를 맺었습니다(사도행전8:14~25)

 

주후 64~67년, 네로 황제의 박해와 그후로 밧모섬에 유배되기 직전인 주후 85~90년사이에 요한복음을 기록하였습니다 사도 요한은 주로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하였으며 요한복음은 이러한 관점에서 헬라사고에 익숙한 당시 사람들에게 예수가 그리스도시며,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하여 기록하였습니다 그러나 다른 복음들이 다소 객관적인 성격을 띤 것과는 대조적으로 주관적인 해설을 그 내용으로 하고 있으며, 특히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강조함으로서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이 땅에 오신 목적과 행적을 실재화하는데 주력하였습니다

 

그후 사도 요한은 주후 85~86년 도미시안 황제의 박해를 거치면서 밧모섬에 유배를 당했으며(요한계시록1:9), 이곳에서 바로 요한계시록을 기록하였던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노경에 소아시아 지역 에베소에서 오래동안 교회를 지도하였으며, 이곳은 예루살렘이 무너진 후로 한때 초대교회의 중심지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주후 98년, 트라얀 황제의 박해가 있었으며 90여년의 세월동안 수많은 박해를 이기며 기독교의 산증인이며 계승자가 되었습니다

 

그의 죽음에 대해서는 에베소 교회를 감독하다가 자연사 했다는 견해가 지배적이지만 순교자의 명단에 그의 이름이 있어서 순교한 것이란 소수의 견해도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사도 요한을 일컬어 "예루살렘 교회에서 기둥같이 여기는 지도자들 중의 한사람"(갈라디아서2:9)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사랑과 신성을 강조한 사도 요한은 요한계시록이라는 엄청난 비밀의 키워드를 우리들에게 남겨 줌으로서 희망과 새로운 천국에 대한 열망을 가지게 한 것이었습니다